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 종자, 특허, GMO, 다국적 농식품거대기업, 농업, 농민, 농촌지역사회, 신자유주의, FTA에 관한 사회적 논쟁의 고전적인 자료입니다. 현재 몬산토를 비롯한 GMO 기업들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터미네이터 기술 자체의 상업화를 포기했다지만 교잡종으로 생산되는 특허종자에 그 기술이 응용되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원제와 번역문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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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arda A. Steinbrecher and Pat Roy Mooney, ‘Terminator Technology: The Threat to World Food Security,’ The Ecologist, Vol. 28, No. 5 (September/October 1998), pp. 276-279. (『시민과학』 14호, pp. 20-27에 수록)
터미네이터 기술 ― 세계 식량 안전에 대한 위협
리카르다 스타인브레처 & 팻 로이 무니
몬산토 사는 자사가 보유한 최신의 대표 기술인 터미네이터 기술이 굶주리고 있는 세계를 먹여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기는커녕, 터미네이터 기술은 전통적 농업의 핵심 기반인 매년 종자를 거둬 보관하는 관행을 침식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유전자 칵테일(gene-cocktail)’은 새로운 독성물질과 알레르기 유발물질들이 식량 공급망 속에 들어갈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 신부가 당대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완두콩의 유전에 관한 책을 출판하여 이른바 ‘현대적’ 식물 육종의 기틀을 마련한 때로부터 꼭 5년 전인 1860년에, 영국 브라이튼에 거주하던 린네 학회 회원인 핼릿 소령(Major Hallett, F.L.S.)은 자신의 곡물 종자인 ‘페디그리(pedigree)’ 상표를 함부로 사용하면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농부들과 동료 종자상인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종자는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농부들이 그의 밀 품종을 구입해서 씨를 뿌리고, 다음 해 농사를 위해 가장 좋은 씨앗을 골라내고, 지역의 토양, 경사면, 날씨 등에 꼭 들어맞는 그들 자신의 품종을 만들어내는 일을 못하도록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핼릿 소령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 ― 농부들이 종자를 보관했다가 자신들만의 종자를 개발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생물학적 무기’ ― 이 등장한 것은 한참 후인 1908년에 조지 슐(George Shull)에 의해서였다. ‘교잡(hybridization)’이라는 극히 완곡한 용어로 표현된 이 방법은 두 개의 원연(遠緣) 식물종을 교배해서 수확량이 엄청나게 증가한 ‘강력 교잡종(hybrid vigour)’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써서 얻어지는 씨앗은 불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이는 곧 수확한 씨앗을 다시 심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 농부들은 막대한 수확량 때문에 이 방법이 재정적으로 수지가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캘리포니아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서 재배되고 있는 옥수수의 대부분은 몇 안되는 거대 종자회사들 중 하나에서 만들어진 교잡종 옥수수이다.
슐이 교잡 방법을 개발한 시기로부터 꼭 90년이 지난 현재, 종자회사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회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몬산토(Monsanto) 사는 교잡종의 개발 이래 가장 중요한 종자 독점 기술을 통제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1860년의 상황과는 달리, 생명을 통제하는 이 기술은 특허를 받을 수 있다. 3월 3일, 미 농무성(US Department of Agriculture, USDA)과 델타 앤 파인랜드 사(Delta and Pine Land Company)라는 무명의 목화 종자회사가 기술보호 시스템(Technology Protection System, TPS)이라는 제목이 붙은 미국 특허 5,723,765호를 취득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계는 TPS를 터미네이터 기술(Terminator Technology)이라는 이름으로 알게 되었다. 이 기술이 내세운 목표는 생식능력을 스스로 제거한 자손(self-terminating offspring), 즉 자살 씨앗(suicide seed)을 만들어낼 식물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식량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공학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며, 생명을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거대기업의 활동의 배후에 어떤 추동력이 숨어 있는지를 간파할 수 있게 해 준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농부들이 종자를 거둬 보관하고 개량하는 12,000년에 걸친 전통을 제지하지 못해 오랜 기간 골머리를 썩여 온 다국적기업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농부들은 보통 한번 씨앗을 사고 나면 그 후에는 그들 스스로 작업을 해 나간다. 그동안 농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허가 이용되었고 핑커튼 탐정단이 고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기술의 경우에는 생물학적 ‘특허’가 식물 내부에 설치되어(built-in) 있으며, 이는 조작된 유전자에 의해 강제된다. 특히 제3세계의 소규모 농촌공동체들은 그들 자신의 식물 육종에 의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기업이나 공공연구소 산하의 육종기관들이 모두 제3세계의 농촌공동체가 종종 처하게 되는 어려운 환경에 맞는 육종에 많은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또 [제3세계 농촌공동체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잘 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스타일의 교잡 종자와 터미네이터 기술을 이용한 종자는 농부들이 매년 종자를 구매하도록 시장으로 몰아낸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또한, 농촌공동체가 농업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활동마저 중단시킨다. 남아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기술은 농업에 투하되는 ‘중성자탄(neutron bomb)’과도 같다.
