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재앙’ 눈 감았나? 韓·美 ‘쇠고기 전면개방’ 추진
美 의회 문서 입수…전면 개방으로 가는 5가지 ‘꼼수’
출처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1-03-24 오후 2:50:1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324120818§ion=03&t1=n
구제역으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도 전에 외양간이 모두 불타는 더 큰 재앙이 발생할 것 같다.
지난 해 11월 말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대재앙으로 348만 마리 가량의 가축이 매몰됐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소의 4.5%, 돼지의 34%가 살처분을 당했다. 경기도의 경우 도내 사육돼지의 72%가 매몰됐으며, 축산농가의 81%가 피해를 입었다. 경기도 이천의 경우는 한우의 12.6%, 젖소의 25.1%, 돼지의 98.8%를 매몰했다.
이명박 정부는 구제역 대재난에도 불구하고 한 달 내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고, 올해 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의 국회 비준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적어도 우리 농민들에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시간은 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
쇠고기 전면 개방의 ’5가지 꼼수’
지난 3월 3일에 발표된 미국 의회조사국의 <한-미 쇠고기 분쟁 : 이슈와 현황> 보고서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위한 5가지 꼼수를 밝히고 있다.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은 민간 자율 방식에 의해 30개월 이하만 수입하는 잠정적 조치가 시행 중이다. 이것은 지난 2008년 촛불 집회의 성과다. 미국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30개월 이상 모든 연령의 쇠고기와 내장을 비롯한 모든 부위의 쇠고기를 전면적으로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한미 FTA 미 의회 비준을 요청하기에 앞서 이러한 요구를 한국 정부에 요청하지 않는 대신, 한국 정부가 이러한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가도록 ‘확실한 약속(secure commitments)’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확실한 약속’에 어떤 꼼수가 들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미국 농무부는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더 많이 소비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증가하고, 미국 내 광우병 전파를 차단하는 미국 정부의 조치가 효과적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다음 몇 가지 아이디어와 유인책을 통해 한국의 협상팀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고 밝혔다.
첫째,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전면 수입개방은 현행 ‘민간 자율 규제(voluntary arrangement)’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 한국 지사는 2009년 12월부터 ‘신뢰 회복 캠페인(Trust Campaign)’을 TV와 신문 광고를 통해 진행 중이다. 미국 육류수출협회는 이러한 광고를 통해 현행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에 명시된 대로 민간 자율적인 방식으로 2008년 4월 졸속적으로 체결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으로 복귀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둘째, 현행 자율 규제와 2008년 4월 합의한 완전한 시장 개방 사이의 잠정적 조치를 마련하여 한미 정부가 합의함으로써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전면 수입 개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보다 세부적인 4가지 잠정 조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 미래의 특정 기간(예를 들면, 3년, 5년, 10년 등) 동안 미국 내에서 추가적인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통해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을 요구한다.
(2) 일정 기간 동안 수입 검역 조건 위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나 ‘민간 자율적’ 규제를 시행하는 기간을 일정기간으로 합의하는 조건을 통해 쇠고기 전면수입 개방을 요구한다.
(3) 미국 쇠고기 수출업자들이 한국 수입 시장에서 일정 정도의 시장 점유율에 도달할 경우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된 것으로 간주하고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을 요구한다.
(4)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통제된 광우병 위험국(controlled risk)’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무시해도 될 만한 위험국(negligible risk)’이라는 ‘광우병 청정국’ 등급을 받을 경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을 요구한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이렇게 5가지 꼼수 중 하나를 한국 정부가 합의해줄 경우 2008년 4월 협정문 본문을 그대로 둔 채 ‘서한 교환(exchange of letters)’ 방식을 통해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미국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에서도 이와 같은 꼼수로 재미를 톡톡히 본 적이 있다.
한미 FTA 재협상 때 WTO 총장 제의받은 김종훈, 무슨 일 벌였나?
