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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 쇠고기로 만든 파이에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보도한 호주 신문. |
ⓒ <헤럴드 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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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주 국민과 연방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 한 판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외국산 쇠고기 완전개방’을 놓고 한동안 패를 주고받는 시늉을 하더니, 정부가 돌연 ‘스톱’을 선언해버린 것. 언론의 훈수꾼 역할도 있었다.
소비자단체, 농민단체, 정치인, 언론 등이 “국민 건강의 안전대책은 99.99%도 부족하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식의 모양새였다.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호주의 ‘쇠고기 수입 금지기간 연장 드라마’는 언뜻 국가이기주의로까지 보였다.
호주정부의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는 비장의 패를 쥐고 있던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얼떨결에 꼼짝없이 당했다. 호주에 주재하는 해당 국가 외교관들의 의례적인 항의 몇 번으로 상황 끝!
그 결과, 현재 호주에서는 광우병 발생 국가들인 미국, 캐나다, 멕시코와 영국을 비롯한 EU 국가들의 쇠고기 수입은 여전히 금지된 상태다. 올 2월 중순부터 불거진 호주에서의 쇠고기 논쟁을 조망하면서, 호주 촛불집회를 4개월 동안 열었던 호주 한인 동포사회의 반응도 알아보았다.
“호주 정부는 지옥에나 가라!”
지난 3월 1일, 호주 연방정부는 국제무역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외국산 쇠고기 수입 완전개방’을 선언했다. 연방 농산부에 의해 지난 10년 동안 광우병(mad cow disease) 발생 국가 쇠고기 수입 전면금지 조치가 2월 28일자로 종료된 것.
호주에서 생산되는 쇠고기 85% 이상을 전 세계에 내다파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호주-미국, 호주-EU 간 FTA협정이 이미 체결된 상태에서 만약 호주가 그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 십중팔구 무역마찰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일부 EU 국가에서는 ‘WTO 제소’를 들먹였다.
그러나 호주 정부의 쇠고기 수입 완전개방 발표가 나오자마자, 야당과 소비자단체는 물론이고 언론들까지 나서서 정부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다만 ‘호주 의사회’ 짐 비숍 회장이 “위험성이 아주 적다(extremely small)”면서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피오나 내쉬 상원의원이 “대부분 영국과 북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수천 마리의 소들이 광우병으로 죽고, 도살된 숫자만 수백만 마리(위기피디아에 따르면, 영국에서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17만 9천마리라고 함… 편집자 주)”라고 공박했기 때문이다. 내쉬 의원은 이어서 “광우병이 아주 치명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아주 적다’라는 표현조차 부적절하다”면서 “100% 보장되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빌 헤퍼넌 하원의원도 한 몫 거들었다. 그는 의회 발언을 통해서 “호주 국민은 봉기해서(rise up) 분노를 표시해야 하고, 정부는 지옥에나 가라!”고 쏘아붙였다. 닉 제네퐁 상원의원 또한 “호주 서민들이 즐겨먹는 미트 파이를 제조만 호주에서 하고 공장에서 수입고기를 사용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겠느냐?”면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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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상원의원들을 보도한 호주 국영방송 웹사이트. |
ⓒ abc-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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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도 못간 수입 전면개방… 교역국 공식 불만제기 없어
이런 가운데, 사이몬 크린 통상장관은 호주국영 abc-TV에 출연해서 “교역 상대국과의 무역마찰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제교역은 마치 칼의 양날과 같아서 호주가 수입을 금지하면 상대국가에서도 호주산 쇠고기를 사가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국민의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호주정부는 마치 그런 상황을 기다렸던 것처럼 “광우병 발생 국가 쇠고기 수입을 2년 더 금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3월 1일에 완전개방을 발표한 다음 9일자로 철회했으니 열흘도 채우지 못한 수입개방 조치였다.
이와 관련하여 사이몬 클린 통상장관은 AAP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입금지 조치 이후, 교역상대국으로부터의 공식적인 불만제기는 없었다. 다만 몇 차례 불평을 털어놓았을 뿐(there had been no complaints from trading partners since the decision, but there had been queries)”이라고 밝혔다
사이몬 장관은 이어서 “성공적인 공포 캠페인 때문에 정부는 비로소 정책변경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The Government’s turnaround was necessary because of a successful fear campaign)”면서 “결국 소비자 단체와 수입품 위험도 분석가들의 공포 캠페인에 정부가 조금 힘을 보탠 형국”이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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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여성 사망 원인이 광우병일지 모른다고 보도한 4월 14일자 호주 언론. |
ⓒ 디 오스트레일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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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도 광우병 증세 환자 사망 논란
지난 4월 14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호주 여성이 광우병에 걸려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4월 7일 시드니 동북쪽 고스포드 병원에서 사망한 이 여성의 시신은 현재 시드니대학교로 옮겨져서 CJD 테스트를 받는 중이다.
