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성매매] 장자연 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은 자수하라

성매매엔 엘리트부터 조폭까지 ‘일치단결’ 대한민국
[기고] 장자연 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은 자수하라


출처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1-03-18 오전 11:32:3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318101142&section=03



고 장자연 씨의 편지가 가짜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어떻게 종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기에 국민 누구도 ‘거짓’이라는 발표에 속았다며 분노하지 않는다. 이는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 준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다 알고 있으나, ‘저들’만 아니라고 한다. ‘저들’은 피눈물로 쓴 유서에서 장자연 씨를 성적으로 학대한 이들을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단 한 명도 입건하지 않았다.


‘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소위 ‘대한민국 1%’의 이익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하수인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절대로 단순한 하수인들이 아니다. 이들 역시 여성을 자신들의 출세와 성공, 그리고 쾌락을 위해서 노리개로 삼을 수 있는 남성 성욕 중심 사회의 혜택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저들’ 중 일부이다. 정관계, 대기업, 언론계, 전문고소득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매우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강고한 ‘성권력 카르텔’은 유사한 성착취, 성매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부는 적극적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사태를 왜곡하며 다른 일부는 무서울 정도로 침묵하면서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반인륜적 행태를 통한 지배를 관철시켜 왔다.


성매매 앞에선 엘리트부터 조폭 양아치까지 ‘일치단결’


외국 유학 시절, 한국인들의 성매매 문제를 폭로하며 한국인들의 성산업 운영과 성매매 접대 문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은 물론,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운동을 하는 과정에 이르는 동안 넘쳐났던 제보, 고백, 폭로 그리고 관련자들이 얼떨결에 실수로 내뱉은 말들을 통해 알게 된 한국 남성들의 성매매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예전부터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기업의 무한적인 성접대 비용과 이를 흥청망청 쓰며 성매매 업소 출입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남성들의 온갖 추악한 모습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평소에 서로 헐뜯지 못해 안달이었던 한국 남성 사회가 최고 대학을 나와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에서부터 현지 마피아들에게 상납해 가며 반 범죄자로 살아가는 성매매 업소 조폭 양아치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남성 집단이 일치 단결하면서 성매매 업소 반대 운동에 저항하고 성매매 유흥 문화를 옹호하던 일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성매매 반대 운동 동료들에 대한 끈질기고도 집요한 음해와 악선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지만, 심지어 공식적으로는 ‘저들’에 반대해야하는 국가 공권력조차 저들과 한 편, 아니 저들의 한 부분이라는 끔찍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분노를 자아내게 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저들 카르텔의 집요하고도 철저한 본질 왜곡 선동이었다. ‘왜 한국 성매매 업소만 문제를 삼는가’라는 애국주의론에서 ‘여성들 스스로가 원한 일’이라는 자발성론, 그리고 ‘운동 주도자들의 정치적 출세를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운동의 순수성 등을 주장하는 등 본질을 흐리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현혹시키기 위한 선동이 난무했다. 과거 윤락행위방지법과 비교할 때, 선불금 부분이 조금 강조된 것 외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특별법의 허점을 파고들며 성매매와 성산업을 수호하려는 자들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공격에서도 우리는 성매매 그 자체가 아니라, 성매매특별법의 허점을 파고들며 본질을 왜곡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면서 성매매 구조를 온존시키려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저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아 왔다.


