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무상의료가 정말 1200명을 죽였을까
[토요판] 뉴스분석 왜?/ ‘스태퍼드 병원’ 비극의 진상
▶ <조선일보>는 최근 “무상의료 영국, 한 대형병원서 1200명 숨진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시작으로 영국의 무상의료 제도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이어 보도했습니다. “의료비서 건보비중 80% 넘으면 영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며, 건강보험 보장률을 현재의 63%에서 80%까지 늘리겠다는 새 정부 정책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죠. 과연
영국의 무상의료 그 자체가 문제였을까요? 혹시 아전인수격 보도는 아니었을까요. 그 속내를 들여다봅니다.
출처 : 한겨레 등록 : 2013.03.01 20:50 수정 : 2013.03.01 21:04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576230.html
“이한 김, 6번 방으로 오세요.”
병원 로비에 걸린 스피커는 아이의 이름을 낮게 호출했다. 이곳은 영국 버밍엄에 있는 한 병원이다. 지난 2월 초, 나와 아내는 태어난 지 70일이 된 아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영국에서는 생후 8주가 지난 아기는 반드시 병원을 찾아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 유명하다는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를 현장에서 처음 접하는 참이었다.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무척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아담한 방의 크기는 한국의 여느 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의사가 간호사 없이 환자를 맞는다는 점 정도가 한국과 달랐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온화한 인상인 ‘닥터 루멘스’는 아들의 상태에 관해 상세히 물었다. 어투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그는 아들의 의료 기록을 보면서 몇 가지를 확인하더니, 청진기를 들고 아이를 검진하기 시작했다. 마침 의사와 마주 앉은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초로의 의사는 의자에서 슬며시 내려오더니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들의 눈과 귀, 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이의 옷을 벗기라고 하더니, 허리와 무릎 관절까지 하나씩 구부렸다 펴보면서 확인했다. 밀려드는 환자들에 쫓겨 전쟁같이 진료를 보는 한국의 의사들을 봐온 아빠 엄마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올림픽 개막식의 침대와 간호사를 이해하다
의사의 친절한 모습에 우리도 편해졌나 보다. 초보 아빠와 엄마는 아기의 건강에 대해 안 그래도 궁금한 게 많은 참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죄다 물었다. 산모의 건강 문제까지 상담을 했다. 의사의 방에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방에서만 30분을 넘게 보냈다. 아내는 영화배우 제러미 아이언스를 닮은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기까지 하다며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다음 주에는 ‘헬스 비지터’라는, 말하자면 방문 간호사가 집까지 찾아왔다. 방문 간호사는 아내에게 산모와 아이가 먹을 비타민 한 통씩을 전해주고, 주변 육아시설 등을 안내해줬다. 다시 2주 뒤, 우리는 닥터 루멘스의 안내에 따라 그를 다시 찾았고, 아이 건강에 대해 다시 물어볼 기회를 가졌다. 나는 학교 일 때문에 병원에 따라갈 수 없었는데, 아내의 말로는 이번에도 상담 시간은 30분이 넘었다고 했다.
물론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지난 3주간의 개인적인 경험 덕분에, 나는 영국인들이 국가보건서비스를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던 것으로 악명 높은 대처 정부가 국가보건서비스만큼은 감히 세게 건드리지 않은 이유도, 지난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거대한 스펙터클에 어처구니없이 수백대의 침대와 간호사들이 대거 등장했던 이유도 어림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모든 정부 부처의 예산을 20%씩 깎는 대대적인 재정 감축 정책을 펴고 있는 현재 영국 연립정권도 2010년 선거 당시에 국가보건서비스 예산만큼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까닭도 말이다.
1948년 도입된 이래 국가보건서비스는 수많은 부침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기본 원칙에 따라 뼈대를 유지해 왔다. 여기서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새겨들으면 꽤나 감동적이다. 첫째, 모든 이의 필요에 부응한다. 둘째, 치료 시점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셋째, 환자의 지급능력이 아니라, 의료적인 필요에 따라 제공한다. 따라서 영국인이라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거나, 아플 일은 없다는 의미가 된다.
꽃병 물 마시고 병상에 볼일…
의료진 직무유기 알려지면서
“영국의 무상의료 제도가
의료서비스를 악화시키고
국민건강 위협한다”는 주장
조사 보고서를 뜯어보면
“병원의 인력·비용감축이 핵심”
정부가 국가보건서비스에
친시장정책 꾸준히 도입하면서
공공병원에도 일정 수익 내면
경영자율권 주겠다는 약속
병원은 그 기준 맞추려 무리수
이와 같은 국가보건서비스의 빛나는 명성에 먹칠을 남긴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지난 2월6일, 영국의 주요 신문은 영국 중부의 한 병원에서 발생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스태퍼드 지역의 한 병원에서 경영진과 의료진의 직무유기 때문에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최대 1200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의뢰에 따라 작성된 보고서를 보면, 기본적인 음식과 음료가 환자들의 손이 닿는 곳에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일부 환자들이 목이 마른 나머지 꽃병 속의 더러운 물을 마시기도 했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해도 의료진이 도와주지 않아서 결국 병상에서 볼일을 보는 상황도 자주 벌어졌다. 언론을 통해서 보고서의 내용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내용만 소개된 측면도 있지만, 스태퍼드 병원의 직무유기는 범죄에 가까웠다. ‘국가보건서비스의 나라’ 영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셈이었다. 여기까지는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로 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이야기가 단순한 외신으로 끝나지가 않았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스태퍼드 병원 기사를 1면에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기사의 두번째 문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 “전 국민이 치료비 걱정 없이 진료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시행한 무상의료 제도가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오히려 국민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일보는 1주일 뒤 비슷한 기사를 실으면서 영국의 사건이 ‘무상의료의 한계’ 때문이라며 제목을 아예 “의료비서 건보 비중이 80%를 넘으면 영국 같은 부작용”으로 뽑았다. <동아일보> 역시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서 “스태퍼드 병원은 한계에 봉착한 영국 국가보건서비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영국에 있는 2312개의 병원 가운데 하나인 스태퍼드 병원의 예가 어떻게 무상의료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비화하는지, 직관적으로도 바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신문들이 먼 나라 이야기에 이렇게 발벗고 나서는 이유가 결국 우리나라 무상의료 혹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정작 사건의 앞뒤 사정을 하나씩 뜯어 보면 보수신문의 주장은 사실과 멀어 보인다.
