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금융연구소, ‘실물’ ‘금융’ ‘정치’를 장악하다!
[info@econo]우리 시대 기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출처 : 이코노미인사이트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기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문득 15년쯤 전에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보고서를 쓰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었다. 그 시절 나는 재벌이 운영하는 기업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군사 정권에서 민간 정권으로 바뀌고, 다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는 와중에 정부의 속성이 어떻게 될 것인지, 어떠한 변화가 올 것인지가 기업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기업을 떠나서 한국 경제에 대해서 얘기하기가 어렵지만, 정권을 떠나서 기업에 대해서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역시 한국의 현실이다. 해방 이후 한국 기업의 형성과 운명 자체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책과 떼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은 경제학의 원래 이름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기업을 이해할 때에는 그야말로 정치경제학의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현대에 있던 시절, 정부 정책에 나는 생각보다 많이 관여를 했었다. 단순한 자문이나 정보제공을 떠나서 내가 처음으로 직접 만든 정부문건은 APEC에서의 에너지와 환경분과에서의 정부 입장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원 시절의 전공이 국제경제학이었는데, 당시에 막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작동방식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격 거기에 아시아태평양이라는 특수 조건까지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한국에는 매우 드물었다. 직접 협상도 같이 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기업의 월급을 받으면서 정부 협상에까지 직접 나서는 것은 좀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를 분석하고 ‘포지션 페이퍼’를 만들고, 협상 결과를 분석하는 정도의 일을 했다. 그 시기가 IMF를 전후한 시기였는데,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기업과 정부가 그렇게 완벽하게 분할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소한 박사급 연구원 차원에서는 정부와 정부 연구소 그리고 민간 연구소가 일정하게는 연구풀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후에 나는 정부기관으로 옮겨가게 되어서 정부대표단으로 국제협상을 직접 하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기업의 인력들과 노하우를 많이 활용하면서 일을 했었다. 그 시기가 김대중 정권 시기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부도 그렇지만 기업도 막 출범한 ‘국민의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소위 운동권 출신들을 확보하고 전면에 내세우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IMF 경제위기와 민주정권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라서, 어디까지가 IMF 경제위기의 여파인지, 어디서부터가 정치적 민주화의 여파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야말로 동시에 벌어진 부대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이전에는 기업과 정부는, 사실상 한 몸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머리가 정부이고, 몸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역시 한몸이지만, 이번에는 머리가 기업이고, 몸이 공무원 아닐까? 1987년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노동’이라는 하나의 범주가 새롭게 한국에서 등장을 했지만, 여전히 정부와 기업이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와중에서 노조는 일종의 ‘왕따’인 프레임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IMF이후 기업이 한국사회 주도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은 명실상부 한국의 주인이 되었는데, 기업 일반과 ‘삼성’이라는 두 가지 눈으로 본다면, 정말로 기업이 한국의 주인이 된 것인지, 아니면 삼성이 한국의 주인이 된 것인지, 조금 애매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봐야 한다는 붐이, 소위 개혁세력 내에서 팽배했었다. 기업연구소의 현장에 있었던 경제학자로서 우리끼리 하던 얘기를 일부 소개해보면, 현대경제사회연구소는 ‘여론조사 기관’, 삼성경제연구소는 ‘조선일보 데스크’, 그리고 기아경제연구소는 ‘진짜 연구소’와 같은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 계열의 연구소는 실증적이고 계량적인 분석 능력이 좀 떨어졌는데, 그걸 수많은 여론조사 발표를 통해서 보완하고 있었다. 삼성의 경우는, 분석을 하기 보다는 마치 이런저런 얘기들을 모아서 ‘편집’하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조선일보 데스크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중평이었다. ‘국민기업’으로 불렸던 기아의 연구소는 대기업 연구소 치고는 상당히 중립적이며 학술적인 연구도 적지 않게 했었는데, IMF 경제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
일반인들은 현대나 삼성 같이 충분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곳의 연구기관이라면 아주 비싼 분석 패키지 같은 것을 돌리고 넓은 DB 같은 것을 확보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연구원들이 체계적으로 연구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는 않다. 요즘은 정부연구소는 물론 전경련에서도 일반연산균형(CGE·Computational General Equilibrium) 모델을 운용하면서 GDP 예측을 하는 기관이 늘어났지만, 기업 연구소는 아직도 연구 여건이 열악하다. 정부 연구소처럼 그렇게 체계적으로 장기 연구를 하기가 어렵고, 기회만 있으면 정부나 대학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그야말로 숙달된 전문 연구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건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공기업이나 정부 연구소에 비하면 홍보와 언론 플레이가 조금 강한 편이다.
