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구제역] 대량 실직 위기에 놓인 구제역 농가의 E9-4 취업비자 이주노동자들








이 땅의 무르다따들에게 찍힌 주홍글씨 [2011.01.21 제845호]
[이슈추적1] 대량 실직 위기에 놓인 구제역 농가의 E9-4 취업비자 이주노동자들…
농축산 분야에만 취업 가능한데 이 겨울 이들은 어디로 가나

출처 : 한겨레21 제845호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889.html

‘구제역’ 대재앙의 현장에서 주목받고 위로받는 이는 두 부류다. 파묻힌 가축들, 그리고 나앉은 농장주. 누군가 ‘위로는 충분한가’ 반문한다. 뻔한 이유가 있다. 소도 돼지도 저 혼자 크지 않고, 농장주도 저 혼자 집짐승을 길러낼 수 없다. 양돈 농가만 따져도 전국 8천여 곳에 3만여 노동자(대한양돈협회 추정)가 함께 있었다. 돼지똥을 치우던 네팔 사람 무르다따도 있었다.






















»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돼왔다. 하지만 농촌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은 지역과 근로 특성상 연대가 쉽지 않다.한겨레 이종근

“돼지 농장에서 일해서 안 된대요”

무르다따는 ‘나마스테’하지 않았다. 1월13일 전화 너머에서 때로 쇳소리가 당도했다. 35살 무르다따는 부모와 아내, 그리고 세 아이가 네팔에서 제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요.

제가 일하는 농장 지역에도 (지난해) 12월15일 구제역이 퍼졌고 살처분을 했습니다. 사장님이 여기는 이제 더 일이 없으니까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데, 채소 재배지 같은 데 알아보라고 했어요. 12월31일 그만둬야 했습니다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2010년 5월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의정부에서 돼지 4천 마리를 길렀습니다.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돼지 사료 주고, 주사도 맞히고, 똥도 치웠어요. 새끼를 낳으면 이틀인가 있다가 이빨도 잘라주고, 꼬리도 잘라줘야 합니다. 제 일이었습니다.


혼자 다 하셨나요.

사장님 말고 네팔에서 온 노동자 3명이 더 있었습니다. 거기서 함께 먹고 자고 일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만난 건데, 일이 힘들어도 한 나라 사람들이라 좋았어요.


예전에 축사 일을 해보셨나요.

나는 농부였습니다. 논밭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축산 일은 처음입니다. 두 명은 경영학을 전공한 대학생입니다. 한 명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을 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 돈을 별로 못 벌고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반년 만에 실직한 건데, 새 일자리를 찾고 있는지요.

(무르다따의 말이 길어졌다.) 며칠 임금도 못 받은 채로 농장 기숙사에 있다가 1월4일 그 지역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노동부(고용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우리 사업장 이렇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고, (취업)알선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이 10개씩 나와 있어요. 전화하니까 농장 쪽에선 돼지 농장에서 일했다는 말만 듣고도 (고용이) 안 된다고 해요. 사람이 필요해도 당신을 쓸 수 없다는 말만 했습니다. 날마다 알선장을 받으러 가면 사업장이 10개씩 나와 있습니다. 재배 쪽은 지금 일할 게 없다고 합니다. 어떤 데는 와보라고 해서 가면, 다 시골 같은 데잖아요, 택시 타고 가고, 돈만 많이 쓰고 돌아옵니다. 정말 춥습니다.


