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30개월이상 쇠고기’ 밀어붙일 ‘각본’ 있었다 | ||
당근책 제시해 ‘촛불집회’ 이전의 요구 관철 노려 한국정부 “FTA와 쇠고기는 별개” 안이한 대응 전문가들 “수입조건 강화 위한 재협상 나서야” | ||
정은주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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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장 전면개방’ 전략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시키려는 미국의 시나리오가 드러남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여부와 별개로 ‘월령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 다시 상륙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 5월 정부가 약속한 대로 쇠고기 수입조건 강화를 위해 미국과의 재협상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 ‘신뢰 회복’ 구체적 조건 명시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경우 우리나라 정부를 압박해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으로 가는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미국 농무부는 2009년 8월 이미 ‘4가지 세부 전제조건’을 마련했다. 2008년 4월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털컥 합의했다가는 한국 정부가 또다시 국민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령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농림수산식품부의 장관 고시에는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민간 자율 규제가 명시돼 있는데, 신뢰 회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3년이나 5년간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으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한다거나, 미국 쪽은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일정 정도 도달하면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고 간주한다는 등의 조건이 그것이다. 그러면 한국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이 언제 이뤄질지 구체적 시점을 확정할 수 있다. ■ 미국 쇠고기 수입 급증 미국은 지난해부터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는 주장을 펴며 애초 합의대로 시장을 전면 개방하도록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신뢰 회복의 근거로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지난 몇년간 급증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2007년 6%에 그쳤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시장 점유율은 2008년 15%, 2009년 26%로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엔 32%까지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액이 5억1800만달러로 2009년보다 140%나 늘어났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기 전인 2003년과 비교해도 3분의 2 수준에 이른다. 미국육류수출협회 한국지사가 2009년 12월부터 ‘신뢰회복 캠페인’을 벌이고, 대형마트가 공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한 결과로 풀이된다. ■ 쇠고기 재협상해야 한국 시장 개방을 위해 미국 쪽이 온 힘을 기울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 정부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9년 8월 미국 농무부가 새로운 전제조건을 달아 쇠고기 전면 개방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해 10~12월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쇠고기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쇠고기 문제는 별개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미국의 요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미국 쪽과 협의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미국 쪽이 쇠고기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데 정부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며 “2008년 5월 약속한 재협상을 이제 이행할 때”라고 지적했다. 2008년 5월 정운천 당시 농식품부 장관은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일본, 대만, 중국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한국보다 조건이 더 유리하게 타결하면 재협상을 확실히 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일본은 20개월 미만, 대만은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고,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