미 의회조사국은 지난 2월 28일자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잠재 고용 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한미 FTA 재협상을 전후로 미국의 일자리 전망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007년 보고서에서 한미 FTA 체결 후 미국 내 일자리 변화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았고, 한미경제인협회는 2009년 보고서에서 미국 내 일자리가 35만5000개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으며, 경제정책연구소(EPI)는 미국 내 일자리가 15만9000개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미국 측의 입장을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한 2010년 12월 한미 FTA 재협상이 끝나자 미국 내 한미 FTA 고용 효과 전망이 180도로 달라졌다. 올해 들어 백악관은 자동차 분야에서 한국의 양보로 미국 내 일자리가 7만 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미국 상원 통상소위원회는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15만9000개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 당시에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것을 비공식적으로 권유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의 중요한 국익이 걸린 한미 FTA 재협상 테이블에서 미국 백악관과 무역대표부(USTR)의 고위 관계자들이 이런 제안을 했던 사실을 수구보수 언론을 통해 자랑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도대체 김종훈 본부장이 재협상 테이블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김종훈 본부장은 지난 2007년에도 수전 슈왑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밀실에서 30개월 연령 제한과 사료금지조치 공표시점과 이행시점을 연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협상을 위한 여러 가지 꼼수들을 논의한 바 있다.
미 의회조사국에서 제시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위한 5가지 꼼수에 대해 외교통상부와 농식품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국민들과 국회에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한-EU FTA로 유럽산 쇠고기 수입 개방 임박
일본이나 중국 등은 한국보다 더 엄격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이나 캐나다가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통제국가 등급을 부여받은 것과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캐나다로부터 WTO에 제소당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캐나다가 한국을 WTO에 제소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졸속적으로 체결한 쇠고기 수입 협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EU FTA 협정문을 보면, 40%의 쇠고기 관세를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합의하여 유럽산 쇠고기 수입개방을 예고하고 있다. 만일 국제수역사무국으로부터 광우병 통제국가 등급을 받은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다면 유럽산 쇠고기 수입도 조만간 현실화될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무시해도 될 만한 광우병 위험국’ 등급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그리스, 벨기에, 헝가리.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폴란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슬로베니아, 체코, 스페인, 덴마크, 스위스, 에스토니아, 룩셈부르크,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통제된 광우병 위험국’ 등급을 받았다.
광우병 발생국이면서 광우병 통제국가 등급을 받은 미국과 캐나다에 쇠고기 수입을 개방한 상황에서 이들과 똑같은 등급을 받은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의 EU산 쇠고기 수입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광우병 발생국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임박
올해 2월 18일 캐나다 알버타 주에서 77개월(6.4년)령 젖소가 광우병에 걸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식품부는 3월 15일 가축방역협의회를 개최하여 “이번 건은 식품 및 사료공급 체인에 유입되지 않았고, 고령우에서 발생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설령 30개월 미만 캐나다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우리 소비자에 대한 공중위생상 위해가 없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그동안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WTO 제소까지 초래한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광우병 소만 고령우였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캐나다에서 발생한 18건의 광우병 사례 중에서 70개월 령 이상은 14건(78%)이나 되며, 가장 어린 소에서 발생한 사례가 50개월(4.2년) 령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캐나다에서 발생한 18건의 광우병 사례 중에서 1997년 사료규제조치 이후에 태어난 경우도 14건(78%)이나 된다. 특히 작년과 올해에 광우병에 걸린 소들은 모두 2004년 이후에 태어났다. 1997년 사료규제 조치가 시행된 후 7년이 지난 소에서도 광우병이 계속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U에서 2001년 1월부터 모든 농장동물에게 동물성 사료의 투여를 금지하는 미국과 캐나다보다 강력한 사료규제조치를 시행한 후에 태어난 소에서도 22건의 광우병 양성이 확인된 바 있다.
현재 캐나다는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도축소의 약 1.3%만을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광우병에 대한 정보조차도 대중들에게 투명하게 즉각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2010년 2월말 발생한 17번째 광우병 사례를 미국의 소규모 소 생산자협회(R-CALF USA)가 폭로하기 전까지 대중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2주간이나 광우병 발생사실을 은폐하였다.
