| ||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보건복지분과는 월 2회 대담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 산업화의 문제들을 제기하는 한편, 한국 의료의 올바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높은 문턱 탓에 일반인들이 알기 힘든 유용한 의료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의료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도 넘어서고자 한다. <편집자말>
대담 참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보건복지분과) |
고병수 | 제주 탑동365일의원 원장, 새사연 이사 이은경 | 한의사, 청년한의사회 정책국장, 새사연 비상임연구원 정달현 | 예본치과 원장, 새사연 운영위원 황지원 | 소화아동병원 간호사,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정책위원장, 새사연 운영위원 진행 및 정리 – 윤찬영 | 새사연 미디어센터장 |
사회 : 지난 대담에서는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오해와 혼란들에 대해 짚어보았다. 이번에는 올바른 질병 관리 체계라는 조금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해 짚어보자. 현재 정부는 백신 확보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인상이다. 어떻게 보나.
이은경 :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을 확보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문제는 현재 국내에는 충분한 백신 생산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정상적인 방식으로 제때 필요한 물량을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는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을 생산해내려 하고 있다. 현재 논란의 핵심은 과연 이런 식으로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만든 백신의 안전성을 100% 확신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걸프 증후군이나 길렌-바레 증후군 등 심각한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상황이다.
고병수 : 백신의 안전성이나 유효성과 관련한 논란은 이미 오래 전부터 되풀이돼왔다. 한쪽에서는 백신 접종이 전염성 바이러스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또 그 안전성도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백신 사고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서양의학 중심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 :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정달현 : 1976년에도 지금과 같은 유전자형의 독감이 유행했는데 당시 백신 접종자 가운데 ‘길렌-바레 증후군’이라고 하는 신경마비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평소의 두 배 정도로 늘어난 일이 있었다. 최악의 백신 사고로 꼽히는 사건으로, 백신의 안전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식의 집단발병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으며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접종이 이루어져왔다. 그래서 백신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이번 백신도 종만 다를 뿐 계절플루(독감) 백신과 정확히 같은 방법과 설비로 만들어졌으며 임상시험도 통과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논란은 면역증강제와 관련한 것이다. 1차 걸프전 당시 탄저병백신을 맞은 병사들 사이에서 건망증, 우울증과 같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나타난 일이 있었다. 이를 ‘걸프 증후군’이라 부르는데 당국이 조사를 해보니 백신의 면역증강을 위해 사용한 스쿠알렌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체 내에 들어간 스쿠알렌이 스쿠알렌 항체를 생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녹십자가 생산하고 있는 백신에도 이 스쿠알렌 성분의 면역증강제인 MF59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면역증강제를 제조한 스위스 노바티스사를 비롯해 백신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당시의 탄저병백신과 달리 MF59를 사용한 백신은 우리 몸에서 스쿠알렌 항체를 전혀 만들어 내지 않으며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미국에서는 MF59가 함유된 신종플루 백신을 사용하지 않고 있고, 유럽에서 생산되는 백신 가운데 일부에만 MF59가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 MF59를 사용해 만든 백신에 대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황지원 : 중요한 것은 그런 불확실성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국민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국민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터넷 괴담’ 쯤으로 무시하는 행태는 옳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는 TV를 통해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고, 그래서 백신을 맞지 않겠다거나,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비율이 60% 이상이지 않나. 주변 병원 의료인들도 이번에는 맞지 않겠다는 분들이 많다. 이미 시기도 늦었고 더구나 스쿠알렌을 사용했다고 하니 굳이 맞을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들이다. 다만, 한결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백신을 확보하고 접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으면 한다는 점이다.
이은경 :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 본다. 지금 정부는 유행을 억제할 수 있는 규모, 즉 전체 인구의 27%인 1366만 명분의 백신을 어떻게든 확보해 내년 2월까지 접종을 실시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시기는 이미 놓쳤다. 정작 중요한 것은 충분한 백신 생산 시설을 확보해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 제공이 정부의 역할”
사회 : 앞으로의 일도 중요하지만 당장 겨울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확산을 막아야 하지 않나.
이은경 : 물론이다. 우선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확보된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만든 백신의 경우는 임상시험이 끝나는 대로 접종을 하더라도 사전에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현재 신종플루 백신은 물론 계절플루(독감) 백신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국민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신을 반드시 맞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현재의 분위기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 국민들이 너무 불안해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정달현 : 며칠 전 우리 국민의 82%가 신종플루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다는 설문결과가 발표되었다. 백신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사회는 정말 환상적인 사회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들의 인식 뒤에는 초기 대응의 미숙함과 혼란으로 인한 지나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불어 건강을 지켜줄 사회적 시스템과 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떠넘겨지는 우리의 열악한 건강 관리 체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충분한 양의 백신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안전성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사회 : 백신 생산 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국내 제약회사들의 규모가 작기 때문인가.
