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구제역] 구제역 사태 진짜 진범은 이것(우석훈)

구제역 사태 진짜 진범은 이것

시사INLive | 우석훈 | 입력 2011.03.04 11:59



지난해 한국 경제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올해 그리고 내년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다양한 방식으로 예측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11년 초 구제역이 이 정도까지 극성을 떨고, 정부가 이 정도까지 대책 없이 무너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마음 단단히 먹고 현 사태의 주범이 누군지 털어놓아볼까 한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광우병 관련 사태가 전적으로 ‘인터넷 괴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본다면, ‘구제역 괴담’ 역시 정부가 이른바 ‘우파 세력’을 통해 퍼뜨렸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들이 수군거려온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안동의 어느 농민이 구제역 바이러스를 한국으로 가지고 왔으며, 이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47쪽 기사 참조).



그 다음 얘기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파’에 대한 것이다. 지난해 12월8일 서울에서 열린 ’2010 전국농민대회’로 인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정부 방어망을 뚫고 의정부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다. 결국 바이러스는 농민 때문에 들어왔으며, 농민대회 때문에 전국으로 퍼진 것이 된다. 그래서 ‘자기네 농민’들이 잘못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니까 보상해줄 필요도 없다는 식의 담론이 경제신문을 중심으로 파다하게 퍼졌다. ‘다방 농민’ 발언도 그 와중에 나온 셈이다(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2월13일 열린 한 세미나에서 “다방 농민이라는 말이 있다. 모럴해저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해 농민들을 분노케 했다).



구제역 진범, ‘농정 로드맵 10개년 계획’



그러나 현 사태를 수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원인의 절반은 정책 실패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실업자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그 사람은 우울증 때문에 죽은 거다’라고만 진단해도 되는 것일까. 당연히 우울증이니까 자살했겠지만 그 우울증의 원인은 실업이다. 자살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경제적 타살’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 사태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입안된 ‘농정 로드맵 10개년 계획’이 ‘진범’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우리 농업이 기업농·수출농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 초대 농림부 장관인 진보당 조봉암의 정책을 뒤엎는 것이었다. 당시 농지 개혁을 주도한 조봉암은 소농 중심의 정책을 추진했고, 한국 농업정책의 기조는 이 전통 위에 서 있었다. 심지어 1987년 9차 개정 헌법 때는 농정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아예 ‘경자 유전의 원칙’을 헌법에 넣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농정은 이를 뒤집었다. 그래서 참여정부 농지법 개정 논의 때 시민단체와 민중단체가 연대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때 실무 책임자 중 한 명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농림부 장관이던 장태평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가 넥타이 매고 다닌다고 한 소리 했다지만, 장태평은 그래도 농업을 좀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장관직을 계속 유지했다면 구제역을 비교적 초기에 잡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기업농으로 가려는 노무현의 개혁은 결국 실패했다. 이렇게 되자 노무현 정권의 ‘기업주의자’들이 다시 힘을 실어준 것이 ‘공장형 축산’이었다. 한국의 축산 시스템은 원래 ‘분산형’이자 ‘소형’이었다. 그런데 ‘기업주의자’들은 선진화·현대화 따위 논리를 동원하면서 중앙집중적 대형 축산(공장형 축산)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다. 이에 지역개발 논리 ‘클러스트’론이 가세하면서, 축산업을 특정 지역에 대규모로 집중시키는 시스템이 생겼다.


이 같은 시스템은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는 식품위생기본법 같은 장치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국민들이 먹는 식품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축산 시스템을 분산형·소형·유기농 쪽으로 개조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유시민이 관련 부서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면서 이 논의를 정책화하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



‘유정복의 농림부’, 농업 위기 방어 못해


한국의 공장형 축산 시스템을 바꿀 기회가 한 번 더 있기는 했다. 지난 대선 당시 경실련 농업 담당자인 윤석원 교수(중앙대)가 이명박 후보의 농업특보가 되면서 ‘기업농 중심’이 아니라 ‘소형 농업 중심’ 공약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원 교수는 농림부 장관이 되지 못했고, 그 자리를 차지한 정운천 전 장관은 광우병 사태로 새로 출범한 정부를 매우 힘들게 했다.


우리 농업의 기본 방향을 바꿀 사람으로 주목되던 윤석원 교수가 농림부 장관이 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당시 진보 성향 시민단체 지도자급 인사인데도 윤 교수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농업특보를 부탁한 바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인사 행태를 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능하고 신망받는 보수, 즉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런 인재가 우리나라에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MB 정부의 내각에 들어가려면 대운하를 찬성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진입 장벽이 있다. 그런데 멀쩡하고 제정신이며 소신을 갖춘 존경받는 보수라면 한반도 대운하를 찬성하기 어렵다. 혹시 이명박 정부 초기의 대운하(지금은 4대강)를 찬성하는 사람들로만 내각을 구성하려다보니, 결국 지금 같은 ‘잡범 내각’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정운천에 이어 농림부 장관이 된 장태평은 기업농 노선이었으나 축산업의 규모 확대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 못하는 장관처럼 보였고, 결국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8년 농림부 장관을 맡은 김성훈 이후로는 장태평이 제일 무난했다고 나는 평가한다. 현 농림부 장관 유정복도 친박 지분으로 가장 인기 없는 자리를 하나 얻은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취임하자마자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가장 먼저 한 소리가 고작 ‘쌀 경작 면적의 축소’ 아니었던가. 이런 농림부가 어떻게 농업을 방어하고 구제역에 대응한단 말인가.


장기적으로 농업 정책을 바꿔야 한다. 특히 축산업은 그동안 기업농 논리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들였다. 분산형과 유기 축산 쪽으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해마다, 그리고 점점 더 심하게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농업을 바꾸려면 장관부터 바꾸어야 한다. 일단은 (구제역 후폭풍으로) 우유 수급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어쩌면 당장 3월부터 아기를 키우는 가정과 학교에 우유 긴급 지원금을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유 값이 없어서 굶는 아기가 생겨나면 정권이고 뭐고 정말 대책 없다. 정신 좀 차리세요!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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