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예산 연구논문은 무료공개”, 공개접근 정책 확대
출처 : 한겨레 사이언스온 2013. 02. 27
http://scienceon.hani.co.kr/84769
백악관 “논문 출판 이후 12개월 이내에 공개”
연구개발 연방기관에 6개월내 세칙 마련 지시
영국·유럽에도, 과학논문 출판·유통 변화 전망
영국이 국민 세금인 정부 예산의 지원으로 이뤄진 과학 연구의 결과물은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게 하자는 ‘공개접근’ 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데 이어, 미국도 그동안 부분 시행되던 공개접근 정책을 확대 시행하기로 해 온라인 시대에 과학 논문의 출판과 유통에 적잖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의 누리집을 보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청(OSTP)은 최근인 2월 22일 “연 1억 달러 이상의 연구개발비 예산을 쓰는 연방기관은 연구 결과물(논문과 데이터)에 대한 공중 접근을 확대하는 계획을 6개월 안에 마련하라”는 행정지시를 발표했다. 연 1억 달러 이상의 연구개발 예산을 쓰는 연방기관은 미국과학재단(NSF)을 비롯해 19곳가량으로 추산되는데, 이번 조처가 시행되면 한해에 18만 편 정도의 과학 논문이 구독료 없이 일반에 무료 공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청 발표자료(PDF)
이번 조처에 앞서 연방기관인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이미 ‘퍼브메드 센트럴(PubMed Central)’라는 공개접근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해 과학 논문의 공개접근 정책을 시행해왔다. 국립보건원의 재정 지원을 받은 연구 논문은 학술지 발표 이후 12개월이 지난 뒤 무료 공개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번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이렇게 부분 시행되던 정책을 전면 확대한 것이다.
공개접근 정책의 확대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미국 정책은 영국 정책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논문 출판 비용을 연구비 예산에 반영함으로써 구독료 필요 없이 논문을 출판과 동시에 무료 공개할 수 있게 하는 영국의 공개접근 정책과 비교하면, 미국 정부는 학술지 출판사에 구독료 수익을 보장하는 1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에 논문을 무료 공개하는 정책을 취한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과학저널 <네이처> 등에서는 이번 조처는 완전한 공개접근을 요구하는 공공학술운동 집단과 출판 수익 감소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상업출판사 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에서 마련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조처는 오랜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미국 과학계, 출판계, 의회에서는 납세자의 돈으로 이뤄지는 과학 연구의 결과물을 무료로 공개해야 하는지, 공개한다면 언제가 좋은지를 둘러싸고 지난 몇 년 간 의회 청문회를 비롯해 논쟁이 이어져 왔다. 지난해엔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는 연구의 학술지 발표 논문을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이 백악관에 제출됐으며, 의원 일부는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은 연구 논문은 출판 6개월 안에 무료 공개되어야 한다는 ‘과학기술 연구물의 공정한 접근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청의 행정지시 발표를 보면, 공개접근을 시행해야 하는 연방기관들은 기존의 학술 논문과 데이터는 어떻게 할지, 공중이 디지털 데이터를 찾아 접근하는 능력을 어떻게 높일지 등에 관한 8가지 이행 사항을 담은 공개접근 시행 계획을 6개월 안에 마련해야 한다. 뒤이어 정책의 본격 시행은 1, 2년 안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기술정책청은 공식 블로그에서 “시민 세금으로 이뤄진 과학 연구의 결과물은 시민이 손쉽게 볼 수 있어야 한다”며 “과학기술정책청은 그동안 폭넓게 의견을 모으고 연방기관 실무연구그룹을 꾸려 이 문제를 살펴왔으며 과학자, 과학단체, 출판인, 의원, 대중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 정책을 마련했다”고 정책 수립 과정을 설명했다. 공개접근 학술운동을 이끌어온 과학저널그룹인 ‘플로스(PLoS)’는 따로 성명을 내어 “이번 행정지시는 공개접근 원칙이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라며 “이런 발전은 열린 접근과 열린 정부로 나아가는 주요한 성취”라고 환영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영국은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 예산의 일부를 일종의 게재료인 논문출판비용(APC)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과학 논문을 학술지 출판과 동시에 일반에 무료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골드 공개접근(gold open access)’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위원회(EC)도 온라인에 기반을 두는 공개접근 방식의 출판 정책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이 정책을 오는 4월1일 첫 시행에 들어가 몇 년에 걸쳐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공개접근 정책 발표는 과학 논문의 출판과 유통 경로가 구독료 중심의 상업출판에서 지식의 공개와 공유를 강조하는 공개접근 방식으로 점차 바뀌는 추세를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한편에서는 이번 정책이 ‘출판과 동시에 논문의 무료 공개’를 주장해온 완전한 공개접근 요구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공개접근 저널인 <플로스>의 창설에 참여했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생물학자 마이클 아이젠은 블로그 글에서 “이번 조처는 지금보다는 나은 좋은 일”이라고 평하면서도 국립보건원의 공개접근 정책 모델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으며 즉각적인 공개접근을 시행하지 못하고서 공개 유예기간을 따로 둔 점 등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냈다.
유네스코, <공개접근의 발전과 촉진을 위한 정책 안내서>
“과학 정보는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산하는 가장 뛰어난 산출물이면서 동시에 기술혁신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공개접근(Open Access, OA)은 동료심사를 거친 학술적인 연구 정보를 만인한테 자유롭게 공개하는 조처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권리를 지닌 자들이 복사하고 사용하고 배포하고 전송하며 원저자를 적절히 밝히면서 합법적인 활동에 맞는 어떠한 다른 형식으로도 파생 저작물을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권리를 전 세계에 허용하는 게 필요하다. 공개접근은 학문의 전파를 늘리고 신장하기 위해서 정보와 통신 기술을 사용한다. 공개접근은 자유, 유연성, 공정성과 관련된 사안이다(OA is about Freedom, Flexibility and Fairness).
학 술저널의 구독료 상승이 공개접근 운동을 추동하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디지털과 인터넷의 등장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언제나 어떤 형식으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었다. 공개접근을 통해 세계 각지의 연구자와 학생은 지식에 접근할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출판물은 더 많은 이들한테 읽혀 연구물의 잠재적 파급력은 증가한다. 지식에 대한 접근의 증가와 지식의 공유는 균등한 경제와 사회 발전, 문화간 소통으로 나아가며 혁신을 촉발할 잠재력을 지닌다.”(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