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첫 엿새 방치…한달뒤 백신…대충 매몰 ‘대재앙’
의심신고 1주일뒤 확진
백신접종 늦고 매뉴얼 무시
3개월간 340만마리 매몰
위기 확산에도 대처 안이
구제역 발생 한달 지나서
대통령 첫 긴급장관회의
김현대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11-02-20 오후 08:26:37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64348.html
» 경북 안동발 구제역 사태와 정부 대응 (※클릭하면 확대) |
구제역 총체적 부실대처
지난해 11월29일 경북 안동시에서 시작한 구제역 대재앙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초동대응에 실패하고, 예방약(백신) 접종 시기를 놓치면서, 소·돼지 340만마리를 땅에 파묻는 비극을 자초했다. 구제역 사태는 이제 축산업의 붕괴를 넘어 식수원 오염이라는 환경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몰지 주변의 지하수 오염은 여러 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돼지들을 잔인하게 생매장하는 장면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 대통령은 구제역 발생 한달을 훨씬 넘긴 지난 1월6일에야 관계 장관들의 긴급대책회의를 처음 소집하는 등 구제역 사태에 총력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초동대응 실패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달 25일 이번 구제역 역학조사 중간 결과 발표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초기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23일 경북 안동의 돼지농장에서 첫 의심 신고가 들어왔을 때 간이 항체 검사만으로 음성 판정을 내려, 6일 동안 구제역 바이러스를 방치했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경기 포천과 인천 강화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도 간이 항체 검사의 문제점을 지적받았지만, “자치단체가 다루기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밀진단 장비(간이 항원 키트)를 보내지 않았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박상표 정책실장은 “감염 1~2주일 뒤에나 진단이 가능한 간이 항체 검사만 지자체에 맡겨, 초동대응을 어렵게 만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안동에서 구제역이 퍼진 뒤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방역 인력과 장비부터 태부족이었다. 기본적인 훈련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된 방역 인력이 구제역 확산의 매개체 구실을 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허둥대는 농가들한테 체계적인 방역 지침을 전달하고 설명할 시스템도 없었다. 사료·분뇨 수송 차량, 도축 차량이 바이러스를 품은 채 전국 축산농가를 누비고 다닌 사례도 허다했다.
초동대응 실패로 고삐 풀린 바이러스가, 밀집 사육으로 질병 저항력이 떨어지고 축사 방역도 취약한 우리 소·돼지들을 마음껏 유린했음은 물론이다
■ 백신 접종 우왕좌왕 지난해 12월15일 경기도로 구제역이 확산된 시점에, 백신 접종을 단행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무렵, 농식품부·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정책 당국자와 민간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기 시작했다. 구제역이 대재앙으로 번질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은 마련돼 있지 않았고 그에 대비한 전국 백신 접종을 논외로 두었던 터라, ‘최악 상황’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비축해놓은 백신 물량도 없었다. 전국 소·돼지가 1300만여마리인데, 수의과학검역원의 창고에는 30만마리 분량밖에 없었다.
구제역 발생 거의 한달이 다 된 지난해 12월25일에야, 경북·경기의 5개 시·군 구제역 발생지 주변에 한해 ‘링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그나마 소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 뒤 백신 접종 지역을 잇따라 추가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구제역이 휩쓸고 지나간 뒤였고, 당연히 백신 접종의 선제적 효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전염성이 강한 돼지를 초기 접종 대상에서 배제한 것도 ‘정책 실패’의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사육 돼지의 3분의 1가량인 323만마리가 땅에 묻혔다.
■ 예고된 부실 매몰 부실 매몰로 인한 침출수 오염은 대표적인 관재이다. 1월 들어 날마다 10만마리씩 매몰 돼지가 쏟아지면서 매몰할 땅도, 매몰 작업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 봉착했다. 돼지를 산 채로 생매장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돼지가 발버둥치면서 바닥의 비닐이 찢어지고, 아래로 핏물 침출수가 흘러내렸다는 것이다. 경기 여주군의 한 공무원은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빨리빨리 묻으라고 재촉하는데, 어떻게 매뉴얼대로 하나하나 죽인 다음에 묻을 수 있었겠느냐”며 “예산을 아끼려고 잘 찢어지는 비닐을 바닥에 깐 지자체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매몰지를 선정할 때는 지자체의 환경 담당 공무원이 관여하도록 돼 있으나, 이런 절차도 무시한 채 대충 파묻기에 급급했다. 한강 상수원 주변에까지 가축들의 무덤이 생겨났다. 식수원과 지하수 등을 오염시키는 ‘2차 피해’를 막는 데 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방역 현장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국무회의에서 국가비상사태라는 위기의식으로 진작에 총력 대응에 나서야 했는데, 농촌의 일로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군 인력 동원도 미온적이었고 정부 각 부처의 협력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