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한미FTA저지범국본 정책자문위원
“이명박 정부야말로 ‘괴담’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장호종
<레프트21> 69호 | 발행 2011-11-19 | 입력 2011-11-17
우석균 한미FTA저지범국본 정책자문위원을 만나 운동의 쟁점과 과제를 들었다.
우석균 자문위원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자 의사로서 2008년 촛불항쟁 등 주요 사회운동에서 큰 공헌을 해 왔다. <레프트21>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Q 이명박 정부가 한미FTA 반대 주장을 ‘괴담’이라고 비방하고 있는데요?
△10월 27일 한미FTA 저지 결의대회에서 연설하는 우석균 정책자문위원 ⓒ사진 이윤선
이명박 정부의 주장이야말로 괴담입니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공공정책이야 말로 ISD의 주된 대상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영역이 뭐겠습니까? 거꾸로 공공정책을 제외하면 정부가 어떻게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겠습니까? ISD는 기업이 국가의 공공정책에 맞서는 무기입니다.
정부는 필수 공공정책은 협정 발효 이후에도 추가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미래유보’라는 것이죠.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상하수도 같은 물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한 10년쯤 있다가 ‘아, 이건 문제가 있네’ 하고 다시 국유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럴 때에 국내 물 시장에 진출했던 미국 투자자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0년 계약으로 한국 물 시장에 투자했는데 그중 20년치 이익을 보상하라’ 하고 말이에요. 이걸 ‘수용 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정부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액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그냥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못 주겠다고 하면 ISD 대상이 되는 겁니다. 한국 정부가 얘기하는 ‘미래유보’ 조항에는 ‘수용 보상’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사실 ISD가 적용된 사건의 80퍼센트가 이런 ‘수용 보상’, 혹은 ‘최소기준대우’와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최소기준대우’는 이런 겁니다. 미국 투자자가 보기에 한국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가 ‘관습적’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른바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라고도 해요. 그런데 이 ‘관습적’이라는 게 딱히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 데나 적용할 수 있는 거죠. 최소기준대우도 미래유보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투자자들은 어떤 공공정책에 대해서든 최소기준대우를 어겼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자동 동의’ 조항이 있습니다. 1994년 NAFTA 이후에 생긴 겁니다. 한국 정부는 ISD를 거부할 권리가 없습니다. 걸면 걸리는 것이죠. 언제든 중재 재판에 끌려 나가야 합니다.
요컨대 일단 개방한 것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고(역진방지 조항), 되돌릴 수 있도록 예외로 해 놓은 것은(미래유보 조항) 수용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하고, 보상을 안 하면 ISD 대상이 되는 겁니다. 장하준 교수가 “이혼할 수 없는 결혼”이라고 지적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Q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ISD 재협상만 약속하면 한미FTA를 비준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ISD만 문제 삼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ISD는 정부가 한미FTA 협정을 어겼을 때 이를 강제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은 안 되는가 하는 내용들은 한미FTA 협정 자체에 담긴 것입니다.
ISD가 지독한 제도이기는 해도 이것만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ISD가 없어져서 미국 투자자가 제소할 수 없게 되면 미국 정부가 국제중재기구에 회부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때처럼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예컨대 한EU FTA에는 ISD가 없죠. 그런데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이 국회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입을 막는 상생법이 한EU FTA 위반이라고 했잖습니까? 영국 정부가 홈플러스 지분을 가진 영국 기업 테스코를 대신해 얼마든지 제소할 수 있는 겁니다.
Q 구체적으로 한국의 어떤 공공서비스가 ISD 대상이 될 수 있나요?
한국에서 도시가스는 도매는 일부, 소매는 거의 다 민영화돼 있는 상태입니다. 가스 공급업체 32곳 중에 GS와 칼텍스와 SK가 40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GS의 경우 GS칼텍스가 지주회사인데 지분 절반은 전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대주주로 있는 칼텍스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가스요금은 시장에 내맡긴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 조례에서 정합니다. 지나친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한 것이죠.
자, 이제 한미FTA가 발효되고 나면 콘돌리자 라이스가 뭘 할까요? 가스요금이 안 오를까요? 지방정부는 그걸 막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미 한국 정부가 가스요금 현실화를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미FTA에서는 한국 발전 ‘시장’의 30퍼센트만 개방한다고 해 놨습니다. 마치 미국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한국의 발전회사는 5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가 한두 개를 소유할 수는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요금을 올릴 수 있죠.
애당초 지역이나 운영 효율 같은 것을 따져서 발전 회사를 나눠 놓은 게 아닙니다. 민간에 팔기 적당한 크기로 나눠 놓은 것입니다. IMF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해 놓은 일이죠. 완전히 민영화 하려다가 2002년에 철도ㆍ가스ㆍ발전 3사 파업으로 노동자들이 싸워서 이 상태로 막아 놓은 것입니다.
