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독감시대 출처 : 한겨레 21 [2009.11.06 제784호] |
[표지이야기]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과 돈 버는 사람… 한 해 사망자 61만~121만 명인 말라리아 치료약은 왜 보급되지 않나 |
▣ 신윤동욱 |
신종 플루는 황금알을 낳는 신종 산업을 낳았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 표현대로,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일까? 잃는 사람이 있으면 얻는 기업도 있다. 어쨌든 작금의 전 지구적 위기에 타미플루를 생산하는 로슈가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신종 플루가 계속 출현할지 모르는 작금의 시대를 ‘황금독감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제약회사 다음은 부자 국가
변진옥 ‘이윤을 넘어서는 의약품 공동행동’ 정책위원이 지난 9월 ‘신종 인플루엔자 대책, 인권적 관점에서의 진단과 대안’ 토론회에서 발제한 ‘신종 플루가 가진 위험의 본질: 치료제 독점’ 등에 바탕하면, 전세계에 2억2천만 명분의 타미플루가 비축돼 있다고 하는데, 비교적 저렴한 한국의 구입 가격으로 계산해도 55조원에 이르는 액수다. 전 지구적 금융위기 속에서 타미플루 판매량은 2008년에 견줘 2009년 상반기에만 203% 성장했고, 로슈의 성장률도 9.0%에 이른다. 독감 백신 시장은 2007년부터 연평균 8.2% 성장했고, 증권가에선 백신 시장이 100억달러 이상의 시장을 창출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래서 사회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전세계는 지금 로슈의 지적재산권에 인질로 잡혔다”고 지적했다.
조류독감 유행으로 시작된 ‘황금독감시대’의 수혜자는 약을 파는 제약회사, 위상을 높인 세계보건기구(WHO) 등이다. 북미·유럽·일본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고향이자 시장이다. 그래서 백신의 확보도 부익부 빈익빈. 백신 공장은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노바티스 등이 절대다수를 운영한다. 선진국은 인구의 20%가 복용할 타미플루를 사는 데 연간 보건의료 재정의 1%를 들이면 되지만 중국은 28%, 인도네시아는 67%, 라오스는 173%를 들여야 한다. 로슈가 싸게 공급하는 프로그램 가격으로도 사기가 쉽지 않다.
신종 플루가 선진국을 포함한 전 지구적 문제가 됐으니 망정이지, 말라리아처럼 한 해 사망자가 61만~121만 명에 이르고, 이 중 90%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질병은 예방·치료약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그러니 항바이러스제 비축률이 인구의 100%를 넘는 캐나다 등에서 저개발국가에 약을 원조하자는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선심이 아니다. 지금 밥도 나누고, 약도 나누는 미풍양속의 지구적 확산이 절실하다.
그래서 높은 약값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특허권은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의 카타르 도하 선언에서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회원국의 조처를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이 방해하지 않으며 방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자 이외의 다른 주체가 특허가 포함된 제품을 직접 생산하도록 허용하는 조처를 뜻한다. 변진옥씨의 발제문은 강제실시에 대해 이렇게 요약한다. “강제실시 제도는 특허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특허제도의 본질, 즉 보호받아야 발명과 기술 발전이라는 목표를 완성시키는 보완적 제도다. 왜냐하면 특허제도에는 특허받은 기술이 ‘널리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그 기술의 ‘독점을 허용’한다는 일종의 모순이 들어 있으며, 정작 특허의 본질은 ‘독점의 허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널리 사용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래서 강제실시는 특허권 침해가 아니라 보호·보완에 가깝다. 더구나 한국 특허법엔 강제실시를 할 경우 정부가 특허권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강제실시는 특허권 침해 아닌 보호·보완
지금 당장 강제실시가 발동되면 복제약 생산이 가능할까?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한국에서 타미플루 생산이 가능한 13개 기업의 목록을 작성한 적이 있다. SK케미칼은 인도 회사와 250만 명분의 타미플루 복제약 원료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대웅제약도 원료물질인 시킴산의 1t 공급 계약을 맺었다. 변진옥씨는 발제문에서 “시민사회단체에서 보낸 질의서에 답변한 제약사만 해도 매달 최소 400만 명분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