교잡종 종자
1900년 멘델 법칙의 재발견에 뒤이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식물 육종가들은 농부들이 어렵게 번 돈을 매년 시장에서 종자를 다시 구입하는 데 쓰도록 만드는 전략을 추구했다. 교잡종의 개념은 1908년 조지 슐에 의해 이미 발전되어 있었지만, 최초의 교잡종 옥수수가 상품화된 것은 1924년에 헨리 월러스(Henry A. Wallace)에 의해서였다. 2년 후, 월러스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종자회사가 된 파이오니어 하이브레드(Pioneer Hi-Bred) 사를 창립했는데,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월러스 일가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 이어 월러스는 미 농무성 장관이 되었고, 1941년에는 마침내 미국 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교잡종에 대한 월러스의 열렬한 옹호로 말미암아, ‘강력 교잡종’이 오늘날 ‘창고가 터질 듯한’ 옥수수 대풍년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은 변경할 수 없는 ― 설령 비과학적일지라도 ― 신념의 문제(Act of Faith)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위스콘신대학의 잭 클로펜버그(Jack R. Kloppenburg Jr.), 프랑스 INRA의 장-삐에르 베를랑(Jean-Pierre Berlan), 하버드대학의 리처드 르원틴(Richard C. Lewontin)과 같은 존경받는 과학비평가와 경제비평가들은, 동일한 연구 투자를 했을 때 전통적인 옥수수 육종 프로그램이 교잡종보다 항상 더 나은 성과를 낸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가정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이들 비평가들에 따르면, 교잡종을 채택할 때의 유일한 이점은 종자회사들에 이익이 남는다는 사실뿐이다.
교잡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교잡종 종자는 같은 종에 속하는 두 개의 원연 모(母)계통의 1세대(F1) 자손이다. 이 종자는 단지 한 세대에서만 각 모체가 지닌 원하는 유전적 특성들을 통합하여 발현시킨다. F1 교잡종으로부터 얻어진 씨앗은 불임이 되거나, 좀더 흔하게는 ‘제대로 번식하는 데’ 실패해서 F1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원하는 유전적 성질들을 발현해 내지 못한다. 산업화된 농업 시스템 하에 있는 농부들은 기계수확과 식품가공 시에 작물의 균일성이 엄격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교잡종을 다음 해에 다시 심으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반면, 브라질 같은 국가에 사는 자원이 부족한 농부들은 자신들이 재배해 온 전통 품종과 교배해 품종개량을 하는 원천으로 이용하기 위해 종종 F2(2세대) 교잡종 씨앗을 받는다. 이런 방식으로 브라질, 부룬디, 혹은 방글라데시에 사는 숙련된 지역 육종가들 ― 이들 중 대부분이 여성인데 ― 은 유용한 유전적 특징들을 분리해 내고 이를 자신들의 직접적인 수요에 적응시키고 있다. 가장 흔한 교잡종 작물은 옥수수, 목화, 해바라기, 사탕수수 등이다.
