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FTA, 건보·보건 전반에 의료민영화 효과 미칠 것”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ㆍ긴급토론회… “투자자소송, 국민 건강 위협할 수도”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2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는 않을지 몰라도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와 보건의료제도 전반에 걸쳐 심각한 의료민영화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범국본은 이날 서울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개최한 긴급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한·미 FTA는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토론회 발제자로 나와 “한·미 FTA가 발효되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의 영리병원, 약국 등에 대한 규제조처를 되돌릴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한·미 FTA 부속서Ⅱ를 보면 한국 정부는 보건의료서비스와 관련해 향후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지만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들어서게 될 영리병원은 예외로 돼 있다.
우 실장은 “영리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의료비의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은 한국의 건강보험수가의 4배 이상을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비는 ‘파급효과(이른바 뱀파이어 효과)’를 가지므로 경제자유구역 밖에 있는 병원의 의료비도 오르게 된다”며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고착화되는 것만으로도 영리병원 전국화의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단체들 “저지”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가 21일 서울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의료민영화의 다른 이름, 한·미 FTA’ 긴급토론회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우 실장은 “한·미 FTA는 의약품, 의료기기의 가격결정을 검토하는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 기구는 의약품의 보험약가, 보험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의 기능을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자발적 의료민영화 조치와 한·미 FTA가 결합되면 의료민영화 조치를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 15일 취임한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신임 이사장은 지역과 직장 조합이 통합된 현 건강보험 체계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만약 한·미 FTA가 발효되고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경우 이를 되돌리는 게 어려워진다. 외국인이 투자한 민간병원의 재산권을 침해(간접수용)하게 돼 막대한 보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의 노동당 정부는 올해 의료계의 광범위한 지지 속에 담배 광고 제한법을 발표했다. 2012년 12월 시행 예정인 이 법은 모든 담배 제품에 색상과 컬러 상표의 표시를 금지하는 게 골자다. 그러자 필립 모리스는 홍콩에 자회사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호주·홍콩 투자협정을 이용해 호주를 국제중재에 회부하겠다고 통지했다. “호주 정부의 조치가 필립 모리스의 지식재산권을 수용한 것이고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최소기준 대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정부는 건강 등 공공정책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했다고 하지만 필립 모리스가 호주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한 이유인 수용·보상 의무와 공정·공평 대우로부터의 자율성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