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사고 위험도 평가 국내 논문들 살펴보니 ]
‘조기 사망’보다 ‘사후 암 사망’이 길고 큰 상처…음식물 섭취에 의한 장기간 내폭이 위험
증기발생기 파손때 방사능 유출 사망규모 커…가상 시뮬레이션이지만 참사 가능성 경각심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 21기가 가동 중입니다. 당연히 노심융해와 같은 중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작디작다 하더라도 ‘제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중대사고 때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전개의 시나리오와 인명피해 규모, 그리고 위험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들도 여러 전문가 그룹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입니다.
출처 : 한겨레 사이언스온
http://scienceon.hani.co.kr/archives/16779
최근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계기로 다시 출간된 히로세 다카시의 책 <원전을 멈춰라>(원제 ‘위험한 이야기’, 김원식 옮김)를 읽다보니, 거기에서 일본 과학기술청이 작성했다는 비밀보고서 ‘대형 원자로 사고의 이론적 가능성 및 공공 손해액에 관한 시산(試算)’의 일부 내용이 눈에 띄더군요(지은이는 이 보고서의 목적이 ‘대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전한다). 책을 읽으면서, 원전을 21기나 가동 중인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한 연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짙게 들었습니다.
한국 원전에서 노심손상의 ‘초기사고’ 유형 분석
냉각재 상실, 급수 완전상실 등 주목
물론 그 책을 읽기 전에 일본의 원전 참사를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면서 국내의 원전 중대사고 관련 보고서와 논문들을 찾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 1996년 우리 정부 과학기술처가 낸 <중대사고시 노심 용융물의 노내외 냉각 실증 실험 연구>(연구기관 한국원자력연구소) 1차년도 보고서였습니다. 물론 난해하고 전문적이며 기술적인 내용이라 다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앞의 개론 부분만을 읽었습니다.
이런 중대사고 대응 연구들은 ‘궁극적으로 중대사고의 방지 및 완화’를 위해 마땅히 있어야 하며, 오히려 그런 연구 활동이 없다면 그게 더 큰 문제일 겁니다. 사전 예측 연구들이 있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응해 더 안전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연구들은 그나마 위안을 줍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연구들은 중대사고라는 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제로 확률’의 범위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며, 또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지금 일본 후쿠시마 참사와 겹치면서 오싹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노심융해/노심용융’(metltdown)은 이론교과서에서 나오는 전문용어가 아니라, 이제 살아 있는 끔직한 경험의 언어가 됐습니다.
아무튼 이 보고서는 ‘연구개발의 목적과 필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말하듯이 “(이런) 실험 연구를 사고관리 전략 개발 및 중대사고 대비 안전설비의 개선에 활용“하기 위해 작성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중대사고 평가와 관리 방안 연구는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1979년)와 옛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참사(1986년) 이후에 강조돼 계속돼 왔습니다. 보고서에서 이런 연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중대사고는 기존의 설계 기준 사고를 넘어서서 노심의 손상을 일으켜 다량의 핵분열 생성물이 유출될 수 있는 사고로 발생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국의 TMI-2(스리마일 원전 2호기) 사고와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를 통하여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국내에서도 TMI 권고 사항을 중심으로 중대사고 대처 능력을 향상시켜왔으며, 중대사고 관련 분야의 연구를 위하여 원자력 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중대사고 국제 공동연구 프로그램(CSARP)에 참여함과 아울러 국내의 독자적인 중대사고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3쪽)
국내 원전에 대한 위험성 평가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의 다른 대목에서는 월성 원전의 중대사고 위험 평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사고’ 유형들이 제시되면서 중대사고는 좀 더 현실감 있는 위험으로 느껴집니다.
참고로 국내 원전인 영광 3&4 호기에서 중대사고로 이르는 확률이 높은 사고로는 소형파단 냉각재 상실사고, 증기발생기 2차측 급수 완전 상실사고, 전원 상실사고, 125V DC 모선 상실사고, 증기발생기 전열관 파손사고, 대형파단 냉각재 상실사고, 중형파단 냉각재 상실사고 등이 있다.(11쪽) (* 원문에는 사고 유형별로 퍼센트(%) 수치가 있으나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아 인용문에서는 제외했다. 이런 사고가 실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초기사고라는 의미로 제시된 것이다.- 글쓴이)
보고서의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사이언스온>에 쓴 글(원전 중대사고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정부보고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더 찾은 자료들 중에는 2007년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한국 표준형 원전의 노내 중대사고 관리 방안 상세 분석>도 있었습니다. 역시 “(보고서의) 결과는 한국 표준형 원전의 중대사고 관리 지침서의 노내 중대사고 관리 절차 개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밝힌 보고서에서는 한국 표준형 원전의 노심손상 확률이 높은 사고로 “소형 파단 냉각재 상실사고와 급수 완전상실 사고”를 지목했습니다. 보고서는 소형 파단 냉각재 상실사고(배관에 쪼개짐 현상이 나타나 냉각재가 누설되는 사고)와 급수 완전상실 사고를 전문가 연구보고서 수준으로 집중해 다루고 있습니다(이 보고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실에서 내려받아 볼 수 있다).