최근까지 쌀, 밀, 보리, 귀리, 호밀과 같이 크기가 작은 곡물들과 대두 등의 콩과(科) 작물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상업적 교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현재 변화하고 있다. 중국과 같은 몇몇 국가의 정부들과 록펠러 재단이나 코넬대학 같은 기관들에 의해 주도되는 공공 육종 계획에 의해 상업용 교잡종 벼가 이미 개발되었다. 종자 다국적기업들 역시 발빠르게 뒤를 쫓고 있다. 보다 최근에 이르면, 몬산토와 노바티스(Novartis) 사와 같은 거대기업들은 F1 교잡종 밀의 전망에 대해 거의 시적이라고 할 정도의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구상에서 어떤 다른 작물보다도 더 넓은 땅에서 재배되는 밀의 경우, 이 작물의 새로운 교잡종을 독점하는 것은 종자 회사들에게 횡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기술:
농부들과 식량 안전에 대한 생물학전(biological warfare)으로서의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 기술은 농부들이 수확한 씨앗을 다시 심어 성공을 거둘 수 없게 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이 기술은 종자회사들이 자사 소유의 유전적 특성들 ― 제초제저항성이나 해충저항성을 나타내는 특허받은 유전자 ― 을 적재할 수 있는 ‘기반(platform)’임과 동시에, 농부들이 그들의 종자에 걸려들어 화학적 악순환 고리(chemical treadmill) 속으로 빠져들게끔 하는 수단이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심지어 브라질의 혁신적인 농부들조차도 종자회사가 보유한 유전적 특성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년 종자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터미네이터 기술이 목표로 하는 시장은 명백히 제3세계의 농부들이다. 델타 앤 파인 사는 특허 취득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낸 때부터 줄곧, 자사의 기술보호 시스템(TPS)은 종자회사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에 첨단기술 품종을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선전해 왔다. 이 회사는 수 년 이내로 4억 5백만 헥타르에 이르는 토지에서 터미네이터 종자가 재배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는 남아시아 전체 면적과 거의 맞먹는 규모이다. 터미네이터 기술이 아직 목화와 담배에 대해서만 시험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은 이 기술이 모든 종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델타 앤 파인 사는 특히 인도, 중국,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들에서 쌀과 밀을 경작하는 농부들이 우선순위가 높은 시장이라고 언급해 왔다. 이 회사에 따르면 터미네이터 기술의 가치는 고급 원예 작물의 경우 헥타르당 4달러에 달할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 특허는 1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농부들이 종자를 보관하는 수백년 묵은 관행은 제3세계 농부들에게 실로 엄청난 불이익을 주고 있다. 그들은 ‘쉬운 길’을 선택하고 더 새롭고 보다 생산적인 품종들을 경작하지 않음으로 해서 무의식중에 낡은 품종들에 스스로를 결박하고 있다.’ ― 해리 콜린스 박사, 델타 앤 파인랜드 사의 기술이전 담당 부사장(1998년 6월 12일)
터미네이터 기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터미네이터 기술은 ‘식물 유전자 발현의 통제’에 관한 광범위 특허를 적용한 주요 사례이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기본적으로 어떤 특정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촉발시킬 수 있는 유전자조작된 자살 메커니즘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 결과 다음 세대의 씨앗들은 스스로 독소를 분비하여 자살하도록 되어 있다. 종종 사용되는 촉발요인은 씨앗에 가해지는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이다. 터미네이터 기술에서 주로 많이 쓰이는 방법은 하나의 식물에 세 개의 새로운 유전자를 한 세트로 삽입하는 것이다[상자글1 참조]; 또다른 방법은 두 개 또는 세 개의 유전자를 두 식물에 나눠 넣고 이들이 나중에 교차수분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그 결과는 항상 다음 세대에 죽은 씨앗으로 나타난다.
세번째 유전자는 리프레서(Repressor)를 만들어내도록 조작된다[그림 1c]. 리프레서는 터미네이터 기술로 만들어진 식물이 어떤 특정한 외부의 자극 ― 특정 화학물질, 온도의 급격한 변화, 삼투압 충격 등 ― 에 노출되기 전까지는 리콤비네이즈 유전자가 켜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종자가 판매되기 직전에 씨앗에 [특정 화학물질을 가하는 등의] 미리 정해진 특정 자극을 주면 리프레서의 작동은 중단된다. 그리고 리프레서가 더 이상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리콤비네이즈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게 된다. 이제 생산된 리콤비네이즈는 스페이서, 즉 ‘안전장치’를 제거한다. 독소생성 유전자 앞에 있는 프로모터는 씨앗이 성숙하는 후기 단계에 가서야 활성화되기 때문에, 그 때가 되어야만[즉, 2세대 자손 이후가 되어야만] 씨앗을 죽이는 독소의 생산을 시작한다. 터미네이터 기술에 주로 이용되는 유전자는 다음과 같다: 독성 유전자 …………………… R.I.P. 유전자 (ribosomal inhibitor protein) |
터미네이터 기술은 제3세계에 유전자조작된 작물을 확산시키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다. 종자회사들은 이제 ‘효율적인’ 특허체제가 결여된 제3세계에서도 자사의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면서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지속적인 수익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적절한 생물안전성관련 법률을 갖추고 있지 못한 제3세계 국가들은 터미네이터 기술이 안전하며 형질전환된 특성들은 심지어 교차수분을 하더라도 2세대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가정에 기반해 이 기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충분한 근거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 아니다. 모든 다른 유전공학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기술의 직·간접적 영향이 어떤 것일지는 예측불가능하고, 유전공학에 본래 내재해 있는 모든 위험들을 수반한다. 터미네이터 기술이라는 유전자 칵테일은 새로운 독성물질과 알레르기 유발물질들이 우리의 식품이나 동물의 먹이 속에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가장 큰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은 터미네이터 유전자 그 자체가 이웃 들판의 작물이나 야생 근연(近緣)종 잡초의 농업 유전자 풀(pool)을 오염시켜 그 속에 시한폭탄을 장치하게 될 가능성이다. 독소생성 유전자의 일시적인 ‘유전자 발현 억제(gene splicing)’나 터미네이터 자폭장치의 활성화 실패로 말미암아 그런 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상자글2 참조].
