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 140만 마리 묻었는데 고기값은 제자리 … 왜
출처 : 중앙일보 | 최현철 | 입력 2011.01.11 00:19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된 가축 수가 10일로 140만 마리를 넘어섰다. 구제역 발생 43일 만에 국내에서 기르는 소의 3.2%, 돼지의 12.4%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시·도 간 이동과 도축도 통제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수급 균형이 심하게 어긋나 있다. 이쯤 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은 큰 움직임이 없다. 축산물 시장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소와 돼지 사육 규모는 크게 늘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국내에서 기르는 소는 335만 마리(이 중 한우와 육우는 292만 마리), 돼지는 988만 마리에 이른다. 쇠고기용으로 쓰이는 한우와 육우의 경우 1년 전보다 29만 마리, 4년 전보다는 92만 마리나 늘어난 상태다.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수입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데다, 지난해 이후 원산지 표시제가 정착되면서 한우 소비량이 급증한 결과다.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자 축산농가들이 앞다퉈 사육 규모를 늘린 것이다. 돼지 역시 최근 10년 새 최대 규모다. 2년 전과 비교해봐도 80만 마리나 많다. 이 때문에 축산 당국은 내심 가격 폭락을 걱정하던 참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과 같은 쇠고기 파동(가격 폭락) 사태가 오는 것에 대비해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구제역이 터지면서 그런 우려(?)가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된 셈이다. 정승 농식품부 2차관은 “소는 10만 마리 정도 살처분이 됐지만 전체적인 수급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수요는 줄어드는 조짐을 보인다. 실시간 육류 소비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의 조사에서도 구제역과 같은 동물 질병이 발생하면 소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경제연구원 허덕 연구위원은 “2002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국내산 육류 수요는 10% 이상 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이 구제역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소비 감소폭은 많이 줄었다. 허 연구위원은 “구제역이 다시 발생한 지난해 1월과 4월의 경우 소비 감소는 7~8% 수준으로 축소됐고, 12월 조사에서는 1%대로 더 작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은 엉거주춤한 채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도매가격은 거의 변함이 없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전국 도매시장의 경락가를 조사한 결과 1등급 쇠고기 등심 평균 가격은 1㎏에 1만4630원으로 구제역이 발생하기 v전인 지난해 11월 초에 비해 6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대형마트의 소매가격은 오히려 내렸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전국 대형마트의 쇠고기와 돼지고기 평균 판매가를 조사한 경과 구제역 발생 직전인 지난해 11월 10일에 비해 쇠고기(등심 1등급, 500g)는 약 4000원, 돼지고기는 1000원가량 내렸다. 이마트의 축산물 구매담당자는 “전국 주요 산지에 고르게 구입처를 확보하고 있고, 비축 물량도 충분해 수급에 별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판매 위축을 막기 위한 할인 판매 영향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네 정육점들은 점차 영향권에 접어들고 있다. 이동 통제로 도매상들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육류 확보가 잘 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고양시 주엽동에서 동부축산을 운영하는 박명희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여러 도매상들이 고기를 들고 와 판촉을 벌이는데 요즘은 이게 뚝 끊어져 직접 산지로 고기를 구하러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산지 가격도 올라 어쩔 수 없이 지난 주말부터 쇠고기 등심 가격을 ㎏당 3000원 올렸고, 삼겹살은 힘겹게 버텨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구제역이 쉽게 잡히지 않을 경우 영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동 제한과 도축장 폐쇄가 길어지면서 대형마트의 재고분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소는 이동 제한이 길어질 경우 1월 육류 가격은 2~3% 정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현철·김진경 기자 < chdck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