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한국판 ‘폭스 뉴스’가 되려는가
조선일보를 비롯해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준비 중인 보수신문사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북풍 여론몰이’에 나서면서 한국판 ‘폭스(Fox) 뉴스’ 출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방통위 일정대로 종편사업이 연내 가시화할 경우 국내 방송시장에도 폭스 뉴스와 같은 극우 선동매체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최근 광우병 2주년 특집기사는 재벌과 거대 신문사의 방송·신문 교차겸영에 따른 미디어독점의 폐혜와 여론의 왜곡 , 소통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폭스채널 닮으려나 = 지난 1월 미국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38년 아성이 무너지자 조선일보는 “오바마가 끼면 될 일도 안된다”(1월22일자)는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오바마의 국정운영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틀린 분석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천안함 침몰 이후 ‘전쟁불사론’까지 부추기는 극우보수매체들이 방송까지 진출할 경우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다른 교훈이 있다.
지난 1월 민주당 코클리 후보는 선거를 1주일여 앞두고 중동정책과 관련해 “아프간에는 더이상 ‘테러리스트’가 없으며 ‘알카에다’가 밀집한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스 채널은 이 발언이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듯 알카에다 언급 부분을 삭제한 뒤 “코클리가 아프간에 테러리스트가 없다고 말했다”며 안보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선정적 보도를 집중 방영했다.
민간언론단체(Media matter for American) 등이 “전체 발언 맥락을 왜곡한 짜깁기 보도”라며 항의했으나 폭스 뉴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각종 여론조사에서 5~10% 정도 앞서던 코클리 후보는 테러로 숨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의 모습과 대비시켜 자신의 발언을 짜깁기한 폭스 뉴스의 반복적 보도 후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해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다.
◇뉴욕타임스에서 배워라 = 인터뷰나 특정인의 발언을 인용보도할 때 발언 내용(Text)보다 맥락(Context)의 적절성을 유지하는 것은 보도의 ‘기본원칙’이다. 폭스 뉴스가 CNN의 2배나 되는 높은 시청률에도 미국 식자층으로부터 ‘선동적 저널리즘’으로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10일부터 3일간 광우병 특집기사를 내보낸 뒤 거센 역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꼭두각시처럼 따라 읽는 멍청한 사람 아니다”(촛불소녀 한채민양) “촛불저항으로 그나마 안전해졌다고 했는데 제목은 정반대” 등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인터뷰 대상자의 녹취록을 갖고 있다” “본지가 인용한 코멘트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그대로”(이상 5월20일자) 등 기사가 인터뷰 발언 내용에 기초한 만큼 왜곡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조선일보 고위 관계자도 “잘못하면 욕만 먹고 ‘MB(이명박) 도와주기’라는 오해를 살게 뻔한 기획이었지만 국내 리딩페이퍼(1등신문)로서 책무를 다했다”며 “녹취록을 풀어봤지만 구절이나 내용을 왜곡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한마디로 ‘일부 내용이라도 인용만 정확하면 되고 당사자 의도와 상관없이 핵심 맥락을 발췌하는 것은 언론사의 고유권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일보의 이같은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있을까.
1909년 설립된 미국의 프로저널리스트 협회(SPJ)의 윤리강령은 ‘진실보도’ 원칙과 관련해 “인용은 당사자 의도가 잘못 전달돼서는 안되고 지나친 요약이나 발언 맥락에서 벗어나 특정부분을 강조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30분 넘게 광우병 위험을 경고했는데 전체 맥락에서 벗어난 발언을 인용한 뒤 ‘미 연수 중 쇠고기를 먹지 않아’(경향신문 K기자) 혹은 ‘언제 광우병 괴담 맞다고 했나’(우희종 교수) 식으로 제목을 뽑는 것은 왜곡보도라는 것이다
미국 언론의 준거모델인 뉴욕타임스의 기본윤리강령(Guidelines on integrity)은 인용보도의 원칙을 크게 세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인용부호 안에 담긴 말은 반드시 당사자들의 발언 내용 그대로여야 하며, 둘째 인용은 함부로 생략돼서는 안되며, 셋째 긴 코멘트에 대해 정확한 인용이 자신 없으면 반드시 풀어서 기사를 쓰라는 것이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에 응한 발언자의 의도가 보존돼야 한다”며 “설사 우리 기사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우리 기사가 불충분하고 부정확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론보도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기사 맥락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아닌지는 신문사가 아니라 인터뷰 당사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터뷰 당사자들의 불만제기에 “어떤 사실 틀렸는지 지적하지 않고 왜곡 주장만 한다”(5월20일자)는 조선일보의 ‘공박성’ 대응은 뉴욕타임스에서 보면 허용돼서는 안될 해사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대구대 엄기열 교수는 “조선일보가 방송에 진출할 뜻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폭스 뉴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공정보도의 기본기를 훈련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