정부, 국민과 약속한대로 미국과 쇠고기 재협상해야
미국은 지난 2003년 8억1500만 달러(24만6천 톤) 어치의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였으며,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 전체 수입 쇠고기 시장의 69% 점유했다. 2003년 12월 미국의 광우병 발생으로 쇠고기 수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자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쇠고기가 한국의 수입 쇠고기 시장을 장악했다. 2007년 한국의 수입 쇠고기 중 호주산과 뉴질랜드산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92%에 달했다. 그러다가 2006년 한미FTA 협상개시의 4대 선결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후,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의 졸속적인 전면 개방 정책으로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급격하게 높여가고 있다. 2007년 한국 쇠고기 수입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시장점유율은 6%, 2008년 15%,2009년 26%, 2010년 32%로 상승했다. 미국은 2010년 518만 달러 분량의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여 2003년과 비교할 때 2/3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쇠고기의 국내 자급률은 2003년 36.3%까지 하락한 이후 광우병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자 2005년 48.1%까지 상승하였다. 국내 자급률이 높아졌다는 얘기는 그만큼 식품안전 수준도 향상되고, 국내 농가의 경제적 상황도 호전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축산물 시장의 자급률은 지난 2008년 74.2%까지 올라갔다. 2010년 농업생산액 43조7200억 중에서 축산 생산액은 41%에 해당하는 17조 8700억에 달했다. 그만큼 농업에서 축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이다.
그런데 2010~2011 구제역 대재앙이 발생함에 따라 축산물 시장 자급률이 50%대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야말로 농업과 농민의 위기이며, 식품안전 수준이 크게 떨어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생매장 살처분 문제, 매몰지 침출수 문제 등 무수히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내 축산업이 몰락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재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유럽산 쇠고기의 수입개방, 한-FTA 및 한-EU FTA로 돼지고기 수입증가가 동시에 일어난다면 한국의 농업과 농민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는 길은 이명박 정부의 손에 달려 있으며, 국민과의 약속만 제대로 지키기만 하더라도 농업이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아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식품안전을 향상시킬 방안이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선진과 창조모임의 원내대표는 2008년 8월 19일 “향후 미국과 일본·대만 등 우리나라 주변국 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협상 결과가 2008.4.18에 체결된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협상 및 후속 추가협상 결과보다 수입국의 입장에서 개방의 폭이 축소될 경우, 미국과 주변국 간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과 동일 수준의 조건으로 정부가 한ㆍ미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재협상 하도록 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료들도 이와 유사한 약속을 국민들에게 하였다. 지금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된 정운천 당시 농식품부장관의 청문회 당시의 ‘확실한 약속’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2008년 5월 7일 쇠고기시장 전면 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김형오 위원 : 그리고 지금 대만ㆍ일본ㆍ중국하고 미국이 쇠고기협상 하고 있죠?
◯증인 : 정운천 하고 있습니다.
◯김형오 위원 : 이 나라들이 쇠고기협상 했는데 한국보다도 조건이 더 유리하다거나 새로운 게 있으면 한국도 다시 재협상이나 조건을 개정시키겠습니까?
◯증인 정운천 : 재협상을 확실히 요구하겠습니다.
일본은 현재까지 2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대만의 마잉주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내장, 분쇄육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만의 현행 수입 위생 조건은 한국보다 수입검역 조건이 더욱 엄격하다. 대만의 위생서 양지량 서장은 “한국은 5개 로트에서 위해식품이 발견되지 않으면 다시 수입을 재개하는데 대만은 15개 로트를 검사하여 합격해야 정상 검사절차 및 비율로 회복된다.”고 자랑한 바 있다.
서로 배치되는 두 개의 ‘확실한 약속’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위해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요구하는 ‘확실한 약속’이 하나요, 한국 정부가 일본ㆍ대만 등의 재협상 결과에 따라 재협상이나 조건을 개정시키겠다는 ‘확실한 약속’이 다른 하나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FTA 체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꼼수대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을 들어줄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과 동일한 조건으로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