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후응급피임약’, 의약품 재분류 논의에 대한 입장
오는 19일(화)에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 4차 회의가 열린다. 최근 이 위원회에서는 17개의 약품을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에서 약국 판매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 결정을 진행 중이며 이 약품 중 사후응급피임약인 ‘노레보정’도 포함되어 있다.
종교계에서는 성문란을 조장하고 생명존중 풍토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환 반대를 주장하고 있고, 일부 의사계에서는 과다 복용에 의한 부작용과 오남용의 이유로 사후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관련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사후응급피임약과 관련해서는 윤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결정을 보류시키고 있다.
병원 처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야간이나 휴일, 연휴에 구입이 불가능한 현재의 사후응급피임약 의 구매 접근성은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고, ‘응급성’이라는 약의 기본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후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이 하나의 방법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 정작 이 약을 복용하는 당사자인 여성의 건강권과 사회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피임문화는 성차별적이다. 피임은 성관계에 참여하는 여성과 남성의 공동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피임 실천률은 여전히 낮고, 피임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발언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는 일부 의사단체에서는 가득이나 사전 피임 실천률이 낮은데 사후응급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우리사회의 피임문화가 더욱 왜곡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피임문화 때문에 여성들의 정당한 피임 선택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후응급피임약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논의에는 이 약을 사용하게 되는 여성들의 피임 과정의 어려움, 성적의사소통의 문화, 구조 등 여성의 경험적 맥락에서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 논의는 응급사후피임약의 ‘접근성’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여성의 건강권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보건서비스, 보호 장치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각종 이해관계와 경제적 논리의 경합 속에서 등장하고 있어 매우 유감이다.
또한 ‘국민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이 넘치는 사회’를 비전으로 삼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응급’상황에 대한 보호 장치와 정책개발 없이 판단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가 원치 않는 임신을 포함한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이되 복용 방법, 부작용 등의 충분한 고지를 통해 여성건강권을 높이기 위한 보호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11년 7월 18일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