그런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국민경제를 운용하려고 했던 노무현 정부는, 어쩌면 처음부터 거시경제 운용의 실패가 예견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반인들이 기대했던 ‘강도 높은 개혁’ 대신에 노무현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슬로건을 채택하였고, 기업인지 삼성인지, 그 주체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자본과 화해를 하려고 했다. 한나라당 계열에서는 이 시기에 기업 투자가 줄어든 것을 ‘노무현 효과’로 분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실제 설비투자는 IMF 경제위기로부터 회복된 2002년 이후로 한국은 계속해서 감소하거나 정체상태이다.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회피했다는 것이 한나라당 계열의 연구자들의 중론이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도 한국의 기업은 여전히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 말은 ‘공격경영’이라고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공격경영이 벌어진 적은 거의 없다. 상호출자 제한을 받는 대기업은 한국에서 53개가 있는데, 1위는 당연히 삼성이다. 그런데 2위는 한국토지주택공사, 3위는 한국전력이다. 이 두 개의 공기업은 4위인 현대자동차보다 자산총액이 더 크다. 사실상 재계 1, 2위인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자산을 더하면 293조원 정도 된다. 반면 토지공사와 한전을 더하면 253조원 정도 된다. 진짜 공격경영을 했던 것은 오히려 한전, 토지공사 혹은 재계순위 9위인 한국도로공사 같은 공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마저 기업에게 길을 묻다
노무현 정부 이후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 아래에서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기업 마인드’에 훨씬 더 가까워졌지만, 정작 기업 특히 삼성은 정부 운용방식에 이런저런 경로로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정책 마인드’ 혹은 ‘공무원 마인드’에 훨씬 가까워진, 기묘한 현상이 보여진다. 이와 함께 정책에 대한 전경련의 위상도 많이 높아져서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의 정책 보고서가 한 번 나오면 오히려 공무원들이 그 논리를 수용하기 위해서 야단법석을 떠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왕따였던 것 같다. 특히 한미 FTA 추진 이후로 정부와 기업이 한편, 노동자는 ‘왕따’인 구조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함께 드디어 기업들은 자신의 출신 CEO를 권좌에 올리는데 성공했고, 이제 한국은 명실상부, 대기업의 나라가 되었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이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의 나라’가 되었고, 동시에 일부의 지적처럼 ‘국민질 해 먹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연구소 중에서 가장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는 삼성금융연구소의 약진이 눈에 띄고, 매킨지와 같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가 사실상 청와대를 장악하던 고위 공무원을 대신하여 직접 정부에 참여해서 통치를 하게 되었다. 간단히 현 상황을 얘기하면, 삼성경제연구소가 실물과 정치를, 삼성금융연구소가 금융과 원화정책을, 그리고 매킨지로 상징되는 국제 컨설팅 회사가 대국민 업무를 맡는, 그런 기이한 정권이 생겨난 셈이다.
예를 들면 KBS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도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손에 들어가 있다. 한전 민영화 방침은? 역시 컨설팅 회사의 보고서가 좌지우지 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소통’의 문제를 얘기하는데, 이걸 컨설팅 회사식 소통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훨씬 편하다. 컨설팅 회사들은 중립적이기 어렵고, 회사 중역들을 위한 보고 양식에 더욱 익숙하다. 그리고 ‘국민’ 혹은 ‘통합성’과 같은 비경영적 요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과거의 여당, 야당, 재야인사, 이런 식으로 형성되어 있던 정치적 프레임에서의 논의그룹이 지금은 대기업 연구소, 컨설팅 회사, 그리고 기업중역 출신, 이렇게 대체된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지독할 정도의 정치 실종이고, 상층부의 논의 구조는 기업 중역회의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좌파적출’이라는 일을 수행하는 방송과 문화계의 메커니즘은 이사회를 장악하고, ‘1인 1표’가 아니라 ‘1주 1표’라는 이사회 방식 그대로 움직인다. ‘공공성’은 소위 ‘하이레벨 논의’에서는 완전히 실종된 상태이고, 한국의 상층부는 지금 거대한 기업과 완전 똑같은 방식으로 운용된다. 장관회의는 재벌 시절에 보던 총수가 주재하는 사장단 회의와 완전 똑같다. 그 상황에서 총리는 모기업의 월급쟁이 사장? 본질이 지금 그렇게 되어있다.
