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약국외판매 안전장치 무용지물?
약국외판매 허용국, 판매규제 있어도 불허국보다 약화사고 잦아 일반의약품의 약국외판매가 과연 국민의 안전을 얼마나 담보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약국외판매를 허용한 해외 국가들은 판매자·판매처 등을 규제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도 판매를 불허하는 국가들보다 부작용 사고가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약 부작용사고, 허가국이 많아 = 세계보건기구(WHO) 약물감시프로그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 중 비처방의약품의 약국외판매를 불허한 나라의 인구 1000명당 연간 약화사고(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고) 는 평균 0.17건인데 반해 허용국가는 평균 0.38건으로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나라별로는 불허국 중 가장 사고가 적은 곳이 그리스로 0.04건, 가장 많은 곳이 프랑스로 0.52건을 기록했다. 허가국 중 가장 적은 곳은 헝가리로 0.01건, 많은 곳이 미국으로 0.92건을 기록했다. 미국 다음으로는 뉴질랜드(0.67건), 아일랜드·호주(0.51건) 순이었다. 문제는 약국외판매를 허가한 나라들이 판매처, 제품, 대상 등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음에도 약화사고가 불허 국가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최근 복지부가 △판매자 등록 △판매자 교육 △구매연령 제한 등을 골자로 내놓은 약사법 개정안도 이와 유사하다. ◆판매점·연령제한 시행했지만 … = 유럽대중약협회(AESGP)에 따르면 네덜란드, 노르웨이, 헝가리 등에서는 비처방의약품을 모든 소매점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정 요건을 갖추고 당국에 등록함으로써 관리감독을 받는 등록판매처에 한해 취급·판매가 가능하다. 노르웨이(0.26건)는 등록판매처가 약국이 관할하는 매장과 일반 매장으로 구분되지만 모두 교육받은 직원을 통해서만 건네받도록 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0.36건)은 의약품을 계산대 뒤편에 보관토록 하고 있으며 18세 이하에는 판매가 금지돼 있다. 이탈리아(0.12건)와 포르투갈(0.13건)은 독특한 경우다. 이탈리아는 2006년부터 약국외 판매를 허용하고 있지만 약사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다. 포르투갈 역시 2005년부터 약국외판매가 허용됐지만 약사나 전문가가 있는 매장에 한해서 16세 이상만을 상대로 가능하다. 일본(0.21건)은 비처방의약품 중 위험도가 매우 높은 일부 약을 제외한 대부분의 약을 약사 또는 등록판매자가 있는 약국외 점포에서 팔 수 있다. ◆“관리감독 제대로 될지 의문” = 현재 복지부는 개정안에서 판매장소와 판매자의 선정기준과 판매단위, 1회 판매량 등을 적시하고 사후조치 관리방안도 마련했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른 허가국가들의 선례를 보면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애초 취지대로 현실에서 관리감독이 이뤄질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리병도 팀장은 “식약청 등 의약품 안전당국은 해마다 인력과 예산부족을 이야기하며 안전성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해왔다”며 “그러나 2만개의 약국, 2만개 이상의 병의원을 포함해 제약회사, 도매업체 등 현재 관리해야할 곳도 벅찬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더 많은 의약품 취급업소가 늘어나는데 과연 제대로 된 관리가 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