호주 보건부 관계자는 “1990년대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classic CJD와 variant CJD 중에서 그녀의 사인은 classic CJD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멜버른에 소재하는 국립CJD연구소는 “호주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395명의 환자가 classic CJD로 사망했지만 variant CJD로 사망한 환자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 보도를 접한 모튼 지역의 농부 브라이언 본드는 “호주에서는 전자 꼬리표를 통해서 살아있는 소와 도축된 쇠고기의 모든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호주는 누가 뭐라고 해도 광우병이 없는(MCD Free) 국가”라고 주장했다. 사망 여성의 사인 규명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호주에서의 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논쟁이 갈무리될 즈음에 한국은 ‘촛불’ 2주년을 맞았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겨있던 미국산 쇠고기 이슈가 또다시 거론됐고 국민과 정부, 언론은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호주와는 전혀 다른 판세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호주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른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광우병 발생국가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요청, 국민의 대대적인 반대, 광우병 위험 논쟁, 교역 상대국과의 재협상 등이 그렇다. 다만 호주 언론은 100% 반대의 입장에 섰다.
시드니 촛불목사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은 <조선> 기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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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차 시드니 촛불집회에서 아들과 함께 공연하는 이영대 목사. |
ⓒ 호주한인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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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서울의 시청앞과 광화문 일대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은 호주의 여러 도시에서도 뜨겁게 타올랐다. 그중에서도 4개월 동안 이어진 시드니 촛불 집회는 많은 의미를 남겼다. 어린이에서부터 노인까지 모인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몇 시간씩 타고 온 참석자도 있었다.
시드니 이스트킬라라 유나이팅처치(East Kilara Uniting Church)의 이영대 목사는 자녀 넷과 함께 참석한 단골멤버였다. 참석만 열심히 한 게 아니라 각종 악기를 다루는 자녀들과 함께 연주도 하고, 합창 반주도 맡았다. 이 목사는 호주 현지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지난 11일 저녁 이영대 목사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어느새 2년 전의 일이 됐다.
“가끔 그때를 회상하는데 마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아주 심각한 이슈였기 때문에 촛불집회 자체는 엄중하게 진행했지만, 연속 참가자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4개월 동안 이어갔다.”
-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해외라는 한계 때문에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참여자의 면면이 참 다양했다. 그런 여건에서 4개월 동안 촛불집회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지도그룹의 헌신도 큰 역할을 했지만 모국에 대한 깊은 애정의 발로였다고 생각한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늘 먹거리가 넘쳐났다. 참석자들이 집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 야유회를 나온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노래까지 불렀으니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나 했을 것이다. 그때 느꼈던 사람의 온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자녀 4명을 대동해서 공연까지 했는데.
“집에서 늘 연습하기 때문에 공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전부 호주 태생이라서 한국인의 정체성이 약했는데, 촛불집회 덕분에 고국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알려주는 등 사회의식 제고를 위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 그럼에도 촛불집회 2년이 지난 지금도 모국의 상황이 어지럽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촛불집회는 국가를 잘못되게 하려는 불순세력들의 모임이 아니고, 국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청와대와 일부 언론에 크게 실망했다.”
- 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잘못 판단한다고 생각하나?
“촛불집회는 국민건강을 지키자는 구체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권국가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자는 뜻도 강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에, 특히 부시 대통령에게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고, 협상 또한 굴욕적이었다. 거기에서 느낀 울분을 촛불로 토로한 측면도 있다.”
- 호주 정부와 비교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나?
“그 간극이 너무 커서 비교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과정도 그렇다. 호주 국민이 원하는 사항이라고 하니까 미국에서 한 마디 뻥끗 못하지 않는가. 모름지기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과 국가 리더들은 국민의 뜻을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 부시 대통령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된다.”
- 청와대에서는 촛불집회에서 사실과 다른 억지도 나왔다고 주장하는데.
“더러 그런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워낙 군중이 모이다보니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지엽적인 거다. 커다란 숲에서 썩은 잎사귀 한두 개 골라내서 비판하는 식이다.”
- 최근 일련의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촛불 참가자들에게 반성문을 강요하는 형국인데, 정작 반성문을 써야할 사람들은 조선일보 기자와 논객들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여론조작의 성격이 짙은 기획물을 연재하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촛불집회 당시 시드니는 추운 계절이었다. 감기에 걸려서 콜록거리시던 70대 노인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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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봄에 열린 제9차 시드니 촛불집회에 모인 호주 교민들. |
ⓒ 호주한인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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