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한미FTA 약한 고리 치고 들어왔다”
[인터뷰] 송기호 민변 외교통상위원장
김덕련 기자,이대희 기자
프레시안 2012-06-06 오전 10:19:5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0604170423§ion=02
‘먹튀’ 자본. ‘탐욕스레 먹고 뻔뻔하게 튄다’는 이 말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맴돌았다. 이런 ‘먹튀’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투자액의 2배가 넘는 4조 원 이상의 차익을 챙겼다. 그 돈을 챙겨 떠난 줄 알았던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싸움을 걸었다.
론스타는 지난달 초 남대문세무서에 경정청구서를 냈다. 외환은행 지분 매각과 관련해 부과된 양도소득세 3915억 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을 사들인 것은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로부터 3조9156억 원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국세청이 그 금액의 10퍼센트(3915억 원)를 양도소득세로 원천징수하자 론스타가 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외환은행의 실소유자는 벨기에에 설립된 LSF-KEB홀딩스(론스타의 자회사로 조세를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였는데, 한국과 벨기에는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론스타 측의 논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는 기업의 해외 양도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론스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론스타는 4조 원이 넘는 이익을 냈으면서도 세금은 단 한 푼도 낼 필요가 없게 된다.
론스타는 이에 더해 “2000년대 초에 획득한 외환은행과 기타 한국 기업의 최대주주 권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중재를 의뢰하겠다고 (5월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벨기에와 한국 간 투자협약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으면, 11월에 한국-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따라 한국 정부가 최초로 국제중재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 문제는 한미FTA 사안”
그동안 많은 우려를 낳았던 ISD가 한국의 목줄을 죌 수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프레시안>은 통상 문제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위원장)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송 변호사는 “론스타 문제는 한미FTA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론스타가 한국-벨기에 투자보장협정뿐만 아니라 한미FTA의 ISD를 활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송 변호사는 크게 두 가지 점을 짚었다.
첫 번째는 론스타 측이 ‘한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아 피해를 봤다’고 표현한 대목이다.
“론스타는 2003년에 외환은행 주식을 인수하고 2012년에 팔았다. 이에 대해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아 외환은행 주식을 필요 이상으로 보유해야 했고 그 때문에 판매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한미FTA와 연결시키면, 공정-공평대우 문제가 된다. 공정-공평대우의 핵심은 투자자를 법적 불확실성 상태에 장기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론스타가 이 점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정-공평대우 조항과 관련, 송 변호사는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지하철 9호선 문제를 사례로 들었다. 9호선 논란 당시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는 ‘한미FTA에 명시된 ISD 대상 투자 계약 주체는 중앙정부와 외국인 투자자이며, 서울시와 외국인 투자가가 체결한 9호선 투자 계약은 ISD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9호선의 2대 주주인 맥쿼리인프라는 미국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에 ISD 제소 자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송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9호선 사태는 아직 해결된 게 아니다. 이건 한미FTA의 공정-공평대우 조항이 얼마나 공공 서비스를 위축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9호선 문제도 민영화, 즉 지하철이라는 공공 서비스 사업권을 민간에 주면서 생겼다. 국제중재에 회부된 많은 사건들은 수도, 항만, 하수 처리 같은 공공 서비스 영역에 투자했던 민영화와 관련된 것이고, 이런 판례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공정-공평대우 조항이다.
9호선 문제가 터졌을 때 외교통상부는 ‘서울시와 관련된 문제이지 한미FTA와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교묘하게 말장난을 했다. 왜곡이다. 한미FTA의 본질을 회피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지방정부이건 중앙정부이건 간에 (FTA) 협정문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민영화와 관련해 중앙정부와 직접 계약한 것만 (FTA에서) 문제가 되며, 따라서 한미FTA 사안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건 한미FTA의 객관적 구조를 국민에게 덮으려는 시도다. 지금까지 국제중재로 간 공공서비스 민영화 사례는 대부분 연방 차원이 아니라 지방정부를 상대로 한 분쟁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론스타 측이 ’3915억 원 원천징수가 자의적이고 몰수적인 과세’라고 주장한 대목이다. 송 변호사는 “굉장히 많은 법적 쟁점이 있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까지 벨기에 국적의 다른 기업 혹은 벨기에처럼 (한국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고 조세회피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국가의 기업 중에 론스타처럼 원천징수된 사례가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런 사례가 없었다면 론스타 측에서 ‘자의적인 과세’라고 주장할 수 있다.”
송 변호사와 달리, ‘론스타 사안은 한미FTA와 무관한 문제’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고 국세청에서 과세한 시기가 한미FTA 발효(3월 15일) 이전이므로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송 변호사는 이와 다른 견해를 밝혔다.
“‘한미FTA가 발효되기 전에 론스타가 주식을 모두 팔았으므로 한미FTA 발효 이후에는 투자자라고 볼 수 없고 제소할 자격도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검토해봐야겠지만 한미FTA에 규정된 투자의 개념이 폭넓다. 계약상의 권리도 투자로 인정한다. 론스타는 하나은행과 계약을 맺고 주식을 팔았다. 계약에 따르면 론스타는 하나은행으로부터 3915억 원을 포함한 매각 대금 전체를 받을 권리가 있다. 론스타로서는 이 권리가 침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한미FTA 사안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세청이 어떤 법률에 근거해서 원천징수를 한 것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소급 적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조치가 FTA 발효 전에 이뤄졌는지가 아니라 그 조치의 효과가 발효 이후에도 적용되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3월 15일 이전에 제정된 법률이 투자자 이익을 침해할 경우 ‘법이 한미FTA 발효 전에 제정됐으므로 한미FTA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론스타, 한국 정부의 약한 고리 치고 들어온 것”
송 변호사는 론스타 문제에 관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우선 지적한 사항은 비밀주의다.
