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이후, 지속가능한 한국농업을 생각한다
[헤리리뷰] 녹색생활|특별대담
김현대 기자 강재훈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11-03-08 오전 09:36:52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66954.html
지난해 이후, 쌀대란, 배추 파동, 구제역 재앙이 이어지면서, 농업이 국가관리의 주요 이슈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이미 곡물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혁명’의 기폭제 또한 식량난이었다. 봇물 터진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농업의 생존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 감소와 중국과 인도 등의 곡물 수요 증가, 식품안전과 탄소중립적인 환경의 요구가 그 저류에 깔려 있다. 국내외에서 닥쳐오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 지속가능한 농업의 비전을 세울 것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취임 뒤 쌀·배추·구제역 사태를 ‘섭렵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농업계의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 지에스앤제이(GS&J) 인스티튜트 이정환 이사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김현대 선임기자가 2일 낮 정부과천청사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실에서 2시간 동안 도시락 대담을 진행했다.(편집자)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지난해 8월30일 쌀값 폭락의 와중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취임해 바로 다음날 ‘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뒤 ‘1만5000원 배추’ 파동으로 홍역을 치렀으며, 11월 말 이후로는 구제역 사태에 매달리고 있다. 구제역 종식 뒤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한나라당의 재선 의원(김포)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대표적인 친박계 인물이기도 하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김포군수와 김포시장을 3연임했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농업경제학 박사로, 2005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을 그만둔 뒤 민간 농업싱크탱크인 지에스앤제이(GS&J)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를 본보기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 수행을 표방한다. 매주 두차례 A4 용지 10~15쪽 분량의 정책보고서 <시선집중 GS&J>를 발행해 쌀, 자유무역협정(FTA), 농협 개혁 등 농업계의 가장 민감한 현안에 대해 쉬운 문장으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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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질병 대응체계와 축산업 선진화 동시 추진”
구제역을 성찰한다
유정복 장관 구제역 이후 대책을 준비중인데, 구제역이 아니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다. 축산업의 위험요소인 가축질병의 체계적 대응체계를 세우는 것, 축산업을 선진화하는 것, 이 두가지를 동시에 준비한다. 축산의 위생과 환경, 경영관리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축산농가의 경쟁력, 그리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축산업 허가제를 포함해 체계적인 내용이 담길 것이다.(정부의 축산업 선진화 보고서는 3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이정환 이사장 구제역은 재앙이다. 초기 대응과 백신접종 등에서 판단의 잘못이 있었지만, 사실은 농업과 축산업, 농업정책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누적된 결과이다. 방역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제에 농업·축산·농정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서 바꿔야 한다. 축산업 선진화를 추진하는 것은 시의적절하나, 서두르다가 졸속으로 만들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은 있다.
유정복 동감한다. 임기응변식 대책 수립은 안 된다. 이런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더더욱 체계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선진화 방안에서 우선 큰 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정밀한 제안은 시간을 두고 보완해 나갈 것이다.
이정환 2001년 구제역으로 가축 600만마리를 살처분했던 영국 정부는 구제역이 끝나기 전에, 교훈조사위원회와 질병조사위원회를 설치해 1년 동안 연구하도록 했다. 지금 영국의 방역시스템은 그 산물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농업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농업과 식품 조사위원회를 가동했다는 사실이다. 위원회는 6개월 뒤 지속가능한 농업 보고서를 제출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 105개의 제안으로 다시 정리해 1년 동안 보완작업을 했다. 식품과 농업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농촌경제와 농촌사회를 연계시키며, 환경과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다양성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정복 영국은 농수산식품부를 환경식품농촌부로 바꾸면서, 농업문제에 새롭게 접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방역체계는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으로 바꿨다. 다 바꿨다. 매몰에서도 환경을 고려해 소각과 렌더링(멸균처리법)을 우선하도록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비난받겠지만,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으면 죄악이다. 백서를 준비한다. 모든 기록을 낱낱이 있는 그대로 정리해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겠다. 무엇이 미흡했고 잘못됐는지, 철저히 반성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다.
