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논문]프로초이스 의사, 페미니스트 보건의료활동가, 그리고 낙태 권리를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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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uggleforabortion2006.pdf (146.13 KB)

Joffe, C.E. et als. 2004. “Uneasy allies: pro-choice physicians, feminist health activists and the struggle for abortion rights”,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Vol. 26. No. 6. Pp.775-796.

제목에서부터 알수 있듯 이 논문은 프로초이스 의사들과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사이의 쉽지 않은 연대의 역사를 미국의 ‘낙태’ 합법화 논쟁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얼핏 프로라이프 의사들과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사이의 ‘갈등’은 상상되는데, 프로초이스와 페미니스트 사이의 연대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 논문을 읽으면 왜 ‘낙태’와 관련된 쟁점이 미국이나 호주 등 소위 서구권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주제였는지를 알 수 있다. 낙태에 관해 고전처럼 알려져 있는 <더 월>에서 데미 무어가 시술할 의사진을 찾지 못해 무허가, 무책임한 인물(의사인지도 모르겠는)로 부터 시술을 받는 장면이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1960년대, 70년대 매우 빈번한 상황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1990년대에 와서야 산부인과 레지던트들에게 낙태시술 교육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면 왜 낙태 쟁점이 여성운동의 핵심 사안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료진들이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들이 ‘시술을 직접하거나 핵심 전문 조언가’로 활동하게 되는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경험과는 매우 다르다. 국가의 정부 주도 차원에서 ‘인구통제’의 일환으로 낙태, 피임시술 등이 위로부터 특혜(?)와 조처와 병행해서 도입되었던 1960년대 ~ 80년대 였기에 낙태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건 쉽게 상상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낙태시술을 둘러싸고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 진영의 입장과 의료진의 전문성의 개입을 강조하고 진행된 논쟁의 역사를 간명하고도 깊이있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을 돌이켜보면 어떤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낙태논쟁을 통해 한국 의료진과 페미니스트 진영의 연대관계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짚어보는 작업을 해보면 흥미로운 비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사적으로는 좀더 살펴봐야 하지만, 현재 낙태의 허용 기준이나 합법의 수준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들은 조금씩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 의료진의 전문성에 페미니스트 운동은 얼마나 개입을 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을 통해 의료진들은 얼마나 ‘활동가’로 변모할 수 있을까? 이런 개입과 활동이 낙태 쟁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쟁점으로도 번져갈 수 있을까?
논문에 따르면 의료진들이 ‘활동가’로 변신하면서 같은 의료진들로부터 왕따 당하게 되는 상황도 겪게 됨을 설명한다. 동시에 전문가로서의 의료진의 위치가 현재 ‘기업화’되는 병원체계에서 ‘경영진’에 의해 오히려 ‘전문성’이 좌지우지 되어가는 상황도 언급한다. 비록 한국의 사례와 다르지만, 이 논문은 의료진들이 ‘활동가’가 된다는 의미와 페미니스트들이 ‘낙태’ 전문가가 되어가는 속에서 변화되는 것과 연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글은 문현아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이 작성하신 글로, 젠더와건강 뉴스레터제3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출처

|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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