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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정지민은 황우석의 길을 걸을 것인가?

정지민은 황우석의 길을 걸을 것인가?

[진중권 칼럼] 정지민은 사실을 존중하라


출처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1-27 오후 6:58:49

반성을 촉구했는데, 전혀 반성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가 재판의 판사를 향해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법정에서 할 일이다. 대충 읽어 보니 이미 법정에서 늘어놓았던 이야기를 도깨비 팬티처럼 줄줄이 늘려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판결문은 정지민의 그런 일방적 주장을 듣고, 객관적 증거에 따라 그 진위를 판단한 결과다. 줄줄이 번호 먹여가며 늘려놓은 질의에 대한 답변은 이미 판결문 안에 다 들어 있으니, 쓸 데 없이 언론플레이 그만 하고 판결문이나 읽으면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정지민의 주장이 객관적 증거에 의해 어떻게 반박되었는지 정리해 보자.

정지민이 존중해야 할 사실들

1. 정지민은 아레사 빈슨이 MRI 결과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CJD) 진단을 받았으나, 이 그가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vCJD·인간광우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번역테이프에도 광우병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인터뷰가 나오고, 그가 보지 못한 다른 테이프에서도 빈슨의 어머니는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딸이 MRI 결과 vCJD 진단을 받았다고 말한다. 빈슨의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낸 소장에도 분명히 아레사가 병원에서 vCJD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고 적혀 있다.

그것도 모자라 아레사의 어머니는 과의 사후 인터뷰를 통해서 아레사의 진단명이 vCJD라고 재차 확인해 주었다. 나아가 아주 허무하게도 아레사 빈슨이 CJD 진단을 받았다는 주장은 정지민 자신의 오역의 소치로 드러났다. 원문은 ‘a variant of CJD’로 되어 있었다.

2. 그러자 정지민은 ‘a variant of CJD’는 s, f, i, v 등 CJD의 여러 유형을 가리키는 표현에 불과한데, 그것을 vCJD로 옮긴 것은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발언 당사자로부터 곧바로 반박을 받았다.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이 말한 ‘a variant of CJD’라는 표현은 s도 아니고, f도 아니고, i도 아니고 vCJD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나아가 자신이 가끔 vCJD를 가끔 그냥 CJD로 칭했다면, 그것은 (폐암을 그냥 암이라 부르듯이) 일반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번역자의 임무는 발언자의 의도를 정확히 옮기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a variant of CJD’를 vCJD로 옮긴 의 번역은 옳았고, 그것이 vCJD를 배제한 다른 CJD라고 옮긴 정지민의 번역은 틀렸다. 즉 자기가 오역을 해놓고, 남이 왜곡했다고 우긴 셈이다.

3. 정지민은 아레사가 CJD 진단을 받았다는 정황 근거로 그가 병원으로부터 비타민 처방을 받았음을 들었다. 아울러 이 취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도 방송에서는 이 내용을 고의로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순도 100%의 청정 거짓말로 입증됐다. 판결에 따르면, 정지민이 직접 번역한 테이프는 물론이고, 그가 번역하지 않은 다른 세 개의 테이프에도 이런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조작된 기억이었던 셈이다. 그 얘기는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까?

<문화일보>의 기사를 참조하건대, 그것은 “전문가의 조언”으로 만들어진 기억으로 보인다. 그의 기억 속에서 허구가 사실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는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다. 아무튼 발언 당사자의 의도를 무시해가면서까지 진단명을 CJD로 봐야 한다고 우기는 그 집요한 억지의 근거는 허위로 드러났다.

4. 정지민은 자신은 감수를 올바로 했으나 측에서 방송에 자막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그것을 부당하게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허위로 드러났다. 감수 전 자막 의뢰서, 감수 후 자막 의뢰서, 방송에 나간 자막을 비교해 볼 때, 문제가 됐던 부분에서 이 세 개의 텍스트 사이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쉽게 말하면 정지민의 주장과 달리 은 감수를 거친 자막 의뢰서를 일체의 수정 없이 그대로 자막에 반영한 것이다.

이로써 정지민의 주장은 최종 입력 시간이 기록된 문서를 통해 명백히 허위로 드러났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수정을 요구했는데, 측에서 반영을 안 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객관적 물증은 방송 자막이 정지민의 감수를 마친 그 상태로 나갔음을 보여준다.

정지민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를 편들어주는 그 어떤 언론도 이번 판결의 내용을 객관적 사실을 들어 반박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그 어떤 언론도 ‘아레사의 어머니가 자기 딸이 vCJD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 어떤 언론도 ‘이 감수 전 후에 번역 원고를 수정한 흔적이 없다’는 판결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못한다. 그들은 기껏해야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광우병보다는 다른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보도도 있었다’고 말하거나, ‘민사 재판의 결과와 형사 재판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에 화들짝 놀란 척 하고 있을 뿐이다.









‘무죄’ 판결이 있은 다음날인 지난 21일 <동아일보> 4면 기사. 이 신문은 정지민 씨의 주장을 받아 판결을 비판했다. ⓒ동아일보


허위의 밀랍과 진리의 태양

“vCJD니 CJD니 이것도 (…) 사실 전 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놀랍지만, 문제가 벌어졌을 때 이게 정지민이 가졌던 최초의 입장이다. 여기에는 아레사의 어머니가 vCJD와 CJD라는 표현을 혼용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말로써 vCJD를 의미했다는 사실이 모두 들어 있다. 이는 현재 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는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일까? 처음에는 그는 그저 ‘번역상의 오류’라는 측의 해명이 기분이 나쁘다는 정도에서 출발했다. 의 말은 사실이긴 하나, 번역자의 입장에서는 기분 좋게 들릴 리가 없다. 거기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보수 언론이 들러붙으면서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조· 중· 동은 이 의도적으로 왜곡을 했다는 쪽으로 사실을 날조하는 하는 데에 정지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정지민 역시 보수 언론과 코드를 맞추면서 주장이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 속에서 그의 기억은 보수 언론의 코드에 맞추어 재조직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죽은 여자 분 어머니가 (…)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다던 정지민이 이제 ‘아레사가 vCJD 진단을 받지 않았는데 이 무리하게 그쪽으로 몰아갔다’고 기억 자체를 수정하게 된다.

