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들 ‘국가지정’ 여부조차 몰라… 공공의료 현주소부터 돌아봐야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가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과 미국 등 소위 ‘선진국’에서도 발생하자 에볼라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공포(Fear)와 에볼라(Ebola)를 결합한 ‘피어볼라’(Fearbola)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67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마르부르크 박사가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 주변에서 처음 발견했고, 1976년 수단에서 발병하여 그 위험성이 확인됐다. 그 이후로도 아프리카에서 끊이지 않고 유행을 해 온 익숙한(?) 전염병이다.
▲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공개한 에볼라 바이러스 현미경 사진
ⓒ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혹자는 서아프리카인들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로 알려진 과일박쥐를 먹는 미개한 풍습에서 인간 감염이 시작됐다고 여긴다. 그러나 미 툴레인대학의 바이러스 전문가 대니얼 바우슈 교수가 <미국의 소리>에서 지적하듯 “병원균을 옮기는 박쥐 등은 보통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낮은 깊은 숲 속에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먹을 것과 자원을 구하러 숲 속 깊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것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불러 온 것”이다. 즉, 에볼라의 발생 원인에는 빈곤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주되게 유행한 지역을 살펴보면, 오랜 내전이 있거나 개발 실패로 경제와 공공의료가 심각하게 훼손된 곳이 대부분이다. 대니얼 바우슈 교수의 말처럼 처음 1, 2건의 사례는 생물학적인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지속적으로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은 사회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설사 전염병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보건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고, 적절하게 교육이 이뤄질 경우엔 조기에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아프리카 각 정부들은 보건 및 교육에 투자하는 예산의 네 배 가량을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 개발이 늦어진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10년 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심각성을 예상한 일부 학자들에 의해 백신 개발은 진행된 바 있다. 지난 2004년 캐나다와 미국 연구진이 영장류에게서 탁월한 효과를 보인 ‘VSV-EBOV’라는 백신을 만든 것. 당시 연구진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2년 내에 실시하고, 2010년~2011년 사이 판매에 대한 공식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죽음의 계곡’(기술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자금 부족으로 인해 상용화에 실패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을 넘지 못했다. 치료제를 만들어봤자 주요 적용 대상자인 아프리카 사람들은 구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백신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에볼라의 위협이 선진국에까지 이르러서야 ‘VSV-EBOV’ 백신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영국의 보건학자인 앨리슨 폴록 교수는 미국의 진보언론 <카운터펀치>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 등은 지난 20여년간 WHO의 예방의학이나 공공보건 분야에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는 빌 게이츠와 같은 대자본가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기부하는 자금은 결국 머크(MERK)와 같은 거대 제약회사에게 떨어지고, 그 개발 분야도 C형 간염 등 서양인들에게 중요한, 한 마디로 돈벌이가 되는 질병의 치료약이나 백신 개발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에볼라 대응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
에볼라 환자가 미국 내에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사회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미국 내 첫 에볼라 감염자이자 유일한 사망자인 토머스 에릭 던컨의 죽음을 둘러싼 문제가 논쟁의 중심에 있다.
현재까지 미국 내 또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미국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 9명. 이 중 목숨을 잃은 이는 던컨뿐이다. 던컨이 다른 이들과 달랐던 건 발견 초기에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던컨이 최초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는 타이레놀 복용 권유와 함께 쓸모없는 항생제 처방을 내려 돌려보냈다. 병원 당국은 여전히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던컨이 미국의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라이베리아 국민이었다는 사실과 관계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대해 던컨의 조카, 조지퍼스 위크스가 <댈러스 모닝뉴스>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삼촌은 건강보험도 없고 치료비를 지불할 재산도 없는 유색인종 남성이었다… 던컨은 붕괴된 의료시스템의 희생자였다. 내 삼촌의 죽음과 관련해 가장 큰 의문은 ‘병원은 왜 삼촌을 그냥 돌려보냈는가’이다. 최근에 라이베리아에 다녀왔으며 에볼라 위험 때문에 귀국했노라고 명시적으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이 103도(섭씨 39.4도)나 되고 위통이 있는 환자를 왜 집으로 돌려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병원으로부터 듣지 못했다.”