일본의 원전 중대사고 현장에서 방사성물질 확산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방사선 피해와 관련한 자료를 더 찾아봤습니다. 그러다가 중대사고 때 나타나는 방사선 피폭과 인명 피해에 관한 일종의 시뮬레이션 연구논문도 많지는 않지만 몇 편이 국내 학술지에 실려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국내 <방사선방어학회지>에 실린 논문들인데, 1994년엔 ‘원전 중대사고시 피폭경로 및 핵종의 방사선 피폭에 대한 상대적 중요도 해석’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으며, 2003년엔 ‘한국표준형 원전의 중대사고시 MACCS 코드를 이용한 위험성 평가’라는 제목의 논문, 2004년엔 ‘가압 경수로 및 가압중수로형 원자력 발전소의 중대사고 리스크 비교 평가’라는 논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논문들에서 중대사고는 현실 상황이 아니라 최악의 가상 상황으로 다뤄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가상의 상황을 실제 상황과 혼동해 지나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혹시라도 이 글이 독자들한테 지나친 공포를 확산시키지 않을까 해서 글을 써야 하는지 며칠 고민을 했으며 몇 분의 도움말도 들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현실의 잠재적 위험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에, 또한 이런 연구가 실제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기에, 최대한 절제된 언어로 이런 논문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논문들은 현재 중대사고의 참사를 겪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도 논문에서 다루는 중대사고에서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을 경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의 아래 부분에서는 이 논문 세 편을 정리했습니다.
‘중대사고 불 껐다고 참사가 끝나진 않는다’
조기사망보다 사후 암 사망 규모 훨씬 커
논문 하나는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가상의 중대사고(노심융용)가 발생할 때 원자로 바깥 환경에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을 ‘확률론적 사고영향 분석 방법’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런 평가 연구는 중대사고 때에 어떤 요인이 더 심각하게 작용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대책을 개발하고자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연구결과는 현실화하지 않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며, 제한된 평가분석 방법을 썼기 때문에, 실제의 전개과정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피해 규모는 더 클 수도 더 작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여러 한계를 지니더라도 이런 연구결과는 원전 중대사고에서 어떤 요인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지, 또 무엇을 예측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 나름의 가치를 지닙니다.
한양대 연구팀(황석원·재무성)은 2003년 <방사선방어학회지>에 낸 논문(‘한국표준형 원전의 중대사고시 MACCS 코드를 이용한 위험성 평가’)에서 중대사고와 관련한 19가지 사고 유형의 시나리오를 대상으로 방사성물질의 △방출 고도, △열 함량, △방출 기간이라는 세 변수에 따라 원전 부근에서 얼마의 인명 피해가 초래되는지 그 위험성을 평가했습니다. 연구팀은 울진 3·4호기를 시험적인 분석 대상(참고원전)으로 삼았습니다. 또 원전 중대사고 때 방출될 수 있는 60개 방사성 동위원소를 9개의 주요 핵종 그룹으로 분류해 입력값으로 사용했으며, 원전 반경 80km까지 거리에 따른 영향을 평가했습니다. 주민 95%는 사고 발생 이후 소개시키고 나머지 5%는 소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으로 가정했으며, 주민 소개 속도는 1초당 1.8m의 값을 사용했습니다.
참고원전의 중대사고 위험성을 평가를 해보니, 방사성물질이 방출되는 높이(방출 고도)가 낮을수록 인명 피해 가능성이 높아 지표 수준 방출 때에는 0.6~0.7명이 골수·폐·위장계 손상에서 비롯하는 ‘조기사망’에 이르며 방출 고도가 60m일 때엔 조기사망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백혈병·흉부암·골수암·폐암·갑상선암·위암 등으로 숨지는 암 사망은 방출 고도의 차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13~14명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래 왼쪽 위아래에 관련 그래프가 있습니다. (인명피해 규모는 원전 주변의 인구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시민단체 에너지정의행동이 통계청 자료(2005년 인구센서스 기준)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국내 4곳의 원전단지 반경 30㎞ 안에는 △고리(부산시 기장군) 322만명 △월성(경북 경주시) 109만명 △영광(전남 영광) 14만명 △울진(경북 울진) 6만명으로 울진이 가장 적다 -<한겨레> 3월28일치 1면 참조).