언론과 검찰, 조직폭력배의 강고한 카르텔


이번 장자연 편지로 촉발된 논란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한 놀라운 본질 호도, 사실 왜곡의 전형을 다시 한 번 보고 있다. 이번 편지들의 진위 논란이 문제의 본질인가? 만일 이번 편지가 위조로 판명된다면, 모든 것이 없는 일이 되는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로 판명난 장 자연의 ‘유서와 같은 글에서의 폭로’ 내용은 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는가? 왜 검찰과 경찰은 범죄 용의자들에 대해 스스로 수사를 포기하거나 오히려 자살을 방조한 자들을 옹호해 왔고 현재도 그러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매우 정확하게 왜 이렇게 집요할 정도로 국가 수사기관과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건지,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정치 모리배들은 침묵하고 있는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죄를 묻고 처벌하는 이들도 포함된 ‘저들’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실상 중에서 영화에도 나오고 코미디에서도 나오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인데, 마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은 없는 것처럼 여기는 몇 가지 주제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조직 폭력배와 성매매 여성 문제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알면서도 아닌 척, 모르는 척 하는 게 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기업과 공무원은 물론이고 바로 법을 어기는 이들을 처벌해야 할 검찰과 경찰들은 물론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바탕으로 어떤 면에서는 성접대와 성매매에 더 적극적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전국의 아주 일부 지역에서, 단 한 명의 사업가가 성접대를 제공한 인원만 해도 수 백 단위에 이르는 소위 ‘검찰 스폰서’ 사건에서도 우리는 무엇이 구려서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똑똑히 보았다. 말이 스폰서지 본질은 범죄자며 조직 폭력배와의 부패 사슬 문제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범죄자이고 마피아이며 어디까지가 법을 집행하는 이들인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누가 누구를 수사하고 형을 내린단 말인가?


이 쯤에서 우리 한 번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 거의 모든 남성들은 다 아는 이야기일 뿐이다. 좋은 대학 나와 사회 곳곳에서 한 자리씩 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기업인들은 성접대 없이는 거래가 성사가 잘 되지 않아 성매매 업소에서의 접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수주를 위한 바이어와의 접대가 아니더라도 회식 등을 위해 법인카드로 성매매 업소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큰 제약이 없다. 기업 뿐 아니라 언론인, 방송인, 각종 공무원, 교수, 정치인, 의사, 장교, 검찰 등등 직업을 막론하고 출세와 단순 유흥을 위해서 ‘저들’은 서로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성매매 업소에서 서로 접대하고 접대 받거나 그냥 노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 이들 중 소위 ‘대한민국 1%들’의 우정과 유흥은 더욱 고급스럽고 은밀하며 끈적끈적하다. 고 장자연 씨의 편지 내용 중에서 검사도 같이 배석했다는 내용이 있다. 편지는 위조됐다고 하지만 에서도 밝혀졌듯 이 누구나 다 아는 사실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그녀는 누구에게 그의 전 소속사 사장의 횡포로부터 구해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악마’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서로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보니, 이러한 현실을 폭로하는 것은 오히려 외국 언론이 되어버리는 해괴한 일도 있곤 한다. 한 예로 지난해 3월 외신기자간담회에서 한 외국인 기자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의 성접대 문화에 대해 질문했고, 다른 한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의 성접대 문화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당황한 언론은 한국에 흠집을 내기 위한 짓이며, 한국을 얕잡아 보는 무례한 태도라며 사태의 본질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한 바가 있었다. 물론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저들’의 방해공작으로 성매매 특별법이 누더기가 되어 한국 성매매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룸살롱, 단란주점 등을 통한 성매매는 이 법으로도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선효과’나 ‘강간 증가’ 등의 거짓 선동은 기본이고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며 자신들의 성매매 놀이터의 폐쇄에 강하게 저항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보수 언론과 기득권 집단들이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지저분한 논리들을 자주 접해 왔다. 이제는 제대로 먹히지도 않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자주 써먹는 게 바로 ‘좌빨’, ‘친북좌파’, ‘포퓰리즘’ 등의 단어이다. 그런데 보수 기득권 세력들이 그 어느 분야보다 성매매 산업을 축소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발걸음에 유독 더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대놓고 남성의 욕구를 위해, 사회의 하수구를 위해, 기업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성매매 여성이 필요하단다!!


