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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젖소 한 마리가 걸렸다고 해서…” 2003년 12월에는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가 발견되자마자 다음날, 한국 정부가 검역을 중단했다. 광우병으로 확진되기도 전이었다. 광우병으로 최종 확인되자 수입 금지 조처로 전환했고, 미국 대표단이 한국으로 날아와 ‘수입 금지 철회’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잘 알다시피, 지난 4월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돼 열흘이 지났지만 정부는 수입 중단의 전 단계인 검역 중단조차 시행하지 않고 있다. 코로 냄새를 맡는 쇼를 하며 ‘검역을 강화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보수언론의 태도 변화는 분열증에 가깝다. <동아일보> 5월1일치 사설 ‘과학자들이 미신과 괴담에 당당히 맞서야’를 읽어보자. “최근 미국에서 초고령 젖소 한 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해서 국내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단체는 ‘과학적 접근이 중요하긴 해도 국민적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지만 과학적 접근이 국민적 신뢰의 기초가 돼야 한다.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을 국민이 믿는다면 그것이 곧 집단미신이다.” 광우병에 걸린 ‘초고령 젖소 한 마리’ 때문에 한국 국민이 불안해진다는 것은 합리적·과학적 근거가 없는 맹목적 믿음 탓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10년 전 <동아일보>도 그런 믿음을 전파했다. 2003년 12월31일치 ‘광우병 쇠고기 협상 대상 아니다’라는 사설을 보면,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정부의 조치는 적절하다. 국민의 식탁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식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식품에 불안 요인이 있다면 단호하게 수입을 금지해야 옳다”고 돼 있다. 당시 <조선일보>도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데 뒤지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해 이번 일은 통상 마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약 한국산 소에서 광우병이 나왔다면 미국 정부 역시 수입 금지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지난 24일 미국에서 광우병 발발 소식이 알려진 이후 한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수입 금지 관련 조치들은 국민의 건강과 식품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2003년 12월30일치)
사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보수언론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우려를 전파하는 괴담의 진원지였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학설을 가장 먼저 소개한 곳이 바로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2007년 3월23일치 과학면에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라는 기사를 내어, 소나 사람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2004년 영국에서 이른바 ‘인간광우병’ 환자 124명의 프리온 유전자를 조사했는데, 모두 129번째 아미노산(단백질 구성단위) 자리에 부계와 모계에서 각각 메티오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메티오닌-메티오닌(MM형)의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한림대 의대 김용선 교수팀이 건강한 한국인 529명의 프리온 유전자를 분석해보니, 94.33%가 MM형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김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은 인구의 약 40%가 MM형”이라며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인이나 영국인보다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2008년 4월29일 문화방송 보수언론의 말바꾸기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늘도 계속된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4월18일 미국과 수입위생조건을 새로 맺어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광우병 지위 등급이 ‘통제국’에서 ‘비분류’로 떨어질 때만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한국 정부가 ‘검역주권’을 잃은 것 아니냐며 촛불시위가 불붙자 이명박 대통령은 5월7일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우선적으로 수입을 중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5월8일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통상 마찰이 발생해도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촛불시위가 확산되자 한-미 두 나라는 그해 5월21일 합의 서한을 교환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가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검역주권을 확보했고 실질적으로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고, <조선일보>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면 된다”며 논란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거짓말과 말바꾸기로 밀어주고 4년이 흘러 실제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정부는 다시 엉뚱한 논리를 내세워 수입 중단을 거부하고 있다. 광우병이 발생한 소의 나이가 127개월로 한국이 수입하는 30개월령보다 4배 늙었고, 광우병 유형도 동물사료를 먹어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정형이 아니라 비정형이라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2008년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도 광우병에 안전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 정부가, 이제는 30개월 이상만 광우병에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5월1일 국회 농수산식품위원회에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검역 중단 또는 수입 중단 조치하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그 짓을 왜 하느냐”고 대답했다. 보수언론은 이런 정부를 비판하기는커녕 두둔했다. <동아일보>는 4월30일치 사설 ‘미국산 쇠고기 공포 과장은 답 아니다’에서 “즉시 수입 중단은 정부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앞세운 미봉책이자 ‘과장 광고’였다. 국가 간 교역에서 ‘즉시 수입 중단’ 같은 극단적 조치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4년 전과 똑같은 미봉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또다시 이런 거짓과 괴담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주고받는 한 ‘광우병 괴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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