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사에게 거부당하는 사람들
“손이 부러져서 병원에 갔는데, 응급실 의사한테 10분 동안 내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들들 볶였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좌절했고 수치스러웠다.”
“목이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골반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억지로 시켰다.”
“나를 검사하는 동안 나를 보면서 다른 의료진을 부른다. 그리고는 내 성기에 대해서 그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준다.”
2010년 미국에서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들이 털어놓은 의료기관에서의 차별사례를 읽어볼 수 있다. 이 보고서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성소수자와 HIV감염인 4,916명이 밝힌 바에 따르면, 동성애자(LGB) 중 약 8%, 트랜스젠더 및 젠더비순응자(gender non-conforming individuals) 중 약 27%, HIV감염인 중 약 20%가 노골적으로 진료를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 20% 넘는 이들이 의료인들이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며, 의사들이 건강문제에 대해 환자 탓을 한다고 보고했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바,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과 비교할 때, 성소수자들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연구는 또한 성소수자의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성소수자의 의료접근성이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의사들의 불필요한 질문과 차별적인 대우, 섹슈얼리티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의사를 찾고 의료기관을 찾아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성소수자 혹은 HIV감염인라는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을 때 이들에게는 경제적 접근성, 지리적 접근성 이외에도 사회적 접근성에서, 의료서비스 이용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 생긴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는 누가 책임을 지나?
다른 의사를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응급상황인 경우, 병원을 찾기 힘든 시골지역일 때, 그리고 장기요양시설이 필요한 경우, 다른 의사나 의료기관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다시 미국의 사례를 보자. 39세의 한 교사는 911로 이송되었지만,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한 시간이 넘게 방치되었다가 코마상태에 빠졌고 며칠 후 사망했다. 한 53세 남성은 신장이식이 필요한 상태였는데 HIV양성이라는 이유로 보험회사에서 보험적용을 거부당했고, 또 다른 HIV감염인은 HIV양성이라는 이유로 응급실 치료를 거부당한 적도 있다.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주립 청소년 구금시설에서 처방된 호르몬의약품을 먹지 못해 심각한 건강문제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신이 당신을 남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여성의 유방확대수술을 거부한 병원과 의사가 있는가 하면, 2년 동안 요통치료를 해준 정형외과 의사가 척추 수술 1주일 전, 환자가 HIV양성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수술을 거부하고 취소한 사례도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동성애자 중에서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상담자에게 상담을 거부당한 사례는 의료인도 아닌 상담 수습학생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들에게 위와 같은 사건은 더욱 심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힌다. 위 사례에서 나오듯, 목숨을 잃기도 하고 당장 필요한 시술이나 수술을 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모든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나를 인간으로 봐주는 의사를 찾는 거다”
설사 다른 의사나 병원을 찾아 나선다 해도, 추가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저소득층이거나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라면, 더 큰 짐을 지게 되는 것이다. 한 남성 HIV감염인은 요양소 6곳에서 입소를 거절당하고 집에서 80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입소해야 했고 가족들이 모두 입소가능한 요양소를 찾느라 매달려야 했다. 한 레즈비언은 1년간 침습적인 테스트와 치료를 통해 불임치료를 받고 시험관아기 시술을 확정받을 즈음,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시술을 거부당했다. 그곳이 보험적용 가능한 유일한 진료소였는데, 시술을 거부당하자 힘들게 다른 곳을 알아봐 돈을 주고 불임치료를 받게 되었다. 결국 돈과 시간의 이중적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경험에서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다. 의료서비스를 거부당한 경험은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들은 보건의료 제공자를 불신하고 의료서비스에서 멀어지게 된다.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생각나 의료서비스 이용 자체를 회피하거나 연기하게 되고, 설사 의사와 만나게 되어도 필수적일 수 있는 개인정보를 알리지 않는다. “치료해주고, 처방해주고, 나를 문제덩어리로 보기보다 인간으로 봐주는 의사를 찾는 거다. 의사나 큰 병원에서 너무 많이 거부를 당해서,…이제 난 내 성적 역사(gender history)에 대해서는 절대 알리지 않는다.”는 트랜스젠더의 고백은 아프기만 하다.
두려움을 없애려면 우선 차별과 낙인을 없애야
한국의 상황은 미국과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7일 신촌 퀴어퍼레이드, 6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기독교보수세력의 행태를 보면, 미국보다 오히려 더 열악한 사회적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구나, 미국과 같이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나 통계는 한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 이용 실태와 인식을 알기도 힘들다. 이 와중에, 지난 6월 발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설문조사 결과’는 중요하게 언급할 만하다. 이 조사(온라인)에 참가한 응답자 3,159명 중 47%가 의료기관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일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고 답했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 응답자 중 67%가 병원에서의 차별이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거나 미룬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의료서비스를 잘 이용할 수 있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물론 의료기관과 의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학교육 내에 성소수자와 HIV/AIDS에 관한 정보와 인권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성소수자, HIV감염인이 적절하게 진료받는 것이 의사 개인의 선의에 좌우되어서는 안될 일이며, 전체 의료기관/의료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에 대한 적절한 정보•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이처럼 환자를 만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기관의 정보/지식/태도를 바꾸는 것은 강조되어야 할 과제지만,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해외 연구에서는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의 인권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우선과제로 차별과 편견을 없애려는 법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별과 낙인, 동성애 범죄화로 인해 성소수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고,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들이 기본적인 의료/사회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차별당한 경험을 전하면서,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들은 공통적으로 “충격을 받고 수치스러웠으며 굴욕적이고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체적•정신적 질병과 불건강한 상태를 치료받고자 찾은 의료기관에서 굴욕감과 모욕감을 느낀 채 쫓겨나야 했다. 이들이 당당하게 의료를 이용하기까지, 그리고 의사를 똑바로 대면할 있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 혹은 비용이 들지, 이런 것은 아무도 계산하지 않는다. 결국은 차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존재로 이들을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을 처벌하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낙인과 차별 없이 살 권리를 부여하고 사회구성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국가의 존재이유기 때문이며,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이 우리의 싸움이다.
박주영(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참고문헌
Lambda Legal, When Health Care Isn’t Caring: Lambda Legal’s Survey of Discrimination Against LGBT People and People with HIV (New York: Lambda Legal, 2010). 다음을 참조하시오. www.lambdalegal.org/health-care-report
National Women’s Law Center, Health Care Refusals Harm Patients: The Threat to LGBT People and Individuals Living with HIV/AIDS, May,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