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 53일째 역대 최장기 기록, 왜?
유정복 장관, 대통령 입만 바라보다 방역 失機
출처 : 조선일보 | 이진석 기자 | 입력 2011.01.21 11:28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 에서 시작된 구제역 (口蹄疫) 사태가 20일로 53일째를 맞으면서 사상 최장기(最長期) 기록을 세웠다.
구제역은 20일 명품 한우(韓牛) 산지인 강원도 횡성 둔내면에 있는 축산기술연구센터까지 번졌다. 이날 충남 예산 , 경북 포항 에서도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날까지 살처분은 총 228만 1112마리에 달하고, 살처분 보상금과 방역비 등은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
전국적인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원인은 방역당국이 첫 발생지인 경북 안동에서의 초기 대응에 실패한 데다 경계구역 설정 등 방역 대책이 구제역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구제역처럼 전파력이 강한 질병의 방역을 위해서는 분초를 다투는 속도전이 필요한데, 농림수산식품부는 농민 반발 등을 이유로 백신 접종 결정 등 방역 대책의 주요 고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방역 당국의 총책임자인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방역 현안을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뒤에야 움직였다.
유정복 장관이 지난해 12월 22일 발표한 일부 지역의 구제역 예방 백신 접종은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과거 대책으로는 안 되고 전문가들과 상의해 조만간 심층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의 일이다. 농식품부는 21일 밤부터 급하게 회의를 열어 백신 접종을 검토했다.
지난 12일과 13일 발표한 전국적인 백신 접종 방침도 이 대통령이 지난 6일 구제역 관계장관 긴급회의를 소집, “항체를 비롯한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한 뒤에야 이뤄졌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방역당국은 작년 11월 초 만성적인 구제역 발생 국가인 베트남으로 단체 여행을 다녀온 안동 지역의 한 친목모임에 속한 농장주 3명을 바이러스 유입 경로로 추정하고 있다. 11월 23일 안동의 한 농가가 안동 지역 가축위생시험소에 구제역 의심 신고를 했지만, 간이 검사만 실시한 뒤 음성으로 판정했다. 정부는 엿새 뒤인 11월 29일에야 구제역 발생을 공식 발표하고 뒤늦게 방역 대책에 착수했다. 또 경기도 파주 의 가축분뇨시설 차량이 첫 발생 시기를 전후해 안동을 두 차례 드나들었다는 것도 보름쯤 지난 뒤에야 확인, 경기도 지역의 방역 시기를 놓쳤다. 김순재 건국대 가축전염병학 대우교수는 “초기에 대응이 늦었던 만큼 방역을 위한 통제를 좀 더 강하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초기 대응에 실패해 구제역이 빠른 속도로 번진 상황에서 경계구역(발생지로부터 10km 이내)과 관리지역(발생지로부터 10~20km)을 과거 기준대로 좁게 설정하는 실책도 범했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는 “소를 살처분하는 범위의 경우 우리나라는 반경 500m에 그치지만, 유럽 등에서는 돼지와 마찬가지로 반경 3km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