백서 만들어 교훈 남길것
정책 초점은 가시적 성과
식량안보 대응 많이 반성
FTA·DDA, 위기이자 기회
농업의 비전과 농정의 역할
이정환 우리의 국민 1인당 경지면적은 370㎡에 불과하다. 중국의 3분의 1이고, 네덜란드도 우리보다 4배 많다. 동남아 모든 나라들이 우리 몇배 이상이다. 식량 조달을 위한 자연적 조건이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나라다. 이렇게 좁은 땅에 1천만마리의 돼지, 340만마리의 소, 1억4천만마리의 닭을 사육하는 게 적절한가? 그러다 보니, 축산이 자꾸 집약화·규모화하고, 가축질병에 취약해지고 있다. 환경 측면에서도 열악하다. 질소와 인산 배출은 오이시디(OECD) 평균의 3~4배를 초과한다.
돈 버는 농업, 수출농업, 규모화, 경쟁력, 그런 쪽으로 너무 많이 가 있다. 그래서 (구제역) 문제가 생겼다. 농업은 무한한 대기의 질소와 탄소를 태양에너지로 농축시키는 탄소중립적이고 순환적인 환경산업이란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농업의 존재 이유와 비전도 거기에 있다.
유정복 궁극적인 가치지향은 그렇게 가야 하겠지만, 정부정책은 가시적인 정책성과를 내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농업이 가야 할 정책방향을 다섯가지로 잡고 있다. 첫째, 위험대응체계 수립이다. 쌀, 배추, 구제역을 겪으면서 농업에 위험요소가 정말 많고 그 관리가 중요하다고 절감하게 됐다. 배추값이 폭락하고 구제역이 터지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다음으로 농업인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보급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내외 환경변화에 맞는 신성장산업으로 농업경쟁력을 육성하는 일, 농업의 영세성과 고령화,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활력사업, 보조금 정비와 농협 개혁 등의 체질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정환 목적이 분명치 않으면 수단이 엉뚱한 데로 이끈다. 축산도 규모화와 수출에 성공한 것 같았는데, 사실은 목적에 반했다. 그래서 구제역이 터진 것이다. 전세계가 농업에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 탄소중립적이고 환경보전적인 산업이란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농업은 안전한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가장 중요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배추와 돼지고기 공급이 몇십% 줄어드니까, 가격은 몇백% 폭등했다. 수입자유화됐는데도 가격폭등을 막을 수가 없었다. 국내 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수입농산물로 대체할 수가 없다. 농촌공간에 대한 욕구도 치명적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화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것이 농업의 존재 이유이다. 그래서 세금을 내는 것이다. 단순히 수출 더 많이 하고 지디피(GDP) 더 끌어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농식품부만이 아니라) 대통령부터 예산당국까지 나서서, 진짜 왜 농업이 존재해야 하고 왜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지, 농민들과 함께 절실하게 생각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정책수단을 세워도 늦지 않다.
유정복 농업예산을 인구나 생산성 비율로 따지는 것은 난센스이다.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본질과 가치의 중요성으로 예산을 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농업예산의 전체 규모는 더 확대돼야 마땅하다. 다만 지금의 예산운용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단기 보조금 위주의 각종 지원으로는 진정한 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농업이 진정한 신성장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된 농정이 부른 재앙…농업 본질은 환경산업”
이정환 비농업부문에서는, 농업예산이 단기적이고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그런 게 쌓이면서 농업부문은 예산 콤플렉스를 갖게 됐고 이제는 경쟁력 향상이 농업예산 수립의 잣대가 됐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효율적인 농업이란 과제가 해결됐나? 낭비가 많다고 또 비판을 받고 있다. 농업예산은 경쟁력 향상이 아니라 환경과 식품안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에 쓰여야 한다. 영국이 구제역 이후 환경식품농촌부의 맨 앞에 환경을 넣은 것도 그런 뜻이다. 우리 농식품부에서도 식품을 다루는데 식품산업 육성에 치중해 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식품안전을 책임지는 구실이 지금보다 더 부각돼야 한다.
국제곡물파동과 식량자급
유정복 우리 곡물자급률이 26.7%다. 75% 가까운 곡물을 외국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홍수와 가뭄·한파·폭우가 전지구적으로 반복적으로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세계 곡물의 공급 기능이 불안정 기조로 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거대국의 수요 증가도 결정적 변수이다. 두 나라는 이미 전세계 콩과 밀 소비의 30%를 차지하면서, 세계곡물시장을 빨아들이고 있다. 육류를 많이 섭취하면서 사료곡물 소비가 급증한 것이다.
