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 한미 FTA 앞에선 수수깡 놀이!
[프레시안 books] 우석훈의
송기호 민변 외교통상위원장
프레시안 2012-08-31 오후 6:50:01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831133404
“당신의 통상 정책은 무엇입니까?”
왜 이 질문이 중요한가? 우석훈의 말처럼, 국내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자살을 하거나 말거나, FTA만 체결하면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다는 주술사들의 통상 독재 시대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질문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이 질문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들고 싶다.
FTA 발효 후 무슨 일이 있었나?
우석훈이 말한 주술사들이 소원한 대로 2011년 7월에 한-EU FTA가, 올해 3월에는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나?
발효 후 1년간 유럽연합(EU)으로 수출되는 한국 제품은 70억 달러나 줄었다. 한국의 유럽 무역 흑자는 FTA가 있기 전의 7분의 1로 급락했다. 유럽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FTA를 하면 유럽으로 연 3.6억 달러씩 더 수출할 수 있다고 말하던 주술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프랑스는 한국산 자동차 수입을 견제하기 위하여 ‘긴급 수입 제한 조치’ 집중 감시 제도를 EU에 요청했다. 이것은 FTA 협정문에도 없는 부당한 절차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가장 최신 통계인 2012년 7월 자료를 보면, 미국에로의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0.4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한미 FTA가 없었던 2011년 7월에는 어떠했을까? 2.5퍼센트 증가했다. 한미 FTA가 발효되었음에도 오히려 수출 증가율은 떨어졌다.
주술사들이 몰고 온 한미 FTA 괴물
삼성-애플 소송은 그저 미국에서 벌어지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미국인 배심원들이 삼성 휴대전화의 둥근 모서리 디자인이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결정한 것을 놓고 미국식 사법 제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놀리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벌어질 일들이다. 이제는 눈을 한미 FTA에 돌려보자. 왜냐하면, 그 안에는 한국의 법을 바꾸어 디자인을 미국식으로 강력히 보호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해를 당했다며 엄청난 돈을 받아 갈 장치들의 출생 신고서가 가득 들어 있다. 그 틀이 자리 잡게 되면, 미국인 배심원단 판결이 앞으로는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다.
삼성-애플 소송은 장차 한국에서 미국이 어떻게 새로운 부를 창출할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한미 FTA는 미국식 특허 질서를 한국에 이식하여 막대한 부를 미국으로 가져간다. 이것을 한국의 대통령들은 알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국회에 보낸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첫 쪽은 너무 똑같고 너무 분명하다. “지적 재산권 보호 강화 등 제도 선진화”라고 되어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12대 대통령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석훈의 주장처럼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당신의 통상 정책은 무엇이냐고 묻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미 FTA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미 FTA의 본질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관계없이 국제 금융 회사와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틀을 미리 만드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12대 대통령은 국제 금융 자본에 의해 투자자-국가 분쟁(ISD) 중재(해결) 제도로 끌려가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론스타는 11월에 한국을 ISD에 회부할 것이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한 손해 보상 액수는 ‘수입억 유로’, 곧 수조 원이다. 한미 FTA는 세계무역기구(WTO)와는 반대로, 강제 중재에 무역 보복을 결합시켜 놓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는 쌀 수입 자유화를 선언해야 할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늦어도 2015년 1월 1일에는 쌀을 수입 자유화하겠다고 WTO 157개 회원국들과 협정을 맺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는 유전자 조작 미국 쌀의 수입을 허가할 최초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많다. 노무현 정부의 관료들은 2007년 4월, 미국과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 기술 양해 각서’를 미국에 건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외국의 유통 회사들은 한국 국회가 대형 마트를 지금보다 더 강력히 규제하는 법을 만들 때에, FTA를 무기로 강력히 저항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는 영리법인 병원 제도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한미 FTA는 영리법인 병원 제도에서는 한국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은 중국과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환태평양 경제 협정(TPP)에 한국이 가입할 것을 강력히 촉구할 것이다. 이미 미국과 한미 FTA로 엮인 한국은 이 요구를 거부할 논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TPP에 편입되는 순간, 아시아 경제 통합의 주도권은 더 이상 한국과 일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프라자 합의가 일본의 장기 불황을 가져왔듯이 TPP는 한국과 일본의 성장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한미 FTA 앞에서 경제 민주화는 무기력
그러므로 한미 FTA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논리를 강요한다. 이 틀에서는 한국의 경제 민주화는 수수깡 놀이다. ISD에서 한국 헌법 조항을 읽고 있을 중재인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헌법은 강제 중재에서 판단 규범이 될 자격조차 없다.
해결책은 한미 FTA라는 괴물을 경제 민주화 침대에 올려놓고 침대에 맞게 수술을 하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잘 하는 대통령을 원한다면 한미 FTA를 잘 수술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여기에는 주도면밀한 FTA 모니터와 국민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미국과의 끈질긴 협의가 필요하다. 미국에 달랑 팩스 한 장 보내면 된다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팩스는 한미 FTA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석훈이 오랜만에 한미 FTA을 책을 내면서 간명한 결론으로 제시한 질문은 훌륭하다. “대통령 후보의 통상 정책은 무엇입니까?”라는 그의 질문은 내겐 ‘한미 FTA를 어떻게 수술할 것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읽힌다. 우석훈처럼 나 역시 질문의 힘을 믿고 싶다.
/송기호 민변 외교통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