던컨의 치료를 도왔던 니나 팸과 앰버 빈슨 간호사의 감염과 그 감염을 둘러싼 사회적인 반응들도 뜨겁다. 두 간호사의 감염 사실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미국 매체들과 보수 정치인들은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감염된 이유가 던컨을 치료한 후 오염 제거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에 맞서 미국전국간호사노조(National Nurses United)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당시 병원에 간호사를 위한 적절한 보호 장비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장비 사용법에 대한 교육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실증적으로 2000명의 간호사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75% 가량의 간호사가 병원 측으로부터 에볼라에 감염된 환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치료하는지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미국전국간호사노조는 ‘나는 니나 팸(Nina Pham)입니다’, ‘나는 앰버 빈슨(Amber Vinson)입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연대의 필요성을 긴급하게 호소하고 있다. 보수 정치인들과 미디어 평론가들에 의한 인종주의적 헐뜯기 게임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병원의 위험물질(hazmat) 처리 절차 훈련을 받았던 보건 의료인 애비 노먼은 <허핑턴 포스트>에 미국 사회의 모순을 제기했다. 그는 현재 미국이 에볼라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돈과 기술이 있지만 정작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소통이며, 예방조치를 중시하는 보건의료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즉, 예방을 위한 공공의료에 집중하고, 공포의 확산이 아닌 사회적 소통에 노력을 기울일 때 에볼라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7개 국가지정병원 명단이 ‘비밀’인 이유
▲ 지난달 열렸던 부산 ITU 전권회의 회의장에 설치됐던 에볼라 감염 의심환자 임시 격리병실.
ⓒ 정민규
알려진 바와 같이, 박근혜 정부는 서아프리카에 에볼라를 막기 위한 의료진 파견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자원한’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 자체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 불편함의 이유를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전염병 대응을 위한 국제의료지원은 단순히 우리가 이해하는 의료봉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전염병 대응은 전 세계, 전 인류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그 대응 또한 전 지구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기본 전제이다.
즉, 일시적으로나마 의료공공성의 개념이 국경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지른’ 국제의료지원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료공공의 기본 인프라인 공공병원마저 폐쇄하고, 의료민영화 정책으로 의료공공성을 파괴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모순적 행보가 ‘불편’한 것이다.
에볼라 대응에만 국한지어 보더라도 이러한 모순이 존재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난 9월 21일 가나에서 6개월 동안 체류한 뒤 귀국한 부산의 A씨가 에볼라 의심 증상을 보여 119에 신고를 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부산소방안전본부는 곧장 질병관리본부에 세 차례나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질병관리본부의 통제를 받지 못한 채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부산대병원은 국가지정병원으로 가라며 입원을 거부했다.
이에 부산소방안전본부는 울산대병원에 연락을 했으나 병원 측은 “우리는 국가지정병원이 아니니” 거꾸로 부산대병원으로 가라며 입원을 거부했다. 다행히 그는 말라리아 환자로 밝혀졌지만 현재의 한국의 에볼라 대비 관리체계가 어떤 수준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여기서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질병관리본부가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울산대병원이 ‘국가지정병원’이었다는 점이다. 즉, 울산대병원은 자신이 국가지정병원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부산대병원이 국가지정병원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는 “다른 환자들이 불안해 할 수 있다”며 전국 17개 국가지정병원 명단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실질적인 수용가능 인원(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도 4명밖에 수용 못하는 수준)이나 구비한 장비 실태를 보면 더욱 암울하다. 전염병 방역은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공의료의 기본이다. 이처럼 국내에 기본적인 방역체계도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료진을 파견한다는 것은 논란을 살 수밖에 없다. 국내 전염병 대비 관리체계 정비는 전 세계 전염병 관리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에볼라에 대한 국제적 공조와 더불어 국내 환자 발생 시 이를 대응할 만한 의료진과 장비, 공공병원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마을에 불이 났으면 불의 진원지로 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불을 끄는 것은 맞지만, 마을 전체를 위해 우리 집도 불을 끌 수 있는 준비를 해둬야 한다. 집에 있는 소화기마저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남의 집 불 끄러 가라고 재촉하는 상황이 곱게 보일 리 없다.
* 이 글은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이자,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인 최규진 선생님이 지난 11월 2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8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