한편, 어느 시점에선가 정지민이 ‘전문가’라 부르는 사람이 들러붙어 ‘조언’을 해주고 나선다. 그 후 ‘크로이츠펠트-야코브’를 ‘쿱스펠트 야커’로 받아 적던 정지민은 갑자기 교양 수준이 높아져 광우병 전문가가 다 된 것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기억이 재조직되는 과정에서 허구와 사실이 뒤섞이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른다.

급기야 ‘이 아레사가 병원에서 비타민 처방을 받은 것을 취재해 놓고도 그것을 방송에서 누락했다’고 없는 사실까지 말하게 된다. 이는 의도적 거짓말이 아니라, 기억이 재조직되는 바람에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후 검찰이 개입해 들어왔다. 에 대한 검찰의 고소는 한편으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재판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정지민이 했던 주장의 허위성은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언론은 자신들의 유일한 근거인 정지민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그는 ‘전문가의 조언’을 날개로 달고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수사를 손에 놨다 폈다 하면서 고공비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졸지에 한 없이 드높아져 진리의 태양 근처까지 갔다가 허위의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추락을 하고 만 것이다.

다시 대지로 내려온 그가 제일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은 아직 검찰의 속셈, 언론의 이해, 이념의 색깔에 물들지 않은 최초의 기억이다.

“vCJD이니 CJD이니 이것도 (…) 사실 전 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제2의 황우석이 될 것인가?

그냥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보수 언론과 정치 검찰과, 어느 덜 떨어진 ‘전문가’의 삼각편대가 옆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스물여섯 살의 어린 학생이 잔뜩 들떠 철없이 큰 실수를 했구나’ 하고 넘어갔을 일이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인터뷰를 보니 정지민이 이를 자신의 역사학적 업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책을 내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내지 않는다면 더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 입장에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록으로 남기는 데 의의를 뒀지만 지금은 책이 어느 정도 반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제가 기록을 남기지 않고 한국을 떠나면 또 곡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언론과 법정에서 이웃에게 거짓 증언한 것을 “역사를 공부한 사람”의 사명감의 발로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그 책을 일종의 역사학적 ‘기록’으로 쓴 셈이다. 하지만 법원은 유감스럽게도 그 기록자의 증언이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지민의 진술은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주장하거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 법정에 이르러 번복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

판결문은 이렇게 지적한다.

“정지민은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피고인들이 취재한 영어 취재물 중 일부분을 번역하고 실제 방영된 프로그램의 영상 속 영어 부분과 이를 위해 준비한 자막 의뢰서상의 번역 자막이 서로 일치하는 여부를 확인하는 영어 감수를 하였을 뿐 이 사건 방송의 제작 과정에 참여한 바 없고 보조 작가 외에 제작진을 만난 적이 없어 이 사건 방송의 제작 의도, 제작 과정, 취재 내용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판결문)

정지민은 번역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이 방송 내용 전체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말하나, 그가 만난 사람이라곤 보조 작가뿐이었다. 제작진은 정지민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 마디로, 정지민은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제작 의도에 관해 순수한 판타지를 펼친 셈이다.

이런 것도 과연 ‘기록’이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 정지민의 책이 서점에 놓인다면 ‘언론’이나 ‘역사’가 아니라, <아바타> CD와 더불어 판타지 코너에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언론인회라는 단체에서는 이 판타지에 ’2009 대한언론상 특별상’을 주었고,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이 위증자에게 ‘바른 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상’을 주었다. 코미디 아닌가? 그가 상 받고 우쭐해 하는 사이에 제작진은 큰 고통을 당해야 했다. 또 검찰의 기소 덕분에 작년 대한민국 언론자유도는 세계 69위로 추락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주장하는” 정지민의 판타지로 인해 국내에서는 애먼 사람들이 고통 받고, 나라는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 뿐인가? 지난 달 정지민을 초청해 강연을 들은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은 이번 판결에 불만을 품고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을 투척하는 백색 테러를 저질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정지민은 아직도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을 존중하지 않고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말이 필요 없다. 정지민이 대답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1. 아레사의 어머니는 에게 자기 딸이 무슨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는가?
2. 은 방송에서 아레사가 무슨 진단을 받았다고 방송했는가?
3. 아레사가 병원에서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내용은 어느 테이프에 들어 있는가?
4. 감수 전 자막 의뢰서, 감수 후 자막 의뢰서, 방송된 자막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정말로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거짓말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반성하고 회개하기를 바란다. 물론 사건이 너무 커져 수습하기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용기를 내야 한다. 그가 제2의 전여옥이 될 요량이라면, 재판에 지고도 외려 사법의 희생양이나 된 양 그렇게 계속 너스레를 떨어도 좋다. 하지만 정치가 아니라 역사를 공부할 생각이라면,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그 알량한 언론플레이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고 믿는가? 정지민이 공부하는 역사는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는 예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라.

“사실 전 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 분의 어머니가 (…) 결국 인간 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이 사회에서 지적 사기와 언론 플레이로 이 사회를 환상의 늪에 빠뜨렸던 제2의 황우석으로 기억될 것이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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