상자글 2. ‘유전자 발현 억제’ 현상이 발견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었다. 그 계기는 동일한 붉은색 유전자를 갖도록 유전자조작된 10,000그루의 페튜니아가 심어진 들판에서, 흰색이나 분홍색의 꽃이 핀 개체가 다수 발견된 것이었다.1 식물들은 만약 어떤 유전자가 외부로부터 침입해 들어온 것이라거나 자기 자신의 DNA를 복제한 것이라고 인식했을 때, 그 유전자와 그것을 발현시키는 프로모터를 비활성화시킬 수 있다.2 더욱 큰 문제는 일단 비활성화된 유전자가 수 세대가 지난 이후에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터미네이터의 독소생성 유전자를 조절하는 데 사용되는 LEA 프로모터는 식물에 매우 흔한 것이고, 많은 종들간에 두드러진 유사성을 보인다; 그래서 일단 LEA 프로모터가 덧붙여지면, 식물은 그것의 스위치를 끌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시장에 내놓기 위해 식물을 번식시켜 수를 불리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즉, 식물의 자체 작용에 의해 LEA 프로모터가 비활성화될지]의 여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러한[LEA 프로모터가 비활성화된] 식물들의 씨앗은 판매되기 전에 테트라사이클린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로 인해 기능을 막고 있던 일련의 인과적 연쇄(그림 1a)가 제거되지만, 생명 사이클의 끝에 이르러도 독소는 생성되지 않는다. 발현이 억제되었지만 그 기능은 유지되어 있는 독소생성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는 꽃가루가 이웃의 논밭이나 숲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가능성이 있는 또하나의 시나리오는 일부 식물들이 테트라사이클린 처리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개의 씨앗을 담그는 데 얼마나 엄청난 양의 항생제가 필요하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가 흘러야만 하는 상황에서, 모든 씨앗이 화학약품을 흡수했는지의 여부를 누가 일일이 점검할 수 있겠는가?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 모든 새로운 유전자들을 지닌 꽃가루가 퍼져나갈 것이다. 만약 이후 계통에서 리프레서 유전자가 한쪽으로, 독소생성 유전자와 리콤비네이즈 유전자가 다른 한쪽으로 전해지는 식으로 유전자들이 나뉘어 후대에 전달된다면 이 중 두번째 식물에 의해 생산된 모든 씨앗은 자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설사 세 개의 유전자 모두가 함께 후대로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테트라사이클린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화학약품에 식물이 노출될 수도 있다. 참고문헌 1. Steinbrecher, R. A., 1996. ‘From Green to Gene Revolution,’ The Ecologist Vol. 26 No. 6. pp. 273-281. |
상자글 3. 테트라사이클린은 광범위한 종류의 세균에 대해 유효한 광역 항생물질이다. 이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의료상의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잘못 쓰이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토양은 식물의 건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를 비롯한 미생물들로 가득 차 있다. 식물들은 보통 토양 미생물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는데, 반면 테트라사이클린에 담갔던 씨앗들은 미생물 토양 그물망의 깨지기 쉬운 균형을 파괴하여 그 주변을 죽음의 지대로 만든다. 그 결과, 농부들은 자신들의 작물을 질병에서 보호하기 위해 화학약품에 의존해야 하고 작물의 성장을 위해 비료를 써야만 하게 된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생물다양성을 고갈시킬 뿐 아니라 토양마저 파괴하는 것이다. |
전세계 식량 공급량의 15∼20% 정도가 종자를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파종하는 가난한 농부들에 의해 재배되고 있다. 이 농부들은 최소 14억의 인구를 먹여살리고 있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이런 사람들의 생계를 위험에 몰아넣음으로써 종자회사들을 ‘보호’한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농경상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제로이기 때문에 논밭에 유전공학을 도입하는 도박을 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식량 안전을 위험에 빠뜨려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터미네이터 기술이 즉시 작동하건 나중에 작동하건 간에, 그것은 농부들과 식량 안전에 대한 생물학적 전쟁이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또한 숨겨져 있는 어두운 측면이 앞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예시한다. 이 기술은 여타의 형질전환 특성들을 담을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로서, 어떤 특성에 대해서도 그것을 켜거나 끄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터미네이터 기술은 종자를 수출함으로써 [다른 국가에] 작물의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가능성 ― 즉각 효력을 발생할 필요가 없거나, 특정 화학물질 혹은 조건 하에서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작동하지 않는 ― 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의 식량과 경제에 대한 이런 형태의 생물학적 전쟁은 군대와 안보 영역에서 뜨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터미네이터, ‘괴물’을 만나다
