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맹신’…구제역 토착화 길 걷나
백신접종뒤 ‘감염가축만 부분매몰’ 전환
바이러스 퍼져 발병농가서 다시 구제역
김현대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11-01-28 오후 07:56:17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12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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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1주일 사이 백신 접종 농가에서 구제역 발생 때 매몰처분 대상 가축 범위를 축소하는 방침을 잇따라 발표했다. 지난 20일엔 접종 이후 항체 형성 기간 14일이 지난 농가에 한해 감염 가축만을 매몰하는 ‘14일 뒤 부분 매몰’ 방침을 정했다. 그 이전까지는 발생 농가의 가축 모두 매몰하도록 했다. 1주일이 지난 27일엔 백신 접종을 마친 농장에서는 14일 이전에라도 감염 가축만 매몰하도록 더 뒷걸음쳤다.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은 ‘매몰 가축을 줄이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최근 돼지고기 값이 폭등하자 상당수 양돈농가들도 매몰 최소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현장양돈수의사모임은 “백신 접종은 매몰처분과 병행할 때 효과가 있다”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구제역 발생 농장에서 지금처럼 일부 감염 가축만 매몰하면 ‘돼지와 소만 죽이고 구제역 바이러스를 살려두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농장에서 구제역이 또 발생하고 해당 농장의 가축이 차례차례 매몰될 터인데, 그동안 바이러스는 더욱 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방역 전문가들도 “백신은 불완전한 처방”이라고 말한다. 경기 이천 등지에서는 28일에도 구제역이 발생한 사례가 20여건 이어졌으며, 이 가운데 대다수가 백신 접종 뒤 일부만 매몰했던 농장에서 구제역이 또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대만처럼 구제역이 ‘토착화’하는 조짐이라고 경계했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박상표 정책실장은 “백신 접종 이후의 관리가 지금처럼 허술할 경우 돼지에서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백신 맞은 소의 항체 형성률은 85~97%에 이르지만, 돼지는 그보다 낮고 항체가 형성되는 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영국 퍼브라이트 연구소의 2007년 논문을 보면, 백신 접종 열흘 뒤에 바이러스를 접촉시킨 돼지 19마리 중에는 3마리(방어율 19%)만이 무사했으며, 백신 접종 29일이 지나서야 방어율이 75%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국적 백신 상황의 매뉴얼은 지금까지 준비돼 있지 않았고, 이제 급한 것부터 만들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