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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 “우리는 패밀리” 뿌리깊은 ‘원자력 마피아’

“우리는 패밀리” 뿌리깊은 ‘원자력 마피아’
시사INLive | 변진경 기자 | 입력 2011.04.12 11:03


우리나라에는 원자력 관련 기구가 꽤 많다. 국무총리실 산하 원자력위원회부터 시작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수력원자력…. 이렇게 정부기관에만 원자력을 연구·운용하거나 규제하는 기구가 10개가 넘는다. 또한 학계에서는 한국원자력학회, 산업계에서는 한국원자력산업회 같은 민간단체들이 조직되어 원자력 연구와 산업을 논의한다(위 표 참조).


그게 그것 같아도 이름과 출범 취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기구들의 역할이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어느 곳은 원자력 학문을 ‘연구’하고, 어떤 곳은 원자력 산업을 ‘진흥’하고, 또 어디에서는 원자력발전의 위험을 ‘규제’하기로 되어 있다. 같은 정부기관 내에서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전 기술을 구축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원전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식으로 각각의 업무를 쪼개놓았다. 인간에게 한없이 이로운 존재인 것 같다가도, 한번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이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는 원자력이 지닌 양면성 때문이다.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하자 이 숱한 원자력 관련 기구들에 속한 ‘전문가’들이 의견을 표명했다. 진흥기구이든 규제기구이든, 공공기관이든 민간 연구단체이든 내용은 엇비슷했다. 사고 직후에는 “격납 용기가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라고 말했고, 격납 용기마저 손상돼 방사능 물질이 다량 유출된 뒤에는 “바람과 해류 방향 덕에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방사성 요오드·세슘 등이 검출되었을 때는 “극히 미미한 양으로 안전하다”라고 말하고,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이번에는 “우리 원전은 일본과 다르다.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여러 권위 있는 기관의 조언대로 안심하려는 국민에게, 어떤 이들은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은 원전 산업에 이해관계가 걸린 전문가들의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환경 단체들이다. 이들은 여러 권위 기관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을 일명 ‘원자력 마피아’라 부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이니 통제니 여러 기구로 나뉘어 있어도, 결국 그곳에 속한 인사들은 모두 맹목적으로 원자력 산업 부흥만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한통속이라는 뜻에서다.



공개 석상에서 “우리는 원자력 패밀리”


1980년대부터 반핵운동을 벌여온 환경운동연합 김혜정 일본 원전사고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교과부 원자력안전위원으로 활동하는 한 교수가 1991년 원전 산업계 인사들이 모인 한 토론회 자리에서 ‘우리는 원자력 패밀리니까 안심하고 원전 사업을 진행하라’고 말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한통속이라는 주장은 진실일까. < 시사IN > 이 원자력 관련 기구에 속한 주요 인사들의 이력을 모아 분석해보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오른쪽 표 참조). 어디에 속해 있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들은 아주 가까운 관계였다.


먼저 우리나라 원자력 정책 최고 결정 기구라 할 수 있는 ‘원자력위원회’를 보자. 원자력위원회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지식경제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을, 전문가 7명이 민간 위원을 맡는다. 현재 민간 위원 대부분은 지난 수십 년간 국내 원전 산업 진흥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한영성 위원(현 한국기술사회 회장)은 국내 원전 건설이 활발히 추진된 1970~1990년대 과학기술처(현 교과부) 원자력실에 근무했고, 이건재·박군철·김종경 위원은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형원자로연구센터 소장·한국수력원자력 사외이사·한국원자력산업회의 이사 등을 맡아왔다.


교과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그 아래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는 원자력에 관한 여러 사항 가운데에서도 특히 ‘안전 규제’의 중요성을 감안해 1996년 신설된 기구이다. 특히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규제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발전용 원자로 및 관계 시설의 운용에 관계되는 자’는 위원으로 위촉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 대다수가 ‘발전용 원자로’를 대단히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장순흥 위원(카이스트 교수)은 언론사 칼럼 등을 통해 “이번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을 발판으로 더 많은 곳에 더 많은 원전을 수출하자”라고 주장했고, 김숭평 위원(조선대 교수)도 위도방폐장 처리장 지정·고리 1호기 수명 연장 가동 등에 찬성하는 기고문을 언론에 실어왔다. 특히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의 서균렬 위원(서울대 교수)은 원전 운영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원전 건설업체인 두산중공업 등을 고객 업체로 한 원전 컨설팅 업체 ‘필로소피아’ 대표를 맡고 있다.


