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난한 사람 살리는 ‘담뱃값 인상’ 돼야

담뱃값 인상에 대한 정치권의 말바꾸기가 횡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16일 국무회의에서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2005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담뱃값 인상에 대해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한나라당 시절인 2006년에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참여정부에 대해 “담배가격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역진성을 심화시킨다”고 반대하였다.

말바꾸기는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시절인 2004년에는 담뱃값을 500원 올렸고, 참여정부 시절에도 여러 번 담뱃값 인상을 시도했다.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된 이번에는 담뱃값 인상이 ‘힘없는 서민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주장이다.

나는 이번 담뱃값 인상이 정부 재정 수입을 늘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상 액수가 얼마이든지, 정부 재정 수입을 늘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담뱃값 인상도 담배 소비를 줄여 국민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인상 폭에 따라 담배 소비 감소 정도가 결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 명확한 것은 담뱃값을 올리면 가난한 사람과 청소년의 담배 소비가 부유한 사람이나 성인보다 더 많이 줄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인상 반대론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담배를 더 많이 피우니 담뱃세는 역진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은 가난한 사람이 흡연을 더 많이 해서 질병에 더 많이 걸리고 수명이 더 짧아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담배를 끊어서 더 건강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리면 흡연자가 1년에 121만원의 세금을 부담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이 담배를 끊으면 이런 세금도 부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수명이 10년 늘어나고 암 발생을 30% 줄일 수 있으며 1년 동안 담배 사는 데 드는 164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도 알려줘야 한다.

나는 ‘서민을 죽이는’ 담뱃값 인상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가난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담배이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담배회사다. 정치권이 가난한 사람을 살리는 데 진짜 관심이 있다면 담뱃세 인상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담뱃세 인상으로 만들어진 재원을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궁리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현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에 반대하며, 법인세나 근로소득세의 누진성 강화에 찬성한다. 그러나 담뱃세 인상을 단순히 ‘서민증세’라고 내치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단순히 찬반을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담뱃세가 가지는 공중보건학적 장점을 받아들이고, 담뱃세 인상에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금연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대한금연학회 회장

* 이 글은 지난 9월 22일, 조홍준 건강과대안 대표님이 한겨레신문 <왜냐면>코너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출처는 다음을 참고하세요.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562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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