고병수 : 사실 백신은 시장성이 낮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의 힘만으로는 충분한 시설을 갖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비단 백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 관리 체계라는 큰 틀에서 정부는 시장성이 낮지만 꼭 필요한 약품을 생산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황지원 : 사실 지금 백신을 생산하고 있는 녹십자의 생산 시설도 작년에 완공하기로 돼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들어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늦어졌다. 결국 정부가 현 사태를 자초한 셈이다.
이은경 : 다시 말하지만, 그 동안 이런 부분들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대책을 약속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국민들이 백신이 부족한 현재의 상항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정부는 민간병의원들과의 효율적인 연계 체계 고민해야”
사회 : 다음으로 질병 관리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는데 앞으로 어떤 대책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고병수 : 소위 거점병원들의 행태에서 드러났듯이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조차 정부 당국의 방침이 전혀 집행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거점병원조차 진료를 거부하지 않았나. 사실 그 동안 정부는 민간병의원들과 협조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일반 민간병원들이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조차 정부 방침을 안 따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정부가 아무리 그럴 듯한 방침을 세운다 해도 민간의료기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정부를 중심으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 사이의 협조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보건소를 늘리는 단순한 방식으로 공공성이 확대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수많은 민간병의원들과 어떻게 효율적인 연계 체계를 갖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현실성 있는 공공의료 확충 방안이다. 질병 관리 체계 역시 그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이은경 : 중요한 얘기다. 민간의료기관들을 국가적 의료 관리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적 의료기관을 만드는 과제와 함께 민간의료기관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제가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몇 퍼센트인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핵심이 아니다.
황지원 : 우리나라 대형 병원들은 몇 년 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고가 장비들을 경쟁적으로 들여오는가 하면 병상 수도 꾸준히 늘려왔다. 하지만 정작 질병 관리에 필요한 격리병동이나 연구시스템은 서울대병원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안정적인 질병 관리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모색이 시작되길 바란다.
이은경 : 앞에서 얘기됐듯이, 시장성은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결국 국가가 나서서 예산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국영제약회사와 백신공장 강제실시 등은 사실 오래 전부터 얘기된 정책들이다. 그런 점에서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도록 해야 한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의약품 강제실시도 사실 소수 백혈병 환자들의 문제로 머물러왔기 때문에 그 동안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달현 :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정치적 의도로 왜곡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윤리와 책임 의식 아래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인 체계가 필요하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는 일상적 건강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미 많은 나라들에서 자리 잡은 ‘주치의 제도’도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지역마다 주치의가 있었다면 제대로 준비도 안 된 거점병원으로 사람이 몰려 오히려 전염 위험이 높아지는 어이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장기적인 대안으로는 지역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관리해주는 건강관리사 제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은경 : 현재 인류가 가진 철학과 삶의 자세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백신과 항생제를 남용하거나 끊임없이 신종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축산업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우리들 일상을 돌아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가령, 휴교령이 내려져도, 또 아이들에게 열이 나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 이런 식이라면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한 휴교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파도 기를 쓰고 일을 하러 가지 않나. 일에 대한 열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개인의 건강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덜 일하고, 스트레스를 줄여 개인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아이들과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과 휴식의 기회, 제대로 된 치료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번 신종플루는 치사율이 그리 높지 않지만, 보다 더 심각한 신종 전염병이 발생한다면 인류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근본적인 회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병수 :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과연 의료인들이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는지, 오히려 섣부른 소견 발표로 불안감을 부추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경우처럼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전염병일지라도 의협과 지역의사회가 나선다면 정확한 정보와 지침이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만 쳐다보고 있을 게 아니라 의료인들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회 : 이상으로 현재 신종플루를 둘러싼 정부 대응 방식의 문제점과 함께 올바른 대안들을 살펴보았다. 정리해보면, 현재 어떻게든 의약품만 확보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적 차원의 질병 관리 체계를 갖추는 데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아울러 의약품이 부족하다는 우려로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도 짚어보았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을 통해 드러난 질병 관리 체계의 허약한 지점들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 모든 분들이 의견을 함께 했다. 백신 생산 시설을 비롯해 꼭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 위기 상황에서 올바른 정보들이 일선 의료기관과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 등이 과제로 제기되었다.
더불어 의료인들 스스로 전문가로서의 책무에 대해 성찰해보길 바란다는 의견과 함께 우리 시대의 철학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회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동안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새사연 카페 <새로운사회를여는사람들>(http://cafe.daum.net/saesayon)에 오시면 보건복지분과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