정치와 경제, 혹은 정부와 기업이라는 기준선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사실상 그 구분은 지금 모호하고, 운영방식은 완전히 기업방식이 일상화되었다. 물론 지주회사를 통한 정상적인 지배를 하는 그런 ‘글로벌 스탠더드’ 방식은 아니고, 순환출자로 총수가 장악하는 지배구조라는 재벌 방식, 그대로이다. 롯데그룹의 ‘제2 롯데월드’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면 등, 기업들은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듯이 그들이 원하는 숙원사업들을 대부분 현 정부에서 가지고 갔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소외된 상태이고, 다만 선거의 거수기로만 존재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경제의 또 하나의 축인 ‘노동자’는 여전히 왕따이고, 비정규직 일반화와 함께 현실적 힘이 급속히 빠져가는 중이다. 전경련 위원회와 정부 위원회의 구분은 이제 모호하다. 전경련이 곧 정부이고, 정부가 곧 전경련인 셈이다. 기업이 결정하면, 정부는 대응 논리를 만들고, 한나라당은 ‘몸빵’하는 구도가 현재의 통치 구조 아닌가? 20세기초, 미국이 자본주의를 운용하는 초기에 록펠러와 스탠더드 오일컴퍼니가 전면에 나서서 국가를 통치하던 ‘야만의 자본주의’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정권은 유한, 기업은 무한?
자, 이 상태가 기업에 좋은 것일까? 이 질문은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체니 전 부통령은 미국의 에너지기업들과 한몸이면서 동시에 대변자였다. 에너지기업들에게는 이후 아주 좋은 일만 벌어졌을 것 같지만, 그 시기에 결국 분식회계 문제로 최대의 에너지 기업인 엔론은 파산하였다. 너무 경영여건이 좋으면, 기업 내부에 분식회계와 같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된다. 결국 한국에도 미국식 회계기준 대신 유럽식 회계기준이 도입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의 비자금 처리 방식에서 일대 도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 너무 드러나게 ‘정경유착’을 하다보니, 국민들도 점점 한국 대기업의 실체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민주화는 군부 독재를 상징으로 하는 일련의 정치세력으로부터의 민주화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화는, 87년의 노동운동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 아닌가? 길게 보면, 기업과 정치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이다. 삼성이든 다른 기업이든, 국민들 앞에서 알몸으로 서서 ‘대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기업들은 국민들을 ‘소비자’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로서의 국민은 무시했고, 특히 삼성은 당분간 계속 무시할 것 같다. 그러나 엄연히 현대 자본주의에서 국민은 권력의 원천이고, 무엇보다도 유권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정치라는 방어막 그리고 사법장치라는 보호막을 통해서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지금의 흐름이라면 조만간에 ‘민주화’의 대상이 ‘정권’에서 ‘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국민의 역동성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고, 전환의 속도도 가장 빠른 사람들이다. 게다가 현실과는 상관없이, 평등 의식이 아주 높은 국민이기도 하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소통 없는 정권에 관한 불만이 점점 그 물리적 실체인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대운하에서 ‘4대강’까지, 일련의 토건경제를 이끌고 있는 건설회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이제는 폭발 지경이다. 토건과 삼성, 아마 이게 한국 기업을 보는 국민들의 최근의 새로운 시각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생각해보면, 군홧발, 등산화, 지팡이, 이렇게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 상층부의 논의 그룹을 지칭하는 상징적 단어들이 있었다. 그리고 순서대로 국민들에게는 청산의 대상이었다. 이 뒷자리에 한국 기업의 특징을 지칭하는 토건 혹은 삼성과 같은 것들이 자리잡는 것은 현재의 흐름이라면 시간 문제일 것 같다. 최근 제품 결합으로 문제가 된 토요타가 아주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포드와 GM을 단계적으로 누르고 세계 1위가 된 후 불과 4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그 표현을 쓰면 “기업이야말로 생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징적인 표현을 또 쓰자면, 대통령의 이건희 회장 사면이 아마 한국 기업사에서는 ‘보름달’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가 사카린 밀수 사태로 겪었던 어려움과 비교하면, 상현달을 지나 이제는 보름달이 된 셈이다. 지금 몇 개의 대기업과 컨설팅 회사들은 국정 운영에 너무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무한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거머리’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막 빨아먹다보면, 결국 그저 거수기처럼 보였던 국민들로부터 된서리를 맞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기업은 기업의 영역이 있고, 정치는 정치의 영역이 있다. 국정운영에 너무 깊게 참여한 일부 기업들과 각종 위원회의 월급쟁이 회사 위원들, 그 참여의 폭이 이제 너무 깊다. 이제 그만 철수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날이 있고, 그게 민주주의 절차인데, 지금은 기업이 국민들 앞에 너무 정면으로 노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