방사성물질이 열을 함유하면 ‘열 부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열 함량이 높을수록 오염물 상승 현상(plume rise)도 함께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방사성물질이 이동·확산하는 과정 초기에 오염물이 높게 날아올라 발전소에서 16km 이상까지는 방사성물질의 농도가 낮은 지역이 발생하고 그 이후의 거리에서 플륨 상승이 멈추고 대기 난류에 의해 방사성물질이 지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나타납니다. 이로 인해 방사성물질의 열 함량이 0MW에서 60MW로 높어질수록 조기 사망은 크게 줄어들며, 암 사망도 9~10명 수준에서 그 아래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의 오른쪽 위아래 그림에 관련 그래프가 있습니다.
방출 기간의 변화에 따른 조기 사망과 암 사망의 피해 예측에서는, 조기 사망의 경우에 방출 지속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소하며 암 사망은 초기에는 증가하다가 다시 감소하는 것으로 논문에 나타났습니다. 방사성물질이 더 오랜 동안 방출되는데도 인명피해가 도리어 더 적어지는 것은, 이 논문에서 일정한 양의 방사성물질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방출되거나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방출되는 것으로 보아 위험성 평가를 했기 때문이죠. 오랜 시간에 걸쳐 더 많은 방사성물질이 방출되면 이 논문의 경우와는 다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아래에 관련 그래프가 있습니다.
경수로형 원전이 중수로형보다 위험 더 커
방사능 격납 실패 ‘최악’때 사망 수십, 수백명 규모
다른 연구에서는 한국표준형인 경수로형 원전과 이와 다른 중수로형 원전에서 방사능이 대량으로 방출되는 최악의 중대사고가 터진다고 가정했을 때에 발생할 수 있는 인명피해 규모가 추산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팀(정종태, 김태운 등)은 2004년 방사선방어학회 학회지에 낸 논문(`가압 경수로 및 가압중수로형 원자력 발전소의 중대사고 리스크 비교 평가’)에서 앞의 논문에서 쓴 평가와 비슷한 방법을 쓰고 복잡한 여러 조건들을 설정한 뒤 분석해보니 원전 중대사고 때에 가압 경수로형 원전(PWR, 1000MWe급) 사고에서 나타나는 피해가 가압 중수로형(PHWR, 600MWe급 CANDU형)일 때보다 훨씬 크다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증기발생기 세관파손이라는 가상의 중대사고 때에 중수로형 원전이 경수로형 원전에 비해 방출하는 방사성물질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반경 80km의 인구 분포를 대상으로 반경 10마일 밖으로 주민 소개가 이뤄졌다고 가정하는 이런 가상의 방사성물질 대량 방출 사고에서는 인명 피해는 아래 표에 정리된 것처럼 경수로형일 때 조기사망이 26.5~49.9명으로, 암 사망이 무려 286~528명 규모로 나타나는 것으로 결과가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규모는 중수로형 원전의 가상 중대사고 때와 비교해 월등히 많은 것이며, 특히 조기사망의 규모는 거의 10배에 가깝게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월성 중수로형 원전(80km 이내 685만명 거주)과 울진 경수로 원전(50만명 거주)을 참조원전으로 삼아 분석했다).
연구팀은 “조기 사망이나 암 사망 모두 인구밀도가 높은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이 인구밀도가 낮은 경수로형 원전인 울진에 비해 적은 값을 나타낸다”며 “특히 월성의 경우, 반경 80km 이내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가 울진 주변 인구의 10배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주변 주민의 건강영향에 미치는 리스크가 적게 나타나는데 이는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의 양 차이 때문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중대사고로 인한 피해의 절대 규모는 크지만 여전히 원전의 리스크는 다른 에너지원 발전소들의 리스크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연구팀은 강조했습니다. 연구팀은 “국내 경수로형 및 중수로형 원전의 가상 중대사고로 인한 리스크를 스위스 PSI 연구소에서 수행한 연구결과인 타 발전원인 석탄, 오일, 천연가스, 수력의 경우와 비교하면 모두 현저히 낮은 값을 나타낸다”며 “따라서,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가상 중대사고로 인해 주변 주민에게 미치는 리스크는 다른 발전원에 비해서 현저히 낮은 값을 나타내기 때문에 매우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원전 중대사고만을 볼 게 아니라 여러 다른 비교대상을 고려해 리스크를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한번의 중대사고가 몰고온 참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요즘에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지는 모르겠습니다.
