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침출수 피해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전문가들 “막연한 공포심 가질 필요 없어”
탄저균 가능성 희박..있어도 인간감염 제한적
매몰지 인근 지하수는 ‘위험’, 수돗물은 ‘괜찮아’
출처 : 연합뉴스 2011/02/23 07:29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신재우 기자 =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로 인한 토양 및 지하수 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각종 병원균이 번식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침출수가 지하수로 스며들고 하천으로 흘러들어 식중독이나 장염은 물론 치명적인 탄저병까지 유발하는 환경재앙의 시나리오도 나온다.
상수도원 오염 가능성이나 오염된 지하수로 키운 농작물이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행할 가능성은 희박해 막연한 공포심은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 탄저균 가능성 매우 희박
침출수로 인한 피해 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탄저병이다.
감염경로에 따라 달라지지만 탄저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어서 감염되는 위장감염의 경우 치사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탄저병이 문제가 된 것은 침출수가 탄저균을 비롯한 바실루스균이 번식하기에 적당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 김계훈 교수팀이 환경부 의뢰로 지난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 7만여마리가 묻힌 경기도 평택의 매몰지 토양 내의 바실루스균 규모를 조사한 결과, 외부 토양보다 27배나 더 많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참여한 이근화 제주의대 교수는 “바실루스균에 탄저균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대규모 매몰의 경우에는 토양환경이 급격히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실루스균이 많아졌다고 해서 없던 탄저균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탄저병으로 사람이 숨진 것은 2000년이 마지막이며, 소가 감염된 사례도 2000년대 들어 2건(2000년, 2008년 각 1건)에 불과하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1998년 전국 9개 시.도 725개 토양시료에 대한 탄저균 오염도를 조사했지만 모든 시료에서 탄저균이 검출되지 않았다.
수의과학검역원 김재명 연구관은 “우리나라 토양은 탄저균에 거의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몰지의 침출수에 의한 탄저병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수의과학검역원에서는 하지만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전국 매몰지의 10%에 해당하는 460개소에서 침출수 검사를 진행 중이며, 21일 공개된 중간 검사결과 15개소 30개의 샘플에서 구제역이나 탄저균 등이 검출되지 않았다.
설령 토양 속에 탄저균이 존재한다 해도 파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인간이 탄저병에 걸리는 경로는 ▲탄저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는 경우 ▲탄저균을 흡입하는 경우 ▲탄저균에 오염된 흙이나 식물을 만지는 경우 등으로 나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탄저균에 오염된 지하수를 통한 감염 사례는 보고된 적이 없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 외국사례를 뒤져봐도 물을 마셔서 탄저병에 걸렸다는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이 탄저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는 것인데, 도축과정에서 수의사에 의해 간단히 체크되기 때문에 식탁에까지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수의과학검역원 이병권 사무관은 “과거 국내에서 탄저병으로 사망한 경우는 탄저병에 걸린 소를 생고기로 먹었기 때문”이라며 “탄저병에 걸린 소는 비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도축과정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탄저균에 오염된 토양이나 식물로부터 피부를 통해 탄저균에 감염된 경우에는 항생제 처방으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생물학 테러 수준이 아니라면 탄저균을 직접 흡입해서 감염될 가능성도 극히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수돗물은 걱정 없어
매몰지 주변의 지하수를 통해 식중독이나 장염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는 보다 현실적이다.
동물 사체의 내장에 식중독, 장염, 패혈증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침출수에 이런 세균들이 섞여들어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살모넬라균, O-157 같은 병원성 대장균, 장염과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 등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균들은 물에서 강력한 증식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매몰지 인근 주민 중 상당수가 식수 등으로 지하수를 이용해와 피해가 우려된다.
연합뉴스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매몰지에서 300m 안에 자리 잡은 지하수 관정은 전국적으로 1만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공식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미신고 지하수 관정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평균 상수도 보급률은 93.5%에 이르지만 면 단위는 51%에 불과하다.
이근화 제주의대 교수는 “매몰지 주변의 지하수는 마시지 말아야 하고 꼭 마셔야 한다면 충분히 끓여서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수돗물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상수도 당국의 설명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수질과 김봉철 주무관은 “여과와 침전, 염소 소독 등 몇 단계에 걸친 정화과정에서 세균은 100% 잡히니 수돗물의 안전에 대해서는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농작물 깨끗하게 씻어 먹어야
침출수나 오염된 지하수가 농작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사람에게 식중독, 장염,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균이 지하수에 섞여 채소나 과일 등 농작물 위로 뿌려지면 이를 먹는 게 안전하냐는 문제다.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발생하면서 매몰지 인근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에 대해 원산지 표기를 원하는 소비자가 나타나는 등 음식재료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중에 노출된 병원성 세균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멸해 농작물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러나 농작물의 표면은 세심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호현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미생물과 팀장은 “세균은 온도가 일정치 않고 영양분이 없는 곳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지만, 침출수가 포함하고 있을 수 있는 기생충은 자기를 보호하는 막을 만들어 생존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기생충과 함께 미처 죽지 않은 세균이 붙어 있을 수도 있어 표면은 깨끗하게 처리해서 먹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차수막이 찢겨 침출수가 흙이나 지하수로 스며들고, 오염된 물을 농수로 썼을 때 발생하는 토양오염도 우려의 대상이다.
토양 속 병원균과 매몰지의 생석회와 가축 시체가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암모니아가 토양의 산성화에 미칠 영향 등을 현재로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침출수는 일반 축산분뇨보다 오염도가 5~6배가 높아 희석된다고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자연분해 능력만 믿지 말고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환경오염에 대해 장기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는 “가축을 묻어 부패하면서 나오는 물질은 유기물로 자연적으로 금방 분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매몰지 4천 곳 중 허술한 곳도 있기 때문에 새로 매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전부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