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마리 묻었다, 1조 날렸다 … 구제역 창궐 왜
중앙일보 | 박태균 | 입력 2011.01.07 01:24 | 수정 2011.01.07 01:41
이번 겨울 전 세계에서 한국만 유독 극심하게 ‘구제역(口蹄疫)’이 창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전북·전남·경남·제주를 뺀 전국이 구제역 세력권에 들어갔다. 매몰 처분한 소·돼지만 100만 마리를 넘어서 매몰장소를 찾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피해액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시가 보상액만 6000억 원이 넘는다. 백신 접종 비용만 수십억원, 방역 장비와 인력 동원에는 또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직접 피해액은 1조원이고 경기 침체 등 간접 피해까지 합치면 금액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접한 대만과 중국·몽골·러시아 등에서도 지난해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우리만큼 심하진 않았다. 일본도 지난해 4월 미야자키현에서 구제역이 확인됐지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만 ‘통제 불능’이 우려될 만큼 구제역이 판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이동하는 분뇨수거차와 사료공급차를 우선 꼽는다. 이들 차량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것이다. 실제 안동에서 첫 발생한 뒤 10일 넘게 경북을 벗어나지 못했던 구제역이 12월 중순부터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진 이유가 분뇨차 때문이라는 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잠정 역학조사 결과다.
검역원의 김병한 역학조사과장은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할 즈음 한 분뇨처리장비 개발업체가 안동 양돈단지의 분뇨 2t을 경기 파주로 가져와 분뇨 건조시험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업체의 인근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파주·연천·포천·강화 등 돼지농장 밀집 지역으로 잇따라 구제역이 번졌다. 건국대 수의학과 이중복 교수도 “구제역이 한반도를 휩쓴 건 축산농가가 전국에 퍼져 있는 데다 매개체가 되는 분뇨차·사료차 등이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평창·횡성 등 강원도로 구제역이 번진 것은 경기도 양주 소재 공장에서 만든 사료와 이를 운반한 사료차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웃 일본은 축산 농장들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 어 구제역이 발생하더라도 확산이 더디다는 설명이다. 또 분뇨수거나 사료 공급, 도축도 대개 지역 안에서 해결된 다.
국내의 열악한 사육 환경도 문제다. 좁고 불편한 공간에 너무 많이 키우는 탓에 전염병에 약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수의대 이문한 교수는 “동물도 사람처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전염병에 걸리기 쉽다” 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우리 국민의 해외 여행이 급증한 것을 한 원인으로 지적한다. 해외 여행을 통해 각종 바이러스를 옮겨올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이에 대한 방역이나 검역대책은 허술하다는 것이다. 축산농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일하는 것도 거론된다. 검역원 관계자는 “이들이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구제역을 옮겨오거나 자국산 소시지·치즈 등 구제역 전파의 위험이 있는 육·유제품을 즐기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올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도 구제역 바이러스에 힘을 실어줬다.
박태균(식품의약)·강찬수(환경) 전문기자 < tkpark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