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아프간 비밀 용병, 문화인류학자 |
미국은 문화인류학자를 아프간 전쟁에 ‘참전’시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학자들은 현지 문화에 대한 미군의 이해를 높여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데 기여한다. 아프간의 한 지역에서는 문화인류학자가 투입된 뒤 군사 충돌이 60%가량 줄었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 투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
출처 : 시사인 [120호] 2010년 01월 04일 (월) 10:49:52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38#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스미스 씨는 문화인류학자다. 군인이 아니라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다. 그가 아프간에 온 이유는 미군에게 문화인류학적 조언을 하기 위해서다. 그의 하루는 아침 7시 군 작전 지휘관 회의에 참석하면서 시작한다. 전날 있었던 중대 순찰 작전을 보고받고 아프간 주민 반응을 분석한다. 며칠 전 순찰 중 벌어진 미군의 총격으로 아프간 민간인이 다치자 그는 그 마을 부족장에게 가서 어떻게 사과를 할 것인지, 누가 갈 것인지를 일일이 조언했다. 스미스 씨는 미군이 요즘 주력하는 ‘아프간 주민 민심 바꾸기’ 작전에 큰 몫을 한다. 효과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요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미군이 순찰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사고 유형을 미리 주지시키고 사례별로 대처 방안을 알려준다.
ⓒFlickr 2007년 9월11일 ‘인류학자와 전쟁 참여’ 심포지엄에 참석한 학자들. |
미군과 아프간 주민의 ‘문화적 다리’ 구실
필자가 지난해 이라크에서 만난 캐빈 주말리 씨(29)는 미국 국적 아랍인으로 이민 3세이다. 그는 미국 워싱턴 주에서 자랐지만 부모로부터 아랍어와 아랍문화를 배워 중동권 문화를 잘 안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군무원으로 이라크에 파견됐다. 계급장은 없지만 군복을 입고 군인과 함께 순찰을 다닌다. 아랍어에 능통한 그는 순찰 중 들려오는 주민의 대화를 기록한다. 현지인 가택 수색 때는 누구를 먼저 만나야 하고 여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군인들에게 알려준다. 심지어 어떤 장소에서는 군화를 벗고 들어가야 한다거나, 어느 방에는 코란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미군의 ‘주민 지역 연구(HTS)’ 팀에서 활동하는 로버트 홀버트 소령(왼쪽)이 아프간 나니 지역 주민을 만나 아프간 전통 문화를 취재하고 있다. |
아프간에서도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HTS 프로그램이 실행 중이다. HTS 프로그램 기본 취지는 이처럼 현지 문화에 대한 미군의 이해를 높여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데 있다. 복잡한 종족·종파 갈등이 첩첩으로 깔려 있는 아프간 같은 지역을 군사 행동으로만 다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미군 자체 평가는 무척 긍정적이다. 아프간 한 지역은 인류학자가 투입된 뒤 군사 충돌이 6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HTS 책임자인 퇴역 장군 스티브 폰다카로 씨는 “사회 내 의사결정 방식과 행동양식 기원 등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은 현지 사회의 시선으로 문제를 잘 파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군사작전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HTS는 1인당 연간 40만 달러가량 들어가는 매우 비싼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4년 전부터 HTS 수를 6개에서 26개까지 늘리고 예산도 4000만 달러 증액하는 등 확대에 나섰다.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부처도 새로운 발주처로 떠오른 국무부와 외국을 대상으로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는 국제개발국(AID) 등으로 다변화됐다.
“학자의 전쟁 참여는 연구 윤리 위반”
군수 업체가 문화인류학자를 공급하는 사례도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방위산업체인 ‘BAE 시스템스’ 미국 법인도 아웃소싱으로 미국 국방부 위탁을 받아 아프간 주둔 미군 순찰임무에 인류학자들을 투입한다. ‘BAE 시스템스’는 본래 무기 회사이기에 ‘인류학자를 무기에 끼워서 아프간에 판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그 실적은 기대 이상이다. 헬만 주드에 주둔한 미국 제2 보병부대 소속인 매컬리 상사는 “그들은 작전 중 아프간 주민을 다룰 줄 안다. 어떻게 하면 그 주민 입에서 주요 정보가 나올 수 있는지 고도의 심리 전술을 구사한다. 때로는 병사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다.
실제로 어느 마을을 방문했을 때 한 지역 주민이 ‘탈레반 지도자가 은신하고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러자 우리 부대와 이동 중인 인류학자가 그에게 장소를 그려보라고 했다. 인류학자는 그 그림을 분석한 뒤 그가 거짓 정보를 주고 기습 매복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했다. 과연 그가 알려준 곳에는 도로 매설 폭탄이 묻혀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미국 행정부는 ‘참전’할 문화인류학자를 유치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위는 2009년 12월2일 아프간 카불에서 미군이 순찰하는 모습. |
문화인류학자 투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미국 인류학계 내부에서는 학자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학문의 군사화’ ‘용병 인류학’ ‘종군 인류학자’ ‘전쟁 인류학’ 같은 신조어가 등장했다. 2007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인류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이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인류학자의 국가안보 활동 참여에 관한 특별위원회’는 별도의 보고서에서 HTS 참여가 연구 대상의 자발적 동의와 철저한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윤리를 위반할 뿐 아니라 연구 결과가 미군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인류학자는 아예 전쟁에 문화인류학자를 투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우려하는 인류학자 네트워크(Network for Concerned Anthropologists)’를 결성한 새너제이 주립대학 로베르토 곤잘레스 교수는 “인류학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문화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인류학회는 공식적으로 참전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인류학회는 또 미국 군사주의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전체 인류학자와 그들의 연구 대상에까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도 염려했다. 그래서 HTS 활동에 대해 학계의 호응은 신통치 않다. 학자들의 활동 기간이 6~9개월로 짧고 보수도 높지만, 박사급 연구진 참여가 저조해 학자들의 미군 현지 배치 일정을 미뤄야 할 정도다.
HTS 팀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다. 군대와 같이 이동하고 군복을 입은 인류학자들은 실제 연구 활동을 하던 시절보다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또한 군인과 함께 같은 조직에서 일할 때 문화적 충돌이 불가피하다. 군대 지휘 체계 밑에서 지휘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과거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6개월간 활동한 문화인류학자 수잔 그랜든 씨(39)는 그때의 경험이 끔찍했다고 전한다.
“군복을 입고 다니고 호시탐탐 주민 상태를 지켜보고 지휘관에게 보고한다는 것이 학자로서 좋은 경험이 아니다. 또한 군인은 민간인에 비해 인내심과 융통성이 상대적으로 없어서 의견을 조율하는 데 힘들었다. 어느 순간 내가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목적이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 이해를 도와 평화롭게 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이라크에서 군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미군 군사력이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미칠 수 있나를 연구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인류학자 유치는 쉽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추가 파병을 앞두고 더 많은 HTS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학자 모집이 쉽지 않자 미국 행정부는 자체적으로 인력 조달과 양성에 나섰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학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학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보다 아프간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좋지 않은 이 시기에 미국 사회에서 학자들의 ‘전쟁 참여’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