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급소는 ‘지역구’에 있다
미국 의원 역시 지역구의 이해에 따른다. 자동차·쇠고기 관련자의 주장보다 대도시 중소 상인의 ‘경기 활성화’ 목소리가 커지게 만들면 ‘한·미 FTA’ 미 의회 비준이 쉬워진다.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출처 : [시사인] 기사입력시간 [148호] 2010.07.20 1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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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 레빈은 14선(28년) 연방 하원의원이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을 거쳐서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고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대 초반인 1964년 미시간 주 상원의원이 되었다. 1982년 연방하원에 입성해 지금까지 세입위원회에서 뼈가 굵었다. 거의 30년을 하원에서 자동차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왔다. 그는 시시때때로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복지(임금과 이익)를 위해서 정치인생을 걸었다고 거침없이 주장하는 정치인이다. 그래서 워싱턴 정가에서는 UAW(United Auto Workers·자동차노조연합)에 가장 충성스러운 의원으로 소문이 나 있다. 미국 자동차가 노동조합 때문에 거덜났다고 했던 어느 유력한 언론인을 불러 5시간의 맞장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될 때부터 그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하원 세입위의 무역소위원장을 맡아 각 국가 간 FTA 협정에 목소리를 높여오다가 마침내 지난 3월 세입위원장직에 올랐다. 뉴욕 제15 지역구의 40년 거물 찰스 랭글 의원이 윤리위원회로부터 제소당해 그에게 위원장직을 물려주고 말았다. 세입위원 40명 전원이 동의해도 위원장이 반대하면 법안이 폐기되는 상임위원장 중심의 의회 운영을 생각해보면 한·미 FTA를 국가 과제로 삼아온 한국에게는 그야말로 거대한 암초를 만난 격이다. 그는 수도 없이 만나서 FTA가 결국 미국에 이익이라고 반복해서 설명하고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염없이 부드럽게 들어주고 수긍하고 오히려 두 국가 간 체결해야 할 협정이라고 동의했다가도 돌아서면 어느새 제자리인, 만날수록 화만 돋우는 사람이 세입위원장 샌더 레빈이다. 연방의회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다. 그의 세 살 아래 동생은 그보다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거물이다. 상원 군사위원장인 칼 레빈이 그의 친동생이다.
맥스 보커스는 6선 연방 상원의원이다. 상원의 임기가 6년이니, 근 36년을 상원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다. 12만5000에이커(약 5억㎡)라는 거대한 목축농장주의 아들이다. 그는 스탠퍼드 법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몬태나의 농장으로 돌아와서 1972년 서른두 살 나이로 연방하원에 당선했다. 몬태나가 농·목축의 주산지이고 더구나 가장 큰 목축업자의 아들답게 ‘농·축산위원회’와 ‘재무위원회’에서 일한다. ‘내가 방심하면 미국민의 식생활에 위험이 온다’라는 게 그의 정치적인 신념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상원의원다운 상원의원으로 인정받은 뉴욕 주 출신의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이 은퇴(2000년)한 이후 상원 내에 가장 명망 높은 중도주의 거물이다. 맥스 보커스 의원은 미국 농민(농촌)을 위한 일이라면 지옥에도 간다고 정평이 날 정도로 지역구에 충실하다. 전 세계 시장에 미국산 쇠고기 값을 높여 수출하는 것이 그의 의정생활 목표이기도 하다.
한·미 FTA와 미국 중간선거의 함수관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한국의 어느 정치인이 워싱턴 DC를 방문했다. 보커스 의원은 그를 만찬에 초청해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한 한국 정치인에게 “미국 쇠고기가 맛이 좋은 것이 수입하는 데 문제가 되는가?”라고 한 이야기가 그 이후에 한참 동안 서울과 워싱턴을 날아다니기도 했다. 상원 내 FTA 주무 상임위원회가 바로 보커스가 위원장으로 있는 재무위원회이다. 보커스 의원은 2007년 이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지 않으면 한·미 간 FTA는 어림도 없다”라고 목청을 돋우었다.
지난 6월 토론토에서 열린 G8·G20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유럽발 금융위기를 협력해서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간 주요 어젠다는 천안함 사건과 FTA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재협상이 아니고 조정이라 한 것에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조·중·동을 비롯한 친정부 보수 언론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만세’라는 분위기다. 한국과 미국 간 FTA는 이미 3년 전에 정부 간 협정 서명을 끝맺었다. 그러나 그 협정의 효력은 양국 모두 의회의 비준을 거쳐야 발휘된다. 그동안 오바마 정부는 고정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의 눈치를 보면서 FTA에 대해 언급조차 못했다. 중간선거전이 한창인 이때에 대통령이 이것을 언급한 것은 선거에서 손해가 아니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쇠고기 부문에서 미국의 요구를 한국으로부터 끌어낸다면 지지 기반을 고정시키고도 기업들의 정치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원 세입위원장인 샌더 레빈은 자동차를 이유로 몸으로 막을 것이고 상원의 맥스 보커스 재무위원장은 무조건 쇠고기 수입을 요구할 것이다.
한·미 FTA에서 남은 것은 의회의 비준이다. 의회 비준은 국내 정치 문제이다. 다른 나라의 정부가 의회 비준에 관여하면 그것은 내정간섭이다. 그래서 남은 일은 미국 대도시 중소 상인의 목소리가 어떻게 터져나오는가에 달려 있다. 대도시 유권자들의 정치력이 선거 현장에서는 오히려 노조의 정치력을 제압할 정도로 민감하게 작동한다. ‘소비자 경기 활성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FTA 돌파의 유일한 논리다. 그것은 자동차공업 지역과 농축산업 지대 유권자보다 오히려 목소리가 크고 당당한 경제논리다. 선거판의 작동방식은 그 급소가 중앙이 아니고 지역구에 있다. 한국(정부) 측은 워싱턴 DC에서 이리저리 궁리할 일이 아니고 지역구를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워싱턴에는 ‘지역 현안을 우선하는 당론은 없다’라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