바로 이러한 남성 성욕 중심적인 우리 사회에서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은 여성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노리개로 만들기 위해 약간의 떡고물을 던져 주면서 자신들의 대리자들과 하수인들까지 끌어들여 강고한 동맹 카르텔을 형성하여 여성을 분리 지배하면서 이들 중 상당수를 나락에 빠뜨리고 전방위적이고 총체적인 성산업과 성매매의 굴레로 몰아 넣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고 장자연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는 연예계만의 문제도 아니며, 유서에 언급된 더러운 인간 이하의 악마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진보 진영, 남성 지식인들, 여성주의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소위 이 땅의 민중들의 삶의 개선에 관심을 갖는다는 진보 진영 중 많은 이들이 성산업과 성매매 문제는 사회 변혁과는 별로 상관없는 범죄학의 영역이거나 단순한 도덕의 문제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또한 남성 활동가들 중 상당수는 이는 여성의 문제라며 자신과는 별도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특히 성매매의 경우 자신도 조금은 연루된 매우 불편하고 해결이 안 나는 문제 정도로 생각하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문제는 생물학적 여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한 사회의 차별, 불평등, 착취, 억압 등의 문제로 파악할 때 이는 얼마든지 진보 진영이 관심을 갖고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이 사회의 가장 거대한 집단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관념과 관성에 쩔어있는 진보 진영 인사들의 관심은 매우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여성주의자들 역시 언어 성폭력 같은 문제 등 매우 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유독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특유의 관념적 모습을 드러내며 ‘노동의 일종’으로 간주하면서 전통적인 ‘노동’ 영역에서의 정례화된 해법을 강변한다. 더 황당한 것은 조폭 등 중간 매개체의 존재에 대해서는 매우 무지하여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당사자’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성노동자(!)’들이 ‘저들’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여 ‘저들’과 ‘노동’ 관련 협상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성폭력의 조건만을 완화하자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일삼고 있다.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성매매 과정이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현실은 안중에도 없다. 서비스업에서의 서비스 구매자와 유사하게 생각하는지 성구매자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반면, 법과 국가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반응한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관념적 여성 지식인들에게 남은 것은 자족적인 언어의 급진성뿐이다. 왜 이들은 아무런 논평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남성 진보 활동가들, 노동조합 활동가들, 특히 이들 중 학자 등 진보 지식인 중 상당수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도와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성접대와 유흥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와 자본에 대한 신랄한 비판 활동에 비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도대체 진보가 집권하려고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의 가장 처절한 모순을 건드리지도 않는 것이 진보인가? 고전적인 노동과 계급 문제, 신사회 운동에서 강조하는 환경, 여성, 소수자, 그리고 세계화 문제나 복지 국가를 위한 정치 세력화 등과 같은 거시적인 몇몇 사안들만 건드리면 임무 완수인가? 파업과 철거에 동원되는 용역 깡패들에 고통 받으면서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은 아무도 생각지도 않는 사회 변혁이 무슨 사회 변혁인가? 진정한 여성 해방, 양성 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없다. 성매매를 성적 자유와 적극 혼동하며 성매매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진짜 변혁을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제 진보 진영이 나서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운동 의제를 무조건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진정한 양성 평등을 위한 싸움, 우리 사회 특유의 인권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진정 고통받는 민중을 위한 투쟁, 그리고 진정 고통을 주고 있는 이들에 대한 투쟁이 절실하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진짜 사회를 변혁하자! 가령, 기업들의 성접대 문화를 공식적으로 폐지 선언을 할 것을 요구하고, 그 성접대 비용의 지역 복지 기금으로의 공식적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 서빙을 제외하고 여성들이 접대부 역할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상의 성매매 업소이자 조직폭력배들과 룸펜들의 서식지인 룸살롱, 단란주점, 키스방 등 겸업형 업소들의 폐쇄와 업종 전환을 입법화하며, 성매매 업소와 러브 호텔들을 지방 자치체에서 지역 주민 복지 센터로 재건축하는 정책을 강제해야 한다.


