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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보건의료단체연합, 수의사연대, 전국교수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MBC PD수첩’ 무죄 판결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진 상식적인 판결이라며 검찰과 한나라당, 보수언론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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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 사진과 관련해 의사의 발언을 vCJD로 옮긴 부분이 자꾸 걸립니다. 그 부분은 에서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 표현은 영광스럽게도 피디수첩을 기소한 2008년 7월 29일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에 포함되었다. 피디수첩에 우호적인 진중권마저도 이렇게 얘기한다, 뭐 이런 맥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태와 아무 관계없는 제3자의 관전평을 무슨 대단한 ‘증거’나 되는양 수사결과 발표에 집어넣은 것을 보고, 오죽 궁색하면 저럴까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애초에 검찰에서도 기소가 무리라고 판단했던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기어이 한 검사의 옷을 벗겨가면서까지 기소를 성사시켰다. 이것은 사법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다.
결정적 오역
검찰이 가진 증거(?)라고는 딱 하나, 정지민이라는 번역자의 증언이었다. 그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여러 가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지만, 그 중 핵심은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의사로부터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는데, (피디수첩 제작진이) 그것을 슬쩍 vCJD로 바꿔서 내보냈다는 것이었다. 번역자 정지민은 이 부분에 대해 대단히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얼마 전에 낸 책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내게는 방영되지 않은, 그러니까 빈슨 모친이 딸의 장례식 직후, PD수첩과의 인터뷰가 아닌 현지 코디와의 인터뷰에서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번역 파일이 있다 (202쪽) 나는 여기에, 내가 갖고 있던 일부 번역 자료 중 빈슨 모친이 딸의 장례식 날 현지 코디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MRI로 CJD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도 첨부했다. 기자는 왜 내가 이런 결정적인 자료를 진작 주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는데, 내가 ‘사실관계를 너무 일찍 밝혔을 경우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이 해명 방송 당일만을 목 놓아 기다렸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냥 ‘일단 검찰 조사에만 냈고…’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덧붙였다. ‘결정적인 자료일 수도 있죠.’” (210쪽)
문법적으로 비문(非文)에 가까워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대강 (1) 빈슨의 모친이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다는 내용의 번역 파일이 있고, (2) 이는 검찰에만 제출하고 기자들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는데, (3) 그것은 이 사실이 새나갈 경우 행여 피디수첩 측에서 대응논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해서였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지민이 조중동의 기자들에게까지 비밀로 감추어 두었던 그 결정적 번역 파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07:03) (여) 아레사는 MRI를 통해 CJD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쿱스펠트-야커병이라고 한다. 정말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병이 내 딸을 내게서 뺏아간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상실감을 정말 크게 느낀다.”
그런데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Well… Aretha had been diagnosed possibly through her MRI as having a variant of CJD, which is Creutzfeldt Jacob disease.”
자기가 ‘a variant of CJD’를 그냥 CJD로 오역을 해놓고, 그것을 근거로 피디수첩에게 엉뚱한 죄목을 뒤집어씌웠다는 얘기다. 더 재미있는 것은, 딴에는 그 오역을 “결정적인 자료”로 생각하여 조중동 기자들에게까지 고이 비밀로 간직했다는 것. 그 모험이 얼마나 신났는지 책에다 자랑까지 해 놨다. 그런데 그 비장의 무기가 오역이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그래도 이 허무함 속에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 ‘닭짓’ 덕분에 검찰과 조중동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게 됐다는 것이리라.
억지와 궤변
자신의 오역이 드러나자 정지민은 다시 ‘a variant of CJD = CJD’라는 해괴한 주장을 들고 나섰다. 의학에서 ‘variant’라는 말은 그 병의 통상적 경우와 임상적 증세가 많이 다를 경우에 붙는 수식어이나, 일상에서는 간혹 ‘a type of’ 혹은 ‘a kind of’ 정도의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데에 기댄 회피 기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언어학적 편법도 그녀를 곤궁에서 구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일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 우석균 보건의료 정책국장의 말이다.
