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생기면 긴급회수 가능하다”던 이력관리시스템 엉망
2012.03.23 12:15 l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 우려가 높아지면서 정부가 2009년 마련한 ‘쇠고기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이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생긴 수입 쇠고기는 계산대에서 바코드만 찍으면 다 나오니까 걱정말라”는 정부 홍보가 무색하게 됐다.
감사원의 수입 농식품 유통 관리 실태 감사결과, 정부의 수입 쇠고기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23일 드러났다.
수입 쇠고기 유통 관리 시스템은 유통 단계별 내역을 전산으로 신고하도록 해, 이동 경로를 전산화한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서 수입된 쇠고기가 어디로 어떻게 유통됐는지 전산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해 빠르게 긴급회수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다. 수입 쇠고기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 도입을 위해 정부는 2009년 74억원을 들였다. 하지만 감사원이 확인해본 결과,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 전산에 기록된 내역이 단계별로 불일치하거나 거래 내용이 누락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ㄱ주식회사가 사들인 2만1998kg의 수입쇠고기는 총 3~4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쳤는데 이력을 따라가보니 2만1345.85kg은 팔렸는지 재고상태인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ㄴ무역업체가 수입한 쇠고기 1만4710kg의 경우 총 6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쳤는데 단계를 거칠 때마다 각각 2454kg, 99kg, 466kg, 2794kg의 쇠고기가 행방이 묘연했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사라진 쇠고기는 어디서 어떻게 팔려나갔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유통 이력 관리 스템은 수입 쇠고기 이력 관리 등 업무를 수행하는 검역 검사소 담당 공무원이 접근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영업자 비밀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일부 제한된 직원들만 전산 내용 확인이 가능했다.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 구축과 함께 수입 쇠고기에 부착하도록 한 ‘무선 주파수 인식’(RFID) 태그 역시 거의 부착되지 않고 있었다. 감사원이 53개 검역 시행장을 확인해본 결과 약 70%의 검역 시행장에선 RFID 태그 발행 실적이 없었다. 정부가 무상 보급한 RFID 태그 사용율도 37%에 그쳤다.
감사원은 “활용이 부진한 주요 원인은 RFID가 의무가 아닌 자율 사항이기 때문에 유인 효과가 없고 태그 비용이 일반 태그보다 비싼 데다, RFID 태그 발행에 시간이 인력이 더 소모되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도 해당 부처에서는 운영실태 파악 및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농림수산검역검사 본부장에게 “수입 쇠고기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 운영실태를 상시 점검하고 유통이력 담당 공무원들이 관리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만드는 한편, RFID 시스템 사업 추진실태를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