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밖의 김지하, 서글픈 자기분열
장정일의 독서일기
옹치격
김지하 지음/솔·5000원
출처 : 한겨레 등록 : 2013.01.11 20:16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69344.html
지겹다. 지난 4일 김지하는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돈이 없어서 두 아들을 대학에도 보내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사실과 달리 장남은 모 예술전문대학교를 일찌감치 졸업했으며, 2003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학고재)에는 영국 런던의 명문 미술 학교에 재학중인 차남에 대한 자랑이 번히 나와 있다.
글쟁이들은 돈이 없으면 출판사를 방문해 목돈이나 급전을 마련한다. 김지하같이 ‘특에이(A)급’ 필자는 ‘글빚’을 지기로만 하면, 순식간에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할 수 있다. 아끼는 손주들이 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을 장모였던 박경리 여사가 수수방관하지도 않았을 테고, 아무 글이나 뚤뚤 뭉쳐 <조선일보>에 갖다 던지기만 해도 등록금 정도는 너끈히 나온다. 그런데 왜 이런 거짓말을 밥 먹듯 할까?
김지하가 고문후유증으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고, 그 때문에 경제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흰 그늘의 길>에 따르면, 그는 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던데다가, 글로 폭로가 가능한 작가였던 때문이다. 경제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탓이다.
그의 세계 여행기인 <김지하의 예감>(이룸, 2007)을 보면 그가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7년 동안 독방에 있었다”고 허풍을 떨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내리 7년 동안 독방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저 말도 사실이 아니다. 그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4개월, 1970년 ‘오적’ 사건으로 100일, 1975년 민청사건으로 1년간의 영어 생활을 하다가, 같은 해에 재수감되어 5년 9개월을 보냈다. 그가 있었던 독방이 면회나 운동이 허용되지 않는 ‘먹방’이라면 모를까, 1인용 독방은 거물에게만 주어지는 대접이다. 1인용, 2인용, 8인용 병원 입원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런 딴죽은 물론 치사하지만, 그 자신부터 “쥐새끼 같은 년”이니 뭐니 해 가면서 법률로 정해진 권리를 행사한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를 도적 취급하는 억지와 박근혜를 찍지 않은 48%를 가리켜 공산화를 좇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폭력을 중지해야 한다. 게다가 저런 사소한 거짓말을 방치하면 그게 모여서 신화가 된다. 일례로 자신의 미국 강연을 계기로 하여 하버드대학교에서 <진달래>(Azalea)라는 한국문학 전문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다는 <김지하의 예감>에 나오는 한 구절이 그렇다. 사정이 궁금해서 그 잡지를 만든 한국인 편집자 이영준 교수에게 문의해 보니,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의 망상이었다.
여성 대통령이 등극하면 일시에 모권(母權)이 회복되고 후천개벽 세상이 된다는 김지하의 주장은 영웅사관의 복창이다. 그는 <옹치격>(솔, 1993)에서 동학의 포접제에서 영감을 받은 주민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주민들의 풀뿌리 조직이 중앙 권력(청와대·국회·법원)을 포위하는 것이 후천개벽이요, 생명과 모심의 모권 정치다. 여성 대통령으로 후천개벽이 된다는 그의 주장은 서글픈 자기분열이다.
장정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