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자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한 법원 결정은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존엄을 무시한 처사 – 혐오와 편견이 빚어낸 안타까운 가족사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묻는 것이 온당한가 |
4월 3일 언론은 지난 2월 인천지방법원이 트랜스젠더 A(52)씨가 낸 등록부 정정 신청을 기각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법원이 밝힌 기각 이유는 가족, 특히 아들이 반대한다는 것이다. 기존 대법원 예규의 성별정정 요건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인천지법은 성년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반대의견을 당사자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시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문제를 가족의 의견에 맡겼다는 점에서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무시한 반헌법적 판단이기도 하다.
언론에서는 아들 B씨가 A씨로 인해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부각하며 법원 판단이 성소수자의 행복보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강조한 결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소수자 부모를 둔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의 고통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판을 치고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비난과 낙인이 가족에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존재 때문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런 연유들이 복잡하게 얽혀 성소수자에게 가족은 친밀하고 든든한 지지자가 아니라 가장 적대적인 반대자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아들 B씨를 ‘피해자’로 만든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혐오와 차별을 용인하는 이 사회다. 아들 B씨의 경우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아버지의 성전환 과정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그 경험은 고통스러운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성소수자인 아버지를 둔 자녀로서 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성소수자들 본인도 스스로를 긍정하고 지지 받기 어려운 사회에서 하물며 성소수자의 자녀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낳은 안타까운 개인사를 이유로 성소수자 개인의 권리와 삶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주민혐오 속에 이주민의 자녀가 부모를 원망한다고 해서 그 부모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또 아들 B씨는 가족관계등록부 상에 부모가 모두 여성으로 표시돼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것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이 지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가족관계나 배경을 통해 개인을 판단하는 우리 사회 관행의 문제점도 드러난다. 그런데 법원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그릇된 관행이 문제임에도 오히려 이를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함으로써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성소수자 개인에게 지운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성전환수술까지 마친 A씨는 계속해서 외모와 불일치하는 신분으로 생활해야 한다. 결국 모두가 편견과 차별의 피해자로 남은 꼴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성전환자들에게 성별정정이 단지 행복추구의 문제가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문제임을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런데 여전히 법원은 성별정정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건을 강요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관행적으로 가족동의서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본인이 아닌 그 누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법원은 성전환자 성별정정 요건을 성적자기결정권의 원칙에 따라 현실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이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2014년 4월 4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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