“론스타가 정부에 보낸 의향서는 단순히 협의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명백하게 국제중재에 걸겠다고 통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처음에 이걸 은폐했다. 이 문제에 관해 처음 나온 보도를 보면 ‘협의했다’고만 돼 있다. 정부가 ISD와 관련해 제소 위협을 당하는 정식 통지문을 받았는데도 (제때) 알리지 않았다는 건 큰 문제다. 그동안 ‘한미FTA, 문제 없다’고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5월 31일 정부에 ‘론스타가 보낸 국제중재제기의향서 원본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송 변호사는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다고 봤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결과적으로 론스타에 여러 가지 편법을 제공했다. 이제 론스타가 원천징수된 3915억 원을 찾아가기 위해 한국 정부의 그런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송 변호사는 론스타 보도자료에 나오는 “a series of”란 표현에 주목했다.
“이 법적 용어는 상당히 의미가 크다. 국제중재에 걸리는 사안은 하나의 행위에 대해 협정 위반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하나하나 보면 문제가 없지만 각 행위의 일련의(a series of) 과정, 즉 그 일련의 조치들이 종합적으로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다. 한미FTA도 이를 인정한다.”
송 변호사는 이번 론스타 사건을 “국제 금융자본이 과세 조치에 대해, 즉 조세주권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뒤 “지금껏 ‘조세는 ISD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사람들이 (이제)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법조계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론스타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 로펌에 자문했다고 돼 있다(편집자 : 론스타 보도자료에는 “우리는 이 사안을 한국과 세계의 법 전문가와 상의했으며, 설득력 있는 법적 클레임이 성립한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돼 있다). (일부 한국 법률가들이) ‘ISD로 걸 수 있다. 승산 있다’고 론스타에 의견을 줬다는 이야기다. 그 자체를 탓할 건 아니지만, 그런 로펌은 적어도 정부의 론스타 관련 대응에서 배제해야 한다. 정부가 구성한 태스크포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송 변호사는 “그간 론스타의 차익 실현을 가능하게 해준 국내 법조계의 역할도 (이번 기회에)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론스타에 대한 ‘예외적 승인’ 등을 통해 산업자본 논란을 결과적으로 묵인했다”는 비판이다.
“120% 승소 확신? 어려운 싸움 될 것”
국제중재로 갔을 때 한국 정부의 승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5월 31일 “소송으로 갔을 경우 이긴다고 12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승소하길 희망한다. 그렇지만 김석동 위원장처럼 ’120% 승소’라고 말할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국제중재로 가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송 변호사는 이번 사안을 길게, 그리고 넓게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론스타 문제는 (1997년) IMF 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때 만들어진 틀이 계속 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참고로) 론스타 보도자료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한국을 눈여겨보게 됐다는 내용이다.
성취도 일부 있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근본적인 한계의 뿌리는 경제가 금융자본주의화한 데 있다. 그 결과 한국 경제가 금융자본의 이익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구조로 갔고, 그것이 론스타 사건으로 불거진 것이다.
국민경제가 금융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고 민주주의가 금융자본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정말 큰 숙제다. 지난 10년간 누가 론스타에 예외적 승인을 허용했고 론스타 정책을 누가 결정했는지, 그리고 한국의 이른바 모피아, 김앤장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또 다른 론스타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신빈곤 현상이 왜 생기는지, 반(反)빈곤을 어떻게 이뤄가야 할 것인지를 론스타 대응과 연계해서 봐야 한다.
한미FTA는 갈수록 그 효과가 커질 것이다. 이번 론스타 사건은 한미FTA의 심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세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공 정책이 ISD에 의해 제약받는 현실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ISD 폐기는 국민 일반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한미FTA를 잘 모른다”
송 변호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정치권도 질타했다.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한미FTA를 최종적으로 통과시켜 살아 숨 쉬게 한 장본인”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근혜 의원은 한미FTA를 잘 모른다. ISD가 논란이 됐던 시기에 박근혜 의원은 ‘이건 그냥 다 하는 것 아니냐. 보편적 규범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편집자 : 박 의원은 지난해 11월, “ISD는 국제 통상협정에서 일반적인 제도이고, 또 표준약관 같이 거의 모든 협정에 다 들어 있는 제도”라며 “ISD가 있거나 없거나 (…) 통상협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에 의해 한미FTA 국회 비준이 강행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만약 박 의원이 ‘ISD 문제를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면 한미FTA는 비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SD에 대한 박 의원의 판단은 대단히 안이했다.”
송 변호사는 한미FTA 비준을 강행한 정부와 여당이 협정 발효 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미FTA가 발효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발효 후 4월에 미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다. 5월 들어 수출 총액 자체가 줄었다. 정부는 한미FTA의 효과를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그런데도 이명박-박근혜 그룹에서 나온 이야기는 기껏해야 왜 체리 값 안 떨어지느냐는 수준이었다.
한미FTA로 관세 수입이 줄었다. 국가 재정의 확실한 손실이 먼저 이뤄진 것이다. 가령 한미FTA로 인해 관세 수입이 1000억 원 줄었는데, 체리나 와인 같은 제품의 수입 가격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건 국민 복지를 위해 써야 할 관세를 미국의 수출업자, 한국의 수입업자 호주머니에 집어넣어준 격이다. 이렇게 국가 재정 손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인데도 (이명박-박근혜 그룹은) 책임성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야당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송 변호사는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당 일각에서 “한때는 관성적으로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다가 이제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략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한미FTA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손해’라는 식으로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한미FTA에 대한 문제의식의 원칙은 유지하되, 발효에 따라 새로운 이해관계와 새로운 경제주체들의 행동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