이처럼 한미FTA와 한국 정부의 자발적 민영화 조처가 결합될 때 가장 큰 파괴력이 생깁니다. 정부의 국책연구소들과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민간 연구소들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가 크다”고요.
Q 영리병원 확대나 약값 폭등도 모두 ‘괴담’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영리병원은 경제자유구역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경제자유구역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죠. 한미FTA 체결 당시 경제자유구역은 제주도를 포함해 4곳이었습니다. 지금은 7곳이고요. 지금은 경제자유구역이 없는 충북과 강원도에도 경제자유구역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한미FTA와 한국 정부의 자발적 민영화가 결합되는 거죠.
게다가 병원이나 학교 같은 것들을 영리화하면 그 효과가 경제자유구역 경계선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파급효과로 다른 병원의 의료비가 덩달아 오르게 됩니다. 또 이른바 역차별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왜 한국에서 외국 투자자는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고 한국 투자자는 못 하게 하냐’는 겁니다. 바로 이런 논리로 한국 정부가 스스로 경제자유구역 내에 한국 투자자들이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해 왔습니다.
특허 만료되는 약품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눈 가리고 아웅인 주장이에요. 앞으로 나오는 특허신약들은 없으리라는 이야기인가요? 정부는 약값 인상 수준이 낮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한국의 약값 지출은 이미 OECD 평균의 1.4배 수준입니다. 그런데 한미FTA가 통과되면 정부가 강제로 약값을 낮추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한미FTA 발효 이후에 약값이 전혀 오르지 않아도 40퍼센트나 인상된다고 계산하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닌가요?
한국보다 느슨한 협정을 맺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FTA 효과가 완전히 나타나면 매년 30퍼센트씩 예산을 추가 부담 하게 될 것이라고 추산하는데 한국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Q 이명박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일본이 미국과 TPP 협정을 맺으려 하는 것이 한미FTA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얼마 전까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던 일본이 세계 1위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는 것을 두고, 한참 뒤처지는 한국과의 경쟁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한미FTA도 그렇지만 일본 정부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 하는 데에는 지정학적 고려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레진스키가 《거대한 체스판》에서 일본을 아시아 끝자락에 놓인 미국의 횟대(미국의 상징인 독수리가 앉을 수 있는)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요. 일본 지배층 일부는 스스로 이런 구실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아시아에서 구현하는 구실을 맡음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자신들이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중심으로 남으려 하는 것이죠. 반대로 중국은 ‘한중일 + 아세안’ 무역협정으로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하죠. 이미 한국은 중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점을 놓치고 단지 한일 간의 경제적 경쟁으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PP는 오바마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신통상정책을 펴면서 전 세계 40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상품과 서비스 수출을 늘려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얘긴데요. 부시 정부보다 오바마 정부가 더 공격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근린궁핍화, 즉 미국의 경제 위기를 다른 나라들에 떠넘기겠다는 거죠. 미국은 일본에게도 TPP의 선결과제로 자동차, 쇠고기, 농업 관련 규제를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일본 지배층은 분열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남는 장사인지 이견이 있는 거죠. 그러나 공통점은 그들 모두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Q 한미FTA 반대 투쟁 내에서는 노동자들이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7년 한미FTA 반대 투쟁의 중심에는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총도 그랬구요. 민주노총은 여러 차례 파업을 결의했고 실제로 금속노조는 파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봅시다. 당시에는 전농 같은 농민조직도 운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전투적이었는지 국회 앞 시위에서 농민 두 명이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농민들은 어떻게 하고 있죠? 농업 부문이야말로 한미FTA의 직격탄을 맞게 될 판인데 말이죠.
△11월 13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한미FTA 반대 운동은 ‘99퍼센트 행동’과 결합되고 있습니다. 운동의 지도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기층 운동을 조직해야 합니다.” ⓒ사진 <레프트21>
사실 지금 운동이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 것을 노동자들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반적으로 더딘 것이죠. 당시와 달리 지금은 경제 위기 상황이라는 객관적 요인도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체적 문제입니다. 진보정당은 분열돼 있고 운동의 중심이 민주당과의 연대에 가 있죠. 요구 수준도 민주당 수준으로 후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보정당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민주당과 같이 싸우기는 하되 한미FTA 폐기 요구를 분명히 하고 도덕적ㆍ정치적 정당성을 지켜냈다면, 아마도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거리의 운동이 여전히 한미FTA 반대 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며 국회만 바라보고 운동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뒷전에 미뤄 두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만에 하나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더라도 이후에 이를 폐기하려면 지금 대중적 선전과 조직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이 과거보다 불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007년과 달리 정부의 국익론 같은 것이 힘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1퍼센트 대 99퍼센트 같은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죠. 따라서 운동의 지도자들이 좀더 자신감을 갖고 기층 운동을 조직해야 합니다.
인터뷰ㆍ정리 장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