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삼성 백혈병 자료’ 은폐했다?
시사INLive | 장일호 | 입력 2010.06.28 10:18 |
지난 3월31일 삼성전자에 다니던 박지연씨가 백혈병으로 숨졌다. 스물셋에 눈을 감은 박씨 죽음을 계기로 이른바 ‘삼성 백혈병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논란이 커지자 삼성은 지난 4월15일 기흥공장을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인 조수인 사장은 “재조사를 벌여 모든 의혹을 남김 없이 해소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 시사IN > 취재 결과 삼성은 이미 지난 2006년부터 백혈병 등 희귀암 발병 원인을 찾기 위해 자체 모니터 시스템을 갖추고 관련 자료를 축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작업장 내 유기화합물 노출 대기값 측정’이 그것이다. < 시사IN > 은 이 자료 일부를 단독 입수했다. 자료의 일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시사IN > 은 취재 과정에서 관련 증언도 확보했다. 이 자료에 대해 잘 아는 송현수씨(가명)는 자신의 직책과 소속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다. 송씨는 “이 자료는 2006년 이후 적어도 5년 이상 축적된 자료의 일부가 맞다. 삼성이 축적한 데이터에는 백혈병 등 직업성 암 발병에 대한 단서가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 자료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설치된 ACM(Air Composition Monitor)이 측정한 일부이다.
삼성이 테스트용으로 처음 이 기계를 설치한 것은 지난 2006년이다. 당시 대당 가격은 3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테스트를 거친 뒤 삼성전자 기흥공장 등에 2007년부터 본격 도입해 모니터를 해왔다. 2007년은 그해 3월6일 삼성전자에 다니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처음으로 백혈병 논란이 제기됐던 때이다.
삼성은 ACM을 도입해 만든 시스템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지난 2007년 여름 삼성그룹 내부 지구환경연구소 웹진 ‘그린삼성’에는 ‘녹색경영 현장을 찾아서’라는 홍보성 글이 실렸다. 김관식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안전그룹장은 이 글에서 ‘사실상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가스와 화학물질의 60%가 유해하며, 반도체 라인에서 ‘냄새’가 발생할 경우 순환공조로 인해 발생 시 60초 이내 확산될 수 있고, 이 냄새가 유해성 물질을 포함할 경우 작업자 건강이 저하될 수 있다. 유해 화학물질의 노출 수준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작업환경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 시스템은 저농도·장시간 노출양상을 On-line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그 데이터를 축적·분석하도록 개발되었다’고 소개했다. 바로 이 시스템의 핵심 기기가 ACM이다.
< 시사IN > 이 입수한 자료에는 ACM이 실시간으로 측정한 유기화합물 대기값이 ppm 단위로 기록되어 있다. 데이터에는 암모니아(NH3·Ammonia)를 비롯해 트리메틸아민(TMA․Trimethylamine), 자일렌(Xylene), 메틸이소부틸케톤(MIBK․Methyl Isobuthyl Ketone), 에틸벤젠(Ethyl Benzene)이 측정되어 있다. ACM이 축척한 데이터는 상세하다. 시간가중치 평균농도(TWA), 각 물질의 최대치, 노출양(ppm), 빈도, 자체 설정한 기준을 넘겼을 때 알려주는 경고와 알람 시간이 초 단위까지 표시되어 있다. < 시사IN > 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2OOO년 O월O일의 경우, 경고가 15차례이고 알람은 6번 기록되어 있다.
< 시사IN > 은 이 물질들의 인체 유해성 여부를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등 산업의학 전문의에게 물었다. 백 교수는 “이 데이터에 나타난 유기화합물질은 낮은 농도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장기간 만성적으로 노출될 경우 생식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시사IN > 이 입수한 자료를 검토한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위원도 “이 데이터에 나타난 자일렌의 경우 벤젠이 섞여 있어 골수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에틸벤젠의 경우도 많이 노출될 경우 신경독성이 있을 수 있어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특검을 하는 물질이다. 장기간 노출되었을 때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ACM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송현수씨는 < 시사IN > 이 확보한 자료 외에도 회사가 축적한 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삼성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는 발암물질이 잡힌 적도 있고 처음 보는 물질, 쓰지도 않는 물질이 모니터 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송씨는 “회사에서도 원인을 몰라 공정 중 화학반응을 일으킨 부산물의 결과로만 추측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ACM은 이런 부산물에 대해서도 검출 리스트를 추가 등록해 모니터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이 백혈병 등 희귀암 발병원인이 작업환경과 무관하다는 근거가 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조사 당시 이 자료를 참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홍보팀은 ACM 기계에 대한 < 시사IN > 질의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영업비밀’ 때문에 일반에 공개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삼성 백혈병 의혹과 관련해 재조사 의사를 밝힌 삼성에 대해 반올림 등 시민단체는 “삼성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지난 5년간 축적한 내부 모니터 자료부터 공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6월28일 발간된 시사IN 146호 커버스토리 ‘삼성전자 진실 은폐?(7월3일자)’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일호 / ilhostyle@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