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축산업, 대규모·집중화 정책 바꿔야
출처 : 경향신문 2011-01-17 21:12:4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1172112495&code=990303
구제역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50일이 지났다. 가축 188만마리가 살처분·매몰됐고, 1조5000억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 100마리 중에서 15마리, 소 100마리 중에서 4마리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 12일 최후의 수단인 전국 백신 카드를 던졌다. 이제 구제역을 하루빨리 종식한 후 축산업을 회복시킬 대책만 남은 셈이다. 정부가 농업과 농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길 촉구하며, 축산업 회복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유기축산·중소규모 농장이 더 안전
첫째, 외국산 육류 수입 증가로 축산업이 회생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이른 시일 내에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축산물 수출 금액은 2009년에 쇠고기 790만달러, 돼지고기 1130만달러로 모두 1920만달러(약 223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청정국 지위를 이른 시일 내에 회복하지 못한다면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축산대국의 수입개방 요구를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중국은 돼지를 4억6000만마리나 사육하는 세계 제1의 양돈국가이며, 브라질은 소를 2억1000만마리나 사육하고 있는 세계 제1의 소 사육국가이다. 이들 국가로부터 저렴한 축산물이 수입된다면 한·미 FTA와 한·EU FTA에 의한 농업개방과 맞물려 국내 축산업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것이다. 벌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량과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축산업 대규모화 및 집중화 정책을 포기하고 지역의 친환경적인 중소규모 농장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농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축산업 허가제’와 같은 신자유주의 농업구조조정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 등 가축전염병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공장형 농장과 달리 유기축산 농장이나 중소규모 농장은 밀집사육을 하지 않으므로 가축의 면역력이 증강될 뿐만 아니라, 다량의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염된 분뇨를 배출하여 환경을 오염시킬 우려도 없다. 또한 도시 소비자들은 생협, 농민장터, 직거래 등을 통해 가까운 지역의 농민들이 생산한 ‘얼굴 있는’ 축산물을 구입함으로써 안전한 식품을 섭취할 수 있다.
SSM이나 통큰피자 사태를 통해 확인했듯이 대기업은 동네 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규모 농장도 농촌의 지역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중소규모의 농장은 동네 슈퍼, 치킨집, 피자가게가 동네 경제를 살리는 것처럼 농촌의 지역경제를 활기차게 만들 것이다.
셋째, 정부의 방역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지난해 1월 포천과 이번 안동에서 구제역 초기 방역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가축위생시험소와 중앙정부 소속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간의 업무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과 중앙의 방역 담당 공무원의 인사교류를 통하여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광역 단위에 생물학적 안전등급 3등급 이상의 연구시설을 갖출 필요가 있다. 검역검사청의 신설이나 수의과학검역원으로 방역 행정을 일원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후진적 관행개선 없인 구제역 재연
넷째, 농가 차원의 방역 및 질병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축산 농가가 차단방역, 환경관리, 분뇨처리 등 축산관련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일정시간의 교육 이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샤워장, 소독시설, 외부 출하대 등의 시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교육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농장 단위의 전담 수의사제도, 수의사 처방제 의무화, 질병 및 투약 이력까지 추적할 수 있는 이력추적제 등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수의사의 진단이나 처방 없이 항생제, 호르몬제 등의 동물약품을 축산농가가 마음대로 투입하는 후진적인 축산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 가축전염병을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