“백만명 중에 한두명 걸리는 s, f, i 등 세 종류의 CJD가 발견되고 난 뒤,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인간에게서 발견된 CJD를 새로운 변종이라 하여 ‘new variant of CJD’라고 불렀고, 이후 ‘new’의 ‘n’이 떨어져 그냥 vCJD가 됐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의 말이다.
“학술논문에도 ‘a variant of CJD’와 ‘vCJD’를 병기해서 쓰며, a variant of CJD와 variant CJD를 같은 의미로 동시에 쓴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 의대교수의 말이다.
“통상 variant라는 표현은 인간광우병을 뜻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의 연방관보와 미국 질병관리센터의 문건에도 ‘a variant of CJD’는 곧 vCJD를 가리킨다고 나와 있다. 당시의 미국 신문도 그렇게 보도했다. (반면, CJD의 다른 유형들이 ‘a variant of’라는 표현과 더불어 있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즉, “통상 variant라는 표현은 인간광우병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조중동의 태도다. 그들은 그저 정지민의 궤변을 인용해 ‘카더라’ 통신질을 할 뿐, 자기들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도 정지민의 말이 억지임을 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복화술이 아니라 직접화법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백번을 양보하여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문맥은 어떨까? 정지민이 아무리 우겨도,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광우병에 걸렸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발언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a variant of CJD’가 언급된 장례식장 2권짜리 테이프에는 “인간에게 걸리는 광우병”이라는 부연설명이 나온다. 정지민이 보지 못한 다른 테이프들에는 이런 발언들이 나온다.
“우리 딸이 vCJD에 걸렸다면, 매우 매우 희귀한 사례라고요.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3명뿐이고, 우리 딸이 그 셋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요.”
“아레사에게는 신경의가 있었어요. 그 신경의는 우리에게 MRI 결과를 통보해준 그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MRI를 통해 우리 딸이 vCJD가 의심된다고 했어요.”
상식적으로 아레사의 어머니가 제 딸이 vCJD에 걸린 게 아니라고 믿었다면, PD수첩에서 뭐 하러 미국까지 그녀를 만나러 가겠는가? 게다가 아레사의 어머니는 이 사건이 벌어진 후 피디수첩 측에 자신이 말한 ‘a variant of’가 vCJD를 가리킨다고 재차 확인해 준 바 있다.
우리 딸은 변종 CJD(vCJD)에 걸렸다고 의심되었었습니다. MRI 결과가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CJD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변종(v)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CJD에는 다른 종류들이 있지만 항상 변종 CJD로 의심되었었어요. 그 진단은 MRI를 통해 내려졌어요. 진단을 내리는데 유용하다고 인정받은 실험방식입니다.
더 말이 필요한가? 발언한 당사자가 자기가 그 말로써 vCJD를 의미했다고 하는데, 번역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정지민의 주장은 기껏해야 왜 자신이 ‘a variant of CJD’를 CJD로 오역했는지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즉, “이러저러해서 제가 그만 착각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늘어놓을 얘기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마도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소장일 것이다. 피디수첩을 기소한 검찰을 관광 보낸 그 문건이다. 거기에는 아레사 빈슨이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이 ‘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라 명시되어 있다. 정지민의 입 하나만 바라보는 검찰이 제 힘으로 입수한 유일한 자료가 그 소장인데, 이 야심차게 입수한 그 자료가 결국 검찰의 관광 티켓이 되고 말았다. 더 황당한 것은 보수언론이다. 검찰이 이 소장을 입수했을 때, 보수언론에서는 그 소장에 아레사 빈슨이 MRI 진단 결과 CJD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분들은 도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쓴 걸까?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라 ‘고소장의 유령’을 본 모양이다.