식량안보 중요성이 어느 나라보다 강조돼야 할 상황이다. 국가적 체계도 빨리 갖춰야 한다. 콩과 밀, 옥수수 비축을 시작해 2015년까지 수요의 12%까지 끌어올릴 계획인데, 목표치를 더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당장 떨어진 일에 급급하다 보니, 이런 중요한 일에 긴장감 있게 대응하고 있는지 반성을 많이 한다. 저출산 고령화 같은 장기 대책을 세우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정환 원유값이 80~90달러 이상 올라가면, 바이오에탄올 값이 더 싸지게 된다. 옥수수 태워 난방하고 자동차 타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문제는 경작면적이 세계 최악이라는 사실이다. 식량안보를 위해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싶어도 그게 가능하지 않다. 현실적 제약조건을 냉철히 살펴야 한다. 평시에는 국제곡물시장을 잘 활용하면 될 것이나 지금 같은 때에는 어떻게 대응하나? 위기대응시스템, 확실히 준비된 게 없다. 일본은 곡물이 태평양을 건너오는 기간을 고려해 한달분 국내 비축을 의무화하고, 국외조달시스템도 정비해 두고 있다.
유정복 우리는 쌀만 두달치를 비축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쌀만 먹나? 밀과 콩, 옥수수도 비축해야 한다. 다른 나라보다 비축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하나, 그렇더라도 비축을 확실하게 강화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분명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영국 구제역 성찰 배워야
‘돈버는 농업’ 강조 지나쳐
식량안보 여건 세계최악
소득 보전은 시혜 아니다
FTA와 DDA 대책
유정복 도하개발의제(DDA) 타결가능성이 올 들어 높아지고 있다. 우리 영향을 면밀히 살펴야 하나, 피해와 피해보전만 생각하면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도 없고 재정이 감당할 수도 없다. 그래서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다.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더욱 근본적인 정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지원금액만을 따질 일이 아니다. 에프티에이와 디디에이는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엄청난 세계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정환 생각이 좀 다르다. 수입관세 몇십 % 없어진다고 우리 농업이 결정적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국내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의 농민들은 굉장히 불안해한다. 당사자가 그렇게 움츠리면 투자가 이뤄질 수 없다. 자꾸 도망갈 궁리만 한다. 이것이 우리 농업의 문제이다.
소득하락을 직접 보전해주는 직불제를 복지 성격으로 볼 일이 아니다. 전전긍긍하는 농민들을 안심시키는 위험관리시스템이다. ‘에프티에이가 발효되더라도 가격하락에 따른 농업 손실을 정부가 직불제로 감당한다’, ‘그러니 걱정하는 것처럼 절반 이하로 수입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이 농업예산의 대부분을 직불제에 쏟아붓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직불제는 시혜가 아니라 농업의 존립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대신 경쟁력 향상에 들어가는 예산을 상당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정복 선진국과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선진국에서 그렇게 보조금을 주는 것은 농업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로 두면 존립이 안 되니까 지원하는 것이다. 보조금을 계속 끌고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불가피한 보조금을 일시에 개편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자,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신·경 분리 개혁
유정복 1년 반 이상 지루하게 끌어왔다. 이번에는 마무리하고 농협의 문제점을 해소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해야지. 완벽한 게 어디 있겠나. 이제는 개혁을 시작하고, 계속 보완해 나가자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농협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잖은가? 거기에서 출발하면 된다. 농업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농협의 본질적 목표인데 세월이 지나는 동안 신용사업 중심으로 흘러갔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서 농협이 경제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자, 그런 큰 목표를 설정하고 나가자는 거다. 신용사업도 지금 이대로는 경쟁력이 약하다.
이정환 농협법 개정을 생각하면, 곤혹스럽다. 금융지주(신용사업부문) 만들면, 읍면에 있는 지역조합의 상호금융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 경제지주 설립으로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은 더 잘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조합 사업에 어떤 득이 되겠나. 상호충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신·경 분리를 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그 뒤 지역조합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겠다는 명확한 그림이 잘 안 보인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