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구제역] 구제역 부추기는 공장식 축산업








육식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
[초점] 구제역 부추기는 공장식 축산업…
동물 체질 약해지고 가축·사료 운반 경로 길어져 바이러스 쉽게 확산

최성진 기자

출처 :  한겨레21 [2011.01.14 제844호]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851.html

“공장형 사육 방식은 병원균을 배양하고 집중시키는 데 일조했다. 옛날 농부들은 많지 않은 수의 가축을 키웠고, 그 가축들은 작물에 사용할 퇴비를 생산하고 그 지방의 땅에서 자라는 풀을 뜯었다. 그런데 지난 30년 사이에 기술자들이 농부의 자리를 꿰차고 농장 대신 공장이 들어서면서 가축이 ‘동물 단위’로 바뀌었다. 현재 세계의 닭 가운데 약 70%, 돼지와 소의 경우에는 절반가량이 자연환경과 완전히 차단된 공장에서 자라고 있다. 인간은 싸구려 고기를 탐하는 식성 때문에 언젠가 생물학적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앤드루 니키포룩, <대혼란>에서)

구제역 의심에도 1주일 방치하는 안일함


고기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재앙으로 돌아오리라는 음울한 전망이 2011년 한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소와 돼지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게 감염되는 구제역이 2010년 11월29일 경북 안동시에서 처음 발생한 뒤 해를 넘겨 번지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충남 천안과 전북 익산에서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전염병인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했다. 한국인의 식탁에 가장 흔히 오르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닭고기 등의 육류와 고기 공급원으로서의 가축이 일제히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양상이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의 협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런 가축 전염병이 급격히 번지는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구제역만 따진다면 확산의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정부는 축산 농가에 책임의 화살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농민을 구제역 유입의 ‘범인’으로 직접 지목한 사람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다.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농민을 통해 국내에 상륙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가축 사료 차량 등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는 것, 구제역 확산의 책임을 농민에게 돌리고 싶은 정부의 ‘시나리오’였지만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우선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입 경로를 밝혀내려면 좀더 구체적인 역학조사가 필요하다. 유 장관의 ‘추정’과 달리,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구제역의 원인을 발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검역원에서 이번 구제역 사태의 원인과 관련한 최종 보고서가 나오려면 아직 수개월이 더 필요하다. 그 전까지는 누가 범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최초 유입 경로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구제역 확산의 원인 제공자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대구 <매일신문> 1월3일치를 보면 경북 가축위생시험소는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난해 11월29일보다 일주일 전에 안동 축산 농가 3곳으로부터 구제역 의심 신고를 접수한 뒤에도 모두 ‘음성’ 판정을 내린 뒤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침을 정면으로 어긴 결과였다. 지난해 10월 농림수산식품부가 내놓은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은 ‘구제역 의심 가축이 발생하면 시도의 가축방역관은 의무적으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북도와 안동시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침을 무시한 채 일주일간 구제역을 방치해 구제역 확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인당 육류 소비, 20년 새 16kg 늘어






















» 가축 사육 현황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허술한 대응이 이번 구제역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앞서 소개한 ‘공장식 축산’은 구제역 확산의 근본 원인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 말 구제역 최초 발생 지역인 경북 안동에서 200km 넘게 떨어진 경기도 파주와 연천까지 바이러스가 퍼진 이유를 설명하려면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와 속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최소 비용을 투입해 최대의 이윤을 얻어야 하는 경제학적 상식이 축산업에 도입된 결과가 바로 공장식 축산업이다. 가축을 동물이 아닌 ‘재화’로 인식한 농가는 ‘기업농’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몸집을 부풀렸고, 소비자는 ‘더 싼값’에 ‘더 많은’ 단백질 상품을 요구했다.

고기를 둘러싼 생산자와 소비자의 암묵적 합의는 집약적 곡물 생산과 맞물려 가축 수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다. 이른바 ‘축산 혁명’이다. 1961년 이후 전세계에서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수는 42억 마리에서 157억 마리로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소는 1890년 4억1천만 마리에서 10억 마리 이상으로 늘었다. 돼지도 지난 100년 사이 1억7700만 마리에서 10억 마리 이상으로 폭증했다. 축산 혁명의 결과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최신 통계를 보면 2009년 현재 사육 중인 한육우는 모두 263만5천 마리에 이른다. 2000년 159만 마리에 그쳤던 것이 2004년 이후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한 결과다(표 참조). 지난 10년간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돼지와 닭도 마찬가지다. 개체 수 증가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농가 1호당 사육 가축 수, 그리고 대규모 사육 농가 수가 함께 늘었다는 사실이다. 소와 돼지, 닭 사육 농가가 점차 기업농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농의 일반화 추세는 육류 소비량 증가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인이 소비하는 육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소비량은 1990년 1인당 19.9kg에 그쳤지만 해마다 꾸준히 늘어 2009년에는 36.8kg에 달했다. 20년 사이 한국인의 육류 섭취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욕심과 이윤에 대한 기업농의 이해관계는 공장형 축산업의 일반화로 이어졌다. 그런데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가축을 사육하려면 밀집 사육이 필수다. 구제역 바이러스든 조류인플루엔자든, 한 마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른 개체에게 동시에 전염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은 구제역 발병과 확산 원인에 대한 다른 접근이다. 구제역의 발병 원인을 따진다면 공장식 축산에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장식 축산업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존재했고, 야생동물에게도 감염이 일어나고 있다”며 “유기농을 비롯한 어떤 사육 방식을 선택해도 인간이 가축을 기르는 상황에서는 바이러스가 존재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제역의 확산으로 눈을 돌린다면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박상표 정책국장은 “좁은 공간에 소나 돼지를 밀집 사육하는 등 축산업이 상업화하면서 단일 지역에 축산 농장이 몰리는 등 공장식 축산이 구제역 바이러스가 퍼지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전적 다양성 파괴로 질병에 약해져


실제로 공장식 축산업이 일반화하면 도살장 역시 자연스럽게 소수화·대규모화하게 마련이다. ‘가축 공장’에 사료를 공급하는 업체도 규모를 부풀리기 수월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사료를 공급하는 차량과 도살장으로 가기 위한 가축이 예전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공장식 축산업은 구제역 바이러스가 차량 바퀴에 묻어 더 멀리, 더 빠르게 번질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

공장식 축산이 가져온 치명적 결과 가운데 하나는 유전적 다양성의 파괴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6500개 가축 품종 가운데 1350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1920년대 이후 본격화한 공장식 축산에서는 다양한 품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기업농은 오직 선별적 교배를 통해 개량된 특수한 품종의 가축만 사육했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전세계적으로 주로 사육하는 육우와 돼지, 닭의 품종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단순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세계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곧 바이러스가 침입하기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야생 상태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된 동물에게는 전염되더라도 질병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데, 움직이지 못할 만큼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사육하니까 작은 바이러스라 해도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가축 전염병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줄이려면 이번 기회에 동물 복지까지 고려한 축산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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