검찰에서는 그 소장이 “유족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할 것이라면, 뭐 하러 외교라인까지 동원해 그 문건을 입수했는가? 미국에서 벌어진 민사소송에서 그것은 유족 측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지금 하는 게 어디 그 재판이던가? 문제가 되는 피디수첩 재판과 유일하게 관계된(relevant) 사안은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무엇을 주장하느냐’다. 이 주장을 피디수첩이 왜곡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 아니던가? 아무리 마구잡이로 하는 기소라 하더라도 최소한 맹구 수준은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순도 100% 청정 허위
정지민이 끝까지 a variant of CJD를 CJD로 옮기는 게 옳다고 우기는 근거는, 테이프에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이 아닌 다른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그 가능성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는 것이었다. 가령 2008년 7월 15일 문화일보에는 “번역자 정지민씨 또 새 사실 폭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MBC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 번역·감수자인 정지민(여·26)씨는 15일 “고 아레사 빈슨이 입원했던 메리뷰 병원은 빈슨에게 비타민을 계속 처방했다”면서 “이는 위장접합술(gastric bypass) 후유증을 의심한 처방인데, PD수첩이 사인을 인간광우병(vCJD)으로 몰아가려고 이 내용을 고의적으로 빼고 편집,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가 a variant of CJD가 그냥 CJD를 의미한다고 우기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아주 허무하게도 이 주장은 법정에서 순도 100%의 청정 허위로 입증됐다. 판결문을 보자.
(3) 정지민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또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에서, 자신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테이프에는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거나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피고인들이 이를 고의적으로 빼고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증제266호증의2, 제267, 268, 269호증) 그러나 정지민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테이프는 물론 번역하지 아니한 인터뷰 테이프 어디에도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거나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부분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것만은 정지민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지민은 자기가 번역한 테이프에도 없고, 번역하지 않은 다른 테이프들에도 없는 얘기를 도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2008년 <문화일보>의 기사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한다.
정씨는 “전문가 조언과 메리뉴 병원 수술 집도의의 논문 등을 찾아본 결과, 위장접합술 시술 뒤에 비타민 B1의 흡수가 극단적으로 낮아져 뇌가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 후유증으로 ‘베르니케 뇌병변’이 발생, 사망할 수 있다고 논문에 적시돼 있다. 만약 사인이 베르니케 뇌병증이라면, PD수첩은 쇠고기는커녕 CJD 계열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병을 vCJD로 몰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레사 빈슨이 수술후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거나 베르니케 뇌병변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사후적으로 조작한 기억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정지민이 피디수첩의 목에 건 또 하나의 죄목도 결국 자기가 자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허무 개그로 끝나고 만다. 그건 그렇고, 그 ‘전문가’란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검찰, 보수언론과 더불어 이 ‘전문가’라는 분이 이번 해프닝에서 담당한 역할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분인지 매우 궁금하다.
허위증언 진술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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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2009년 4월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MBC 노조원들이 출입구를 봉쇄한 채 검찰 수사관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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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민은 자신이 감수할 때만 해도 번역이 똑바로 되어 있는 것을 감수 후에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바꿨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보슬 피디에 따르면, “정씨와 검찰이 미처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감수 전 자막의뢰서와 감수 후 자막의뢰서가 문서로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서에는 각각 최종 입력시각이 저장돼 있었다.” 결국 정지민이 최종 감수한 내용이 최종입력시간과 더불어 문서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이 법정에서는, 변호인으로부터 영어 감수전 자막의뢰서 등을 제시받고 오역 논란이 일었던 부분들 모두 영어 감수전 자막의뢰서와 동일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 진술을 번복하였다.
한 마디로 피디수첩에서 감수 후 번역을 변경하거나 수정한 흔적이 없고 문제가 됐던 오역들은 정지민이 감수를 거친 그대로였다는 얘기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이 ‘문서’를 통해 확실히 반박이 되자, 그는 ‘감수과정에서 내가 구두로 지적했는데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었다. 자기가 감수한 내용이 최종적으로 반영되었는지 확인은 했느냐는 질문에는 아주 창의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1) “근시라서 볼 수 없었다.”
(2) “보조 작가가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다.”
