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잃고 외양간도 못고치는’ 한국 축산 왜?
“축산 진흥”만 외치는 공장식 밀집사육의 한계
질병 탓 생산성 악화…환경투자 못해 악순환
김현대 기자
출처 : 한겨레 2011-01-17 오전 08:46:02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59055.html
경기 이천의 제일종축은 한국 양돈의 사관학교로 불렸던 곳이다. 지난 7일 구제역에 뚫려 1만5천마리가 매몰됐다. 지난달 24일에는 경북 영천의 돼지 종돈장(2만4천마리)도 무너졌다. 영천 농장은 정부의 거액 축산발전기금을 지원받은 곳. 지난달 31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처음 터졌던 전북 익산의 종계장은, 국내 최대 축산기업인 하림의 심장부다.
한국의 대표 농장들까지 속속 허물어지면서, 이번 구제역 사태는 방역 부실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 않은 한국 축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환경, 이웃, 동물 건강의 배려 없이 ‘더 많은 고기 생산’에만 매달려왔던 우리 축산이 자초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로는, 우리 축산농가에서 동해·서해의 먼바다에 버린 돼지 분뇨가 2009년 전체의 7%인 117만t, 지난해엔 150만t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축사에 처리시설이 충분치 않아 분뇨를 곧바로 빼내지 못하는 곳도 많고, 퇴비로 발효시키는 장치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 일쑤이다.
좁은 땅에 견줘 기르는 가축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말 소 사육은 300만마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 159만마리의 거의 갑절이고, 1년 전의 263만5천마리보다 13% 이상 많아졌다. 돼지 사육은 지난 1년 동안에만 55만마리가량 또 늘어났다. 이제 우리의 소·돼지 사육 마릿수는 땅 면적이 4배 이상 넓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는 밀식 사육 억제를 위해 큰 돼지 한 마리에 0.8㎡의 공간을 보장하는 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 자체가 미흡하고 그나마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 많은 가축의 분뇨와 악취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다 보니, 농촌에서도 축산농이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축산정책도 구제역 사태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받는다. 더 많은 가축을 공장식 사육으로 값싸게 생산하는 축산 ‘진흥’에만 초점을 맞췄지, 환경·방역·동물 복지·식품 안전 등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내 최대 양돈협동조합인 도드람양돈농협의 정현규 기술고문은 “비위생적이고 비좁은 환경을 방치하다 보니 새끼돼지가 질병에 잘 걸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다시 환경과 방역 투자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친환경과 동물 복지로 건강한 돼지를 기르는 것이 농촌 이웃과 공존하고 수익성도 높이는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어미돼지 한 마리가 1년 동안 출하하는 돼지가 네덜란드는 23마리인 데 견줘, 우리는 평균 15마리에 그치고 있다. 질병 때문에 새끼돼지의 40%가 폐사하는 것이다.
정승 농식품부 차관은 “농가의 분뇨 발생과 사육두수를 제한하고 동물 복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축산정책을 크게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벨기에 등은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땅을 먼저 확보한 뒤 가축을 기르도록 하는 등의 여러 강제 규정을 운용하고 있다. 이 정책은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전체 가축 사육의 자연스런 감소를 유도하는 한편, 농가에는 생산성 향상을 덤으로 안겨주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