3개월 안에 구직 못하면 불법 체류자 돼

지난 1월3일 해 질 녘 네팔인들이 떼로 천안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찾았다. 무르다따를 포함해 축산 농가에서 해고된 6명이었다. “갈 데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실직자들은 물었다. 지원센터 이옥희 과장은 “앞서 베트남인 5명, 네팔인 3~4명 등 10여 명이 비슷한 처지로 전화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일부에 불과하다. 전국의 축산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하거나 실직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한 발 더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무르다따들’이다. 새 구직부터가 어렵다. E9-4 취업비자로 들어와 농축산 분야에만 취업이 가능한데, 이 겨울 논밭 역시 황량하다. 그나마 익힌 축산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구제역 지역 출신’이 주홍글씨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제역 지역 축산 노동자들은 방역 당국으로부터 일정 기간 이동 통제를 받고 있다. 경기 파주에서 돼지 3천 마리를 묻은 장아무개(50·농장주)씨는 “타이인 부부 2명이 재취업까지 하면서 모두 3년6개월을 이곳에서 일해 정들었는데, 곧 내보내야 할 것 같다”며 “이미 일거리가 없는데, 다른 지역으로 바로 가면 구제역을 전염시킬 수도 있어서 당분간 데리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의 돼지농장에서 일한 중국인 양아무개(38)·장아무개(42)씨는 임금 마찰로 지난해 11월23일께 사업장을 나왔다. 구제역이 터졌다. 한 푼 벌지 못한 채 동네에서 묶였다. 경북 안동의 대형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 김아무개(41)씨는 “이 일대 농장에 외국인 노동자만 10여 명이 일했다”며 “지금 대부분 퇴사 처리가 됐고, 농장에서 데리고 있어도 월급은 안 나온다”고 말했다.

농장주는 돼지 한 마리에 30만원, 소 한 마리에 500만~600만원의 시가 보상을 받는다. 축산 노동자에겐 어떤 보상도, 지원도 없다. 대신 실직한 이주노동자는 3개월 안에 농축산 쪽에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에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사실상 불법 구직의 유혹될 수밖에 없다.

무르다따는 “한국에 오려고 2년이나 기다렸다”고 말했다. 직무와 관련한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면서 삽과 낫을 외우고, 체력 검정도 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들인 돈만 300만원이 넘는다. 은행빚도 졌다. 본국에선 몇 년을 모아야 만질 수 있는 돈이다.

불법은 유혹의 수준을 넘는다. 절박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 달에 120만원씩 받았습니다. 60만원 정도를 고향으로 보냈습니다. 그곳에 제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통제 불능의 이동이 방역 체계도 무력하게 하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안동의 농장 직원 김씨는 “준전시 상황인데,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도 발생 지역에서 축산 노동자들을 격리시키면서 일정 부분 임금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인근 농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1명은 왜관의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갔다고 한다.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노동자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김씨는 “대부분 가재도구까지 갖추고 기거하며 일했는데, 함께 농장 재건에 힘쓰도록 하면 좋지 않겠느냐”며 “농장주 보상분의 0.1%만 떼어도 수개월치 월급은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농장주에게 100% 보상을 해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그런 체계에 반해, 가장 사회적 약자라 할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고 말한다.


구제받지 못한 실업 이주노동자들

2010년 농축산 쪽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이들은 8139명(2010년 10월 말 기준, 고용노동부)이다. 이미 대다수 ‘불법 노동자’에 의해 한국 축산업은 움직인다. 이들에 대한 무관심을 합리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경기 파주의 농장주 장씨는 “한국인은 여기에 와도 두 달을 못 버틴다”고 말한다. 임금이 적고 일은 고되다. 무르다따와 전화로 대화할 수 있도록 통역해준 기따 구마리 라이(천안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상담가)씨는 “농어업 비자를 받고 들어온 외국인들이 가장 안쓰럽다”고 말했다. 베트남·네팔·캄보디아·타이 등 15개국에만 해당 비자가 주어진다.

기따 구마리 라이씨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농어업 쪽이) 가장 적은 임금을 받고, 5명 미만 사업장이 많아 한 달 내내 쉬지 못하는 곳도 있다. 산업재해 적용이 안 되고, 퇴직금을 못 받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 축사가 침묵하자, 가장 먼저 불필요한 자가 된다.
무르다따는 이달 고향으로 돈을 부치지 못할 것 같다. 신묘년 벽두, 실업자는 구제역으로부터 구제받지 못한다.


무르다따씨 수중에 얼마가 있는지 물어봐주시겠어요.

그건… 못 묻겠습니다. 묻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담가의 마지막 통역은 이뤄지지 않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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