(3) “그때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 일부러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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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완전히 개그라 할 수 있다. (1) 근시라서 볼 수 없었다니, 앞으로 감수자는 필수적으로 신검을 받아야겠다. (2)는 전기기술자 불러다 놓고 집안에 뭐가 고장 났는지 끝까지 안 알려주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3)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 일부러 보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것도 “일부러” 유기를 했으니, 그 책임이 작지 않다. 감수자는 자기가 감수한 내용을 최종 확인할 의무가 있다. 방송에 오역이 그대로 나갔다면, 그 책임은 최종 감수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황당한 것은 정지민이 자기가 감수를 한 방식에 대해서조차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방송 내용과 워드로 저장되어 있는 가 스크립트를 비교하여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이를 구두 상으로 알려주고…. (검찰수사기록 제1114-1115면, 2008. 7. 5. 제2회 정00 진술조서)
이00은 영상을 돌리면서 영어의 원문을 들려주고 저는 출력한 스크립트에 나와 있는 번역문을 보면서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는지 감수를 해주면서…..(검찰수사기록 제3709면, 2009. 2. 12. 제3회 정00 진술조서)
그는 모니터 상의 가(假)스크립트를 보고 감수를 했을까? 아니면 출력한 스크립트를 보면서 감수를 했을까?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인데, 왜 판결문에서는 특별히 이 부분까지 언급했을까? 정지민은 법정에서 문제가 된 오역들이 자기의 감수를 거친 그대로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얼떨결에 “지독한 근시라서 모니터를 볼 수 없었다”고 둘러댄 바 있다. 그래서 출력한 것을 보고 감수를 했다고 나중에 말을 바꾼 것이라는 뜻일 게다.
단정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검찰에서 의도적 오역이라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① “If she contracted it, how did she?”에서 if절을 빼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contracted’라는 말이 두 번 반복돼서 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것은 자막 처리할 때 흔히 있는 일이다. 자막에 모든 말을 다 번역해 집어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데서도 ‘의도’를 의심한다. 이 엄격한 기준을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가령…
검찰에서 문제 삼은 또 한 가지는 ② “Doctors suspect…”에서 suspect를 빼고 단정적 표현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게 의도적 오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목은 정지민씨가 직접 번역한 부분이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그렇게 오역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면, 검찰은 마땅히 정지민씨의 ‘의도’부터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검찰에서 문제 삼는 또 다른 표현은 ③ “could possibly have…”다. 그런데 이를 ‘걸렸다’로 번역한 부분 역시 정지민씨가 감수를 맡은 부분이란다. 그렇다면 검찰은 정지민이 감수 과정에서 이 부분을 걸러내지 않은 의도가 무엇인지도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번역 대본 중에는 정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다. 가령 장례식 장에서 피디수첩이 아레사 빈슨의 친구에게 했던 질문이다.
Q: “아레사가 언제부터… “
A: “언제 광우병이라고 생각이 들었냐고요? 지금은 모르지만 광우병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형태가 원인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여기서 피디수첩은 명백히 빈슨의 병명을 광우병으로 단정하고, 빈슨의 친구를 상대로 유도심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번역의 원문을 보자.
Q: “What do you think made miss Aretha Vinson sick?”
A: “It’s speculated Aretha had the mad cow in a human form. However I am not sure at this time, but that’s what’s been speculated to be. Some form, any form.”
(Q: 아레사 빈슨이 무슨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세요?
A: 아레사는 인간형태의 광우병에 걸렸다고 추정됩니다.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이 지금 추정되는 그의 병명입니다. 어떤 형태든.”)
원문을 보면 위의 번역이 완전히 창작임을 알 수 있다. 이 엉터리 번역을 누가 했는가? 재미있게도 정지민이 했다. 아예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단정을 하고 친구에게 유도심문을 하는 것은 정지민이다. 만약에 피디수첩이 이런 수준의 오역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의도가 불순한(?) 세 가지 오역에 정지민이 번역자로서, 혹은 감수자로서 연루되어 있다. 그야말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에이스로 검찰의 집중 마크를 받아 마땅하다.