각 위원회 인사 가운데에는 원전 운영기관인 한수원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발주받아 수행한 사람도 많다. 한수원이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에 제출한 ’2005~2010년 연구용역 세부 내역’에 따르면 원자력위원회의 이건재·박군철 위원,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의 김숭평·장창희 위원이 한수원에서 각각 연구비 6900만~2억9500만원씩을 받고 연구용역을 수행한 바 있다.


원자력 ‘진흥’과 ‘규제’ 업무를 나눠 맡아 서로 견제 관계일 것 같은 공공기관끼리도, 알고 보면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은 칸막이 없이 ‘돌고 돈다’. 2006년 7월 원자력통제기술원의 새 이사장 선임 문제를 두고 파문이 인 적이 있다. 원자력통제기술원은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무단 우라늄 농축실험 사건’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물질 안전조치에 대한 권고에 따라 만들어진 원자력 통제 전문기관인데, 정부가 이 기관의 이사장으로 ‘우라늄 농축 사건’의 책임 당사자인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임명한 것이다. 당시 환경단체는 “원자력 마피아의 실체를 확인시켜주는 사례이다”라며 크게 반발했다.


대표적인 원자력 안전 담당 기구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윤철호 원장은 ‘세계 원자력 진출기반 구축’과 ‘원자력의 산업적 이용 촉진’이 각각 단체 목표인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과 한국원자력산업회의의 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비상임이사인 강창순 교수도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장상구 원장 역시 한국원자력협력재단의 이사이고, 원자력위원회 위원직을 맡고 있는 박군철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비상임이사는 한수원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회전문 인사’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전 건설사들, 한수원 간부 모셔오기도

‘수평 이동’도 있지만 ‘수직 이동’도 있다. 원전 건설사들이 입찰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원청업체 한수원에서 고위 간부들을 모셔오는 것이다. 원전을 운영하는 주체는 한수원이지만, 원전 시설을 짓는 주체는 민간 건설업체들이다. 한 호기당 들어가는 비용이 수조원대에 이르는 원전 건설사업을 따내기 위해 국내 건설사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한수원은 건설사들이 설계 원안대로 원전을 안전하게 시공하기 위해 관리·감독할 책임을 지니기 때문에 그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둬야 하지만, 전직 간부들은 종종 ‘갑’에서 ‘을’로 옮겨간다.

2005년 두산중공업은 장경식 전 한수원 정비기획처장을 회사 전무로 영입했다. 현대산업개발도 지난해 4월 원전사업 신규 진입을 목표로 사장 직속의 플랜트사업실을 신설하고, 전태주 전 한수원 고리원전 본부장을 실장으로 데려왔다. 현대건설 역시 한수원 고리원전 본부장 출신인 김선창씨를 국내플랜트사업본부 고문으로 영입한 바 있다. 김씨는 한국원자력학회 부회장·감사,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원자력계 원로’이다.





















학계 원로부터 건설사 간부까지, 원자력계의 웬만한 인사들은 모두 두 사랑방으로 모인다. 바로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원자력산업회의이다. 전자는 학술단체이고 후자는 산업단체이지만, 임원진 면면을 보면 거의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원자력학회 회장은 윤철호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수석부회장은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 부회장은 박현택 한수원 발전본부장, 감사는 김하방 두산중공업 부사장으로 학계·공공기관·건설사 인사들이 고루 임원진 자리를 나누어 가졌다. 2008년 원전 건설사인 두산중공업은 학회 발전 특별기금 3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역시 김쌍수 회장(한국전력공사 사장) 아래 김종신 한수원 사장, 심규상 두산중공업 사장,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과 함께 한국원자력학회장을 지낸 강창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나란히 부회장을 맡고 있다. 산업회의에서 이사직을 맡은 조남진·김종경 교수도 한국원자력학회에서 각각 회장과 편집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학회’와 ‘산업회의’를 굳이 나누기가 무색할 정도이다.

꽁꽁 닫힌 채 안에서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리나라 원자력 전문가 집단의 폐쇄성은 비단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상현 교수(경북대·행정학)는 “모든 과학기술 연구개발 기금을 원자력원에서 나눠주던 1960년대부터 원자력 산업자·과학기술자·정치인·관료가 강한 연대체를 꾸리는 이른바 ‘원자력 레짐’의 뿌리가 다져져 왔다”라고 말했다.

독립적인 인사 포함시켜야 변화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정부와 한나라당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원자력 안전 분야 업무를 합의제 행정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로 이관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한 부처 안에서 원자력 규제와 진흥을 한꺼번에 담당해온 것은 규제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진 교수는 “아무리 행정조직을 개편한들 시민·환경 단체 활동가나 일반인, 사회학자 등 ‘원자력계’에서 독립적인 인사를 포함하지 않은 채 기존 전문가들로 꾸린다면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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