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美쇠고기 물밑협상 하면서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2008년 총선‧재보선 우려해 협상안 서명 및 수입재개 연기 요청
출처 : 프레시안 2011-09-06 오후 12:28:50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906114123§ion=05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미국 측과 만나 ‘쇠고기 시장이 조속히 개방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밝혀진데 이어(☞관련기사) 취임 직후부터 미국과 ‘비공식’ 협상을 진행했을 정황이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서울발 외교전문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해 4월 총선 전까지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쇠고기 관련 어떤 협상에도 서명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당시 국회 부의장은 협상 타결 이후인 5월 주한 미 대사를 만나 수입 재개를 한달 뒤 있을 재보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취임을 나흘 앞둔 2월 21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 대사는 본국에 보낸 3급비밀(CONFIDENTIAL) 전문에서 “인수위는 새로운 쇠고기 협상의 공식 조인은 4월 9일 총선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면서 “우리 측(미국)은 3월 한 달 동안 비공식적인 의견 교환을 제안했다”고 보고했다. 그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어떤 ‘사전 협상’도 없었다고 설명했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또 “이 당선자와 그의 팀(인수위)은 쇠고기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4월 17일 방미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측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며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인 민감성을 고려할 때 총선 전까지는 우리측과의 어떤 협상에도 사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고 적었다.
또 3월 25일자의 2급비밀(SECRET) 전문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가 한미 FTA에 대한 (미국) 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 이전에 쇠고기 시장 재개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한국 고위 정책결정자들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들이 ‘총선 전까지는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에서 버시바우는 “한국의 협상 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쇠고기) 협상 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이 협상은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이며 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쇠고기 협상 타결안은 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을 방문한 4월 18일 발표됐다.
촛불시위 경험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응은?
그러나 쇠고기 협상 타결안에 대한 후폭풍은 거셌다. 촛불시위가 몰아쳤다. 그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응 및 솔직한 평가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에 의해 밝혀졌다.
이상득 부의장은 5월 버시바우 대사를 만나 6월4일 재보선 전까지 쇠고기 수입 재개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2008년 5월 29일자 전문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이 만남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부의장은 “6월 4일 전 수입이 재개되면 이는 선거의 주된 이슈가 될 것이며 한나라당 후보들의 패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시바우는 “이 부의장은 선거 때까지 쇠고기 수입재개가 연기되지 않으면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버시바우가 선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자 이 부의장은 양국 정부 간에 신뢰가 있다면 현실적인 정치적 우려로 인한 소폭 연기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석한 전여옥 의원은 이 부의장의 의견에 반대하며 원래 일정대로 수입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이에 대해 자신도 원래는 ‘가능한 빨리 쇠고기 시장을 개방해 국민들이 미국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만 선거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쇠고기 문제로 인해 반미 정서가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가게에 들어오기만 하면’ 쇠고기 반대 시위는 진정될 것이라며 여전히 자신감을 보였다.
또 그는 “진보적인, 반미‧친북 성향의 지도자들이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와 언론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언론의 편견과 잘 조직된 좌파 그룹들을 넘어서 쇠고기 문제를 푸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86세대’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은 미국이 북한보다 더 위협적인 적이라고 여겼지만 현재 시위에 나서고 있는 젊은이들은 이와는 다른 이유로 참여하고 있으며 실업 문제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한국에) 민주주의가 너무 많다”며 불평했다. 박 의원은 6월 18일 제임스 신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 참석자가 한국 의원들도 미국처럼 지역구민들의 청원이나 민원을 받느냐고 묻자 박 의원은 어마어마한 이메일을 매일 받고 있지만 정책 결정을 할 때에는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30%, 전체 국민들의 여론을 70% 반영한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촛불시위에 대해 “도시의 게릴라”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시위에 동력을 공급했으며 정부로 하여금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이나 인터넷방송 사이트 ‘아프리카’ 등의 실명을 언급하며 이런 사이트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지만 미국 쇠고기 건에 대해서 공유되는 것은 ‘루머’라고 말했다.
김성환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6월 26일 버시바우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촛불시위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연기된 것은 유감이라며 “(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수석은 당시에도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해 현재 수가 많이 줄어들어 1만 명에도 크게 못 미치지만 이들은 핵심 그룹이며 대다수가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위는 더 격렬해지고 폭력적으로 돼가고 있다면서 김 수석은 마침 6.29와 겹치는 다음 주말에 대규모의 시위가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도 한국만큼 FTA 원했건만…
한편 2009년 9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는 FTA가 한국을 미국에 묶어놓을 결정적인 요소로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스 대사는 방한을 닷새 앞둔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국을 미국에 묶어두는 상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버시바우 대사도 2006년 6월 청와대 핵심 참모들을 만나 한미 FTA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시바우 대사는 다른 전문에서 한미 FTA는 미국 기업과 경제에 크나큰 이득이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곽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