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를 위한 변명 |
|
구리가 구설에 올랐다. 정부의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증설 허용불가와 관련된 일련의 논박에서 구리의 안전성이 주요 쟁점이 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반도체 제조 공정의 특성상 ‘미량’의 구리를 배출하는 하이닉스반도체가 팔당 상수원에 인접한 이천에 공장을 증설하고자 한 것이다. 이 지역은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되어 현행법상 구리와 같은 특정수질 유해물질 배출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 구리는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이다. 주식인 쌀, 보리, 콩 등 농작물에도 2~4ppm이 함유되어 있고 굴에도 30ppm 정도 들어 있다. 구리는 생체 세포의 구성요소로서 생리활성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흔한 증상은 아니지만 구리 섭취가 부족하면 질병에 더 쉽게 감염되고 빈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구리를 ‘미량’ 배출한다는 이유로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결정에 하이닉스반도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구리가 무독성은 아니다. 먹는물에 3ppm 이상 오염되면 구토, 설사 등 소화관 장애가 일어나고, 아주 많이 섭취할 경우 간괴사나 사망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보건기구나 미국에서도 먹는물의 구리 농도를 대략 1ppm 이하로 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생태계에서 구리는 독성이 더욱 큰 중금속이다. 몇 ppb(1ppm의 1/1000) 수준의 구리에 노출되어도 주요 생물종들이 죽거나 번식을 제대로 못하여, 궁극적으로 생태계가 교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ppb는 물 1000t에 구리 1g이 녹아 있는 정도의 농도다. 이 때문에 미국 환경당국은 구리의 만성노출 가이드라인을 사람의 먹는물 기준보다 100배 이상 엄격한 수준, 즉 민물에서는 9ppb, 바닷물에서는 3.1ppb로 권고하고 있다.
한편, 구리가 다른 오염물질과 함께 있을 때 독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다환방향족탄화수소나 농약과 함께 있으면 물벼룩이나 양서류에 끼치는 구리의 독성이 몇 배씩 증가되기도 한다. 상수원은 먹는물을 공급하는 곳이니까 사람의 건강만 걱정하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팔당호와 같은 거대 담수 생태계의 건강성은 직간접적으로 우리 인간의 웰빙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이 구리 하나만은 아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 백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나오는 방류수가 과연 ‘미량’의 구리만 들어 있는 초순수일까? 학계에 보고된 미국의 반도체 업종의 배출자료를 보면 산화, 광미세가공, 에칭, 도핑, 금속배선과 같은 여러 공정에서 중금속은 물론 각종 산, 염기, 폐용제 등 유해 유기물질이 배출된다. 이 가운데 구리만 불거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지정한 특정수질 유해물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유독물질이 특정수질 유해물질로 지정된 19가지뿐이겠는가? 모든 독성물질을 다 규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중 중요한 대표 몇 개를 뽑아서 우선적으로 관리하는 것뿐이다.
‘환경사고’의 가능성도 짚어봐야 할 문제이다. 만에 하나 유해물질 누출과 같은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괜한 일에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다. 완벽을 기하고자 노력하지만 하필이면 일어나는 것이 안전사고다. 해마다 수천t씩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공장을 수천만 국민이 먹는 상수원 인근에 설치해도 좋을까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물은 생명이다’라는 말이 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이 지금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곧 물의 처분을 우리가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 최경호 /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 |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