검찰, 언론, ‘전문가’
“vCJD이니 CJD이니 이것도..사실 전 피디수첩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놀랍지만, 이것이 정지민이 이 사태와 관련 2008년 6월 25일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냥 ‘번역자한테 책임을 돌리는 듯한 피디수첩의 해명이 기분 나쁘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이해할 만하다. 나라도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정지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조중동. 이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보수언론과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정지민의 논리는 마구 자가발전을 하기 시작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는 검찰과도 입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가 보니 그렇게 보수언론과 코드를 맞추어 가다 보니 결국 최초의 입장과 180도 달라진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검찰이나 보수언론은 어차피 정지민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정지민은 의기양양해진다. 이번에 낸 책에서는 자기가 기자들 첨삭지도까지 해줬다고 온갖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검찰과 언론을 마리오네트처럼 갖고 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검찰과 조중동은 정지민을 이용하는 데에 이해관계가 있었다. 검찰에서 그의 증언을 무게 있게 들어주고, 보수언론에서 그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어준 것은 그 때문이다. 달콤함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결국 그는 진실의 법정에서 홀라당 허위의 옷이 벗겨지는 망신을 당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키운 데에는 검찰과 언론 외에 또 한 사람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지민은 지금은 거의 광우병 전문가처럼 행세하지만, 번역을 할 당시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가령 정지민의 번역파일에는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이 ‘쿱스펠트 야커 병’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게 단순한 오타란다. 하지만 ‘크로이츠펠트 야콥’을 ‘쿱스펠트 야커’로 잘못 치려면,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수의 실수를 동시에 해야 한다. 가령 ‘ㅋ’을 친 다음에,
1. 모음 ‘ㅡ’ 대신에 모음 ‘ㅜ’를 쳐야 한다.
2. 이어서 뜬금없이 손가락이 상단 맨 왼쪽 끝의 ‘ㅂ’ 키로 가야 한다.
3. 자음 ‘ㄹ’을 빠뜨려야 한다.
4. 모음 ‘ㅗ’도 빠뜨려야 한다.
5. 자음 ‘ㅇ’을 빠뜨려야 한다.
6. 모음 ‘ㅣ’를 빠뜨려야 한다.
7. 키보드 맨 아래 칸의 ‘ㅊ’ 대신에 맨 위 칸의 ‘ㅅ’을 쳐야 한다.
(하지만 불현듯 정신이 돌아와 ‘펠트’와 ‘야’는 정확히 쳐야 한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8. 모음 ‘ㅗ’를 모음 ‘ㅓ’로 쳐야 한다.
9. 자음 ‘ㅂ’을 빼먹어야 한다.
이런 오타를 칠 확률은, 원숭이가 타자 친 원고가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일치할 확률에 육박한다. ‘쿱스펠트 야커’는 오타가 아니라, ‘Creutzfeldt Jacob’의 미국식 발음을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 적은 것에 가깝다. 이랬던 정지민이 갑자기 광우병 전문가나 되는 양 전문용어로 줄줄 늘어놓게 된 데에는 그가 밝힌 대로 “전문가의 조언”이 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망한 것은 정지민이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다닌다는 것이다. ‘대한언론인회’라는 단체에서는 정지민에게 ’2009 대한언론상 특별상’이라는 것을 수여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곳에서는 그에게 ‘바른 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상’을 주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26살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툭하면 여기저기에 행패 부리고 다니는 애국 깡패 할아버지들 상대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검찰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우익단체는 우익단체대로, 정지민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실컷 충족시킬 뿐. 단물 다 빨린 채 법정에서 발가벗겨진 한 젊은이의 미래는 어쩌란 말인가?
앞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같은 인문학도로서 한 마디 하겠다. 정말 장래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성경 출애급기에 이르기를 “네 이웃을 향해 거짓 증언 하지 말라.”고 했다. 정지민씨, 이쯤에서 사과해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거짓말의 행진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앞으로 역사학도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지민씨는 지금 그 용기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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