미 농무성과 델타 앤 파인랜드 사가 터미네이터 기술에 대해 특허을 받았음을 공표한 지 두 달도 채 안되어 몬산토가 그 회사를 사들였다. 17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구매 계약의 공표는 생물다양성협약의 회합이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도 ― 역주]에서 열리고 있던 5월 11일에 이루어졌다. 이를 알리는 신문기사들이 각국 대표단의 귀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터미네이터 기술이 회의의 논쟁거리 중 하나로 떠올라 있던 상태였다. 그러자 심지어 미 농무성이 터미네이터 기술과의 연관 때문에 공격을 받을 때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던 미국 대표단이 눈깜짝할 사이에 몬산토 편을 들어 싸움에 나섰다. 클린턴 대통령의 전임 백악관 측근들이 몬산토의 로비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고, 우루과이 라운드 기간 내내 미국 무역대표부를 책임졌던 미키 칸토(Mickey Cantor)가 몬산토 이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여기서 미국 정부가 보인 열의는 그리 놀라운 것이 못된다.
종자 기술은 1860년 핼릿 소령이 독점에 대한 열정을 표출한 이래 먼 길을 걸어왔다. 핼릿 소령이 자신의 페디그리 종자를 상표화하기 불과 몇 달 전에 열렸던 위스콘신 농업 박람회에서, 기조연설자는 농부들을 작물로부터 떼어놓는 새로운 기술들을 조심하라고 농부들과 과학자들에게 경고했다. 여기서 기조연설자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농업에서의 증기기관 이용에 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그는 농업에서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누구의 이해관계에 봉사할 것인지를 우려하고 있었다 ― 그는 농업기술의 임무가 농부들에게 충분한 생계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터미네이터 기술이 오늘날 전세계의 농부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도록 내버려두기 이전에 에이브러햄 링컨의 충고를 귀담아 듣는 편이 좋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끝장내기
대중조직들과 각국 정부들은 터미네이터 기술을 중단시킬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금지하는 국제법과 현존하는 정부간 협약을 통해 법적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다음은 몇 가지 가능성들이다:
1. 현재 미 농무성과 델타 앤 파인랜드의 특허 신청이 전세계 곳곳에 계류되어 있다. 이 특허신청은 대중의 도덕성과 충돌한다는 것을 근거로 거부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거부되어야만 한다. 터미네이터 기술은 식량 안전에 대한 위협이며 농업에서의 생물다양성에 파괴적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하여 각국 정부들은 심지어 그 말썽많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의 규정에 따른다고 할지라도 터미네이터 기술의 특허를 거부할 완전한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국 정부들은 또한 (WTO에 따르면) 터미네이터 기술이 자기 영토 내에서 다른 국가들에 의해 이용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에도 동의하는 것이 된다.
2. 미 농무성이 [델타 앤 파인랜드를 사들인] 몬산토 사에 특허를 넘겨주는 것을 거부하도록 (미국 안팎에서) 압력이 주어져야 한다. 또한 미 농무성 ― 3월 3일의 특허 허용 발표에 스스로도 놀랐을 ― 은 미 특허상표국(US Patent and Trademark Office)에 애초의 결정을 재고하고 그것이 정말 대중의 도덕성과 충돌하지 않는지의 여부를 판단해 주도록 청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3. 1972년 체결된 생물학무기 금지협약(Convention on the Prohibition of the Development, Production, and Stockpiling of Bacteriological and Toxic Weapons, and on Their Destruction)에 서명한 100여개 국가들은 경제적 생물학전의 한 형태인 터미네이터 기술의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이는 농촌공동체에 대한 전쟁을 일으킬 뿐 아니라 국가의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농업 경제를 파괴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4. 1998년 10월에 열릴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onsultative Group on International Agricultural Research, CGIAR) ― 이는 세계 최대의 공공 식물육종 네트워크이다 ― 의 회의에서는 터미네이터 기술에 대한 반대와 그것의 이용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5. 생물다양성협약의 과학기술관련 부속기구는 1999년 5월의 회의에서 터미네이터 기술이 농업 생물다양성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하고 그것의 제거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세계무역협약의 규정 하에서 [터미네이터의] 특허와 기술을 금지하려는 각국의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