연구팀은 “(경수로형과 중수로형) 두 발전소 모두 최대 리스크를 보이는 방사선원 방출군의 대표적인 초기사건은 증기발생기 세관파손 사고로 나타났다”며 “따라서, 경수로형 및 중수로형 발전소 모두 사고로 인한 주변 주민 보호를 위해서는 증기발생기 세관파손 사고의 발생빈도와 이로 인한 대기 중으로의 방사성물질의 방출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단기피폭은 요오드, 장기피폭은 세슘이 큰 영향
장기적으론 음식물 섭취 뒤 내부피폭 위험
또다른 연구에서는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났을 때에 사고지역의 부근에서 얼마만한 피폭 피해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이 연구도 복잡한 실제 상황에서 일부 조건을 단순화한 뒤에 그런 제한된 조건들에서 어떤 결과들이 전개되는지 살펴보는 데 연구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만일에 일어날 수 있는 원전 중대사고 때에 어떻게 대처할지 보여주는 참고 자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조 자료 이상으로 실제 상황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하겠지요.
한국원자력연구소와 성균관대 연구팀(황원태·김병우 등)은 지난 1994년 <방사선방어학회지>에 낸 논문(‘원전 중대사고시 피폭경로 및 핵종의 방사선 피폭에 대한 상대적 중요도 해석’)에서 중대사고 때 대기로 방출된 방사성물질에 의해 사고현장 부근에 거주하는 피폭자가 일생 동안 받게 될 피폭선량과 피폭 경로를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무엇보다 오염된 음식물 섭취에 의한 영향이 가장 컸으며, 방사성 핵종 중에서는 세슘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여러 조건들을 사전에 설정해두고서 피폭 위험의 전개과정과 결과를 평가했습니다. 먼저 피폭의 경로를 △방사능구름에 의한 외부 피폭, △지표에 참적된 방사성물질에 의한 외부 피폭, △호흡에 의한 내부피폭, △오염된 음식물 섭취에 의한 내부피폭 등 4가지로 분류했으며, 경수로형 원전에서 일어나는 중대사고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중대사고의 유형은 노심용융이며 과압력으로 격납용기가 파손되어 방사성물질이 1.5시간 쌓이다가 2시간 동안 높이 10m에서 방출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밖에도 여러 복잡한 가정들이 입력값에 반영되어 사용됐습니다. 피폭자는 일생 동안 같은 지역에 거주하며 같은 생활습관을 갖는 것으로 설정됐습니다. 외부피폭의 영향이 공간 상황에 따라 다른 점을 감안해, 도심과 비도심에 다른 값을 주고, 또한 지상 주택이나 창문 없는 지하실 같은 공간 형태에도 다른 보정 값을 매겼습니다.
오염된 음식물의 영향은 논문이 작성된 1994년 당시에 우리나라 환경을 고려해 이미 개발돼 있던 ‘동적 섭식경로모델(KORFOOD)’라는 모형을 사용해 방사성물질의 침적(가라앉아 쌓임) 시기와 침적 뒤 시간에 따른 음식물 안 방사성물질의 농도 변화를 고려했겠지요.
이렇게 해서 방사성물질의 방출점에서 80km까지 피폭선량을 평가해보니, 피폭 경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오염된 음식물 섭취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어 지표에 침적된 방사성물질에 의한 외부피폭, 호흡에 의한 내부피폭, 방사능구름에 의한 외부피폭 순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옆의 그래프를 보면 음식물 섭취에 의한 장기간의 피폭 영향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핵종별로 보면 방사능구름에 의한 외부피폭과 호흡에 의한 내부피폭의 경우에는 방사성 요오드가, 침적된 방사성물질에 의한 외부피폭의 경우에는 세슘의 영향이 가장 켰으며, 오염된 음식물 섭취에 의한 내부피폭의 경우에는 여름철 침적 때엔 세슘 137이, 겨울철 침적 때엔 스트론튬 90이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국에 사고 초기에 나타나는 단기간 피폭 때에는 대기중 방사성물질의 농도, 침적 속도 등이 피폭선량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장기적 피폭 때에는 핵종의 반감기가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오염된 음식물 섭취에 의한 내부피폭의 영향이 가장 높은 것으로 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현장이 수습국면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번 참사의 영향은 원전 사고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매우 긴 기간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후쿠시마 참사는 원자로와 핵연료가 식는다 해도 곧바로 끝나지 않은 채 기나긴 고통을 안겨줄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또한 이런 여러 논문들에서 제시되는 계량적인 숫자들이 참담한 비극으로 현실화하고 있기에, 죽어 있던 그 숫자들은 이제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