성매매 산업은 또 하나의 성역인가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성관련 사건보도에서 언론이 철저하게 감추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매매 산업, 성매매 업소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과의 버려진 혼혈 아동인 코피노는 보도해도 그 나라에서 불법으로 현지 여성들을 한국 기업들과 관광객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노리개화 하고 있는 백 단위가 넘는 한국 성매매 업소에 대한 보도는 없다.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는 관광객들에 대한 보도는 있어도 이들이 성매매를 하는 장소인 한국인 성매매 업소에 대한 보도는 없다. 검사 스폰서 사건에서 부적절한 관계들을 지적할 뿐, 이들의 부패 고리가 형성되었던 성매매 업소,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노리개로 사용되었던 성매매 여성에 대한 보도는 없다. 자신들이 성을 사는 범죄자이자 여성을 노리개로 만든 가해자인 마당에 어떤 언론인이 문제의 본질을 보도하고, 어떤 정치인, 수사당국이 이를 시정할 수 있겠는가?


여러 자료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수는 적게는 30 여 만 명에서 많게는 150 여 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접대에 나온 것처럼 보였던 고 장자연 씨는 고통의 나날을 피눈물로 폭로한 글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장자연 씨와 유사한 상황에서, 아니 대부분 더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더 잔혹하게 노리개로 다루어지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은 고 장자연 씨의 편지를 둘러싼 논란과 수사 당국의 범죄자 감싸기 노력에 쓴웃음을 짓고 있다. 이제 물리적인 강제로 성매매를 강요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지 몰라도, 그리고 성매매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원하지도 않는 남성들에 의해 돈 때문에 일방적으로 노리개가 되는 성매매 과정 속에서 쉽사리 나오지 못 하는 수 십만 명의 장자연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 장자연 자살 사건의 본질은 성접대에 동원되는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타락한 사회 일부 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일반 가정집에서 나와 5분만 걸어도 금방 눈에 들어오는 성매매 업소들이 버젓이 영업하는 것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성매매 업소들이 불황에도 팽창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 매우 이중적인 얼굴을 한 기업들, 성매매 업소인 줄 뻔히 알면서도 허가를 내 주고 단속 정보를 알려 주는 우리의 국가 기구 공무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업소라는 작은 공간에 여성들을 돈으로 가두어 놓으면서 그들을 성시장에 가격을 매겨 공급하고, 더럽게도 주물럭대고 만지작거리다가 사서 욕심을 채우는 우리 남성 대부분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매매를 매개로 발생하는 수많은 부적절한 관계, 부패, 유착들이 맺어지는 성매매 업소의 폐쇄 없이는 어떠한 국격, 민생, 양성 평등, 복지 논의도 다 허상이다. 성매매 업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땅의 위정자들의 추악한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본질을 왜곡하는 논의의 해악을 이제는 일상적으로 폭로해야 할 때가 왔다. ‘저들’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양심적인 한 기자의 행동으로 ‘저들’은 공식적으로 ‘저들’ 내부에서 일부를 희생양으로 떨구어 내는 효과도 가져 왔다. 부모라는 최소한의 보호막도 없는 한 여성의 불쌍한 처지를 도리어 자신들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호기로 삼아 나약한 한 여성을 마구 짓밟고 유린한 ‘저들’이 지옥으로 가기 전에 석고대죄할 방법은 단 하나이다.


고 장자연 씨와 같이 있었던 ‘사실’들을 하루라도 빨리 자백하고, 진짜 장자연 유서에 등장하는 당사자 고위 언론인, 기업인들이 직접 나서서 온갖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는 사실상의 성매매 업소들에서의 실상을 폭로하고, 기업과 언론사, 국가 공무원들이 나서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자신들의 죄의 원천이 된 성접대와 성매매 유흥 문화를 타파할 것을 대중들 앞에서 공식 선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의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정재원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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