다섯번의 조사보고서, 두번의 총리 사과
첫째, 사건의 발단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 스태퍼드 병원의 ‘만행’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을까. 이야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보건서비스 산하의 병원 감독 기관인 보건위원회(Healthcare Commission)는 병원 관련 통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문제의 스태퍼드 병원의 사망률이 다른 병원에 견줘 이상할 정도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위원회는 곧 병원 쪽에 소명을 요구했지만, 병원은 기록상의 오류라는 엉뚱한 설명을 내놓았다. 위원회가 독립적인 조사단을 꾸려 진상을 살펴본 결과, 병원 쪽의 ‘만행’이 알려지게 됐다. 때는 2009년의 일이었다. 파장은 컸다.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사망한 환자들의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정부의 관리 감독이 실패했던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 뒤로도 영국 정부는 네 차례에 걸쳐서 별도의 조사단을 꾸려서 더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다섯번째 보고서다. 이번 보고서는 무려 2년 반의 조사 과정을 거친 뒤 나온 것으로, 자그마치 1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 속에는 사건의 상세한 본말과 290개에 이르는 정책 조언을 담고 있었다. 사건의 성격상 이 문제는 다시 화제가 됐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유족들에게 다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주목할 대목은 영국 정부가 스태퍼드 병원의 문제를 먼저 포착하고, 문제 해결에 나섰고, 2명의 총리가 같은 사건을 두고 한번씩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영국은 2000년 초반부터 아예 전국 병원들의 사망비를 인터넷에 공개해서 환자들이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스태퍼드 병원 사건은 국가보건서비스를 둘러싼 영국 시스템의 실패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국가보건서비스의 자정 능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돌멩이가 옥돌 사이에서 지나치게 오래 숨겨져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면, 결국에는 옥석이 가려졌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이 상황을 한국에 적용해 보면,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한국에서도 스태퍼드 병원과 같은 사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영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병원들 사이의 사망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겨레21>을 통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내부적으로 작성한 전국 대형병원 사망률 정보가 보도된 적은 있지만, 정부가 아직 이 자료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는 없다. 당시 자료를 보면, 이른바 대형병원 사이에서도 사망비 격차는 무려 3배나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는 사망 환자들의 질환별 중증도를 고려해서 병원들의 사망비를 수평 비교할 수 있도록 재가공한 것이었다. 따라서 사망비 격차가 3배가 난다는 말은, 사망비가 높은 병원에서 숨진 환자 3명이 만약 사망비가 가장 낮은 병원에 갔다면, 그 가운데 1명만 사망하고 2명은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병원들 사이의 의료 서비스 차이는 매우 심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대해서 영국 정부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우리나라에 스태퍼드 병원이 있다면? 물론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다. ‘알 수 없다’는 답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비유하자면, 영국에서는 고름을 늦게라도 확인하고 터뜨렸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고름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얼마나 심각하고 곪고 있는지 모르는 셈이다. 참고로,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예방의학)의 ‘환자 안전의 국내외 동향’ 자료를 보면, 의료진의 크고 작은 부주의 때문에 한해 사망하는 환자의 수는 1만7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앞서 확인한 대로, 그 사례들이 병원별로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지는 않다.
둘째, 스태퍼드 병원 사건의 원인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보수언론의 주장대로라면 영국의 무상의료가 참사의 원인이겠지만,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의 원문을 보면 까닭은 달리 파악된다. 핵심은 병원의 무모한 비용 감축이었다. 병상이 350개인 이 병원은 2006~2007년에만 예산을 1000만파운드(1650억원)나 삭감했다. 이에 따라 52명의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야 했는데, 그때 이미 병원에는 간호사가 정원에서 77명이나 부족하던 참이었다. 병원에 사람이 모자라다 보니, 환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었다.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병원 직원이 모자라는 참에 간호사를 줄인 것을 보면 병원 이사회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었다… 병원 이사회 기록을 보면, 온통 인력 감축으로 인한 경제효과 얘기만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참사 규모는 그 10배
왜 병원은 이렇게 비용 감축에 목을 매달았을까. 다름 아닌 중앙정부에 책임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영국 정부는 이른바 소비자 선택권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국가보건서비스 공공모델에 민간과 시장 요소를 계속 도입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국가보건서비스에 민간병원을 유치하는 등 친시장적인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스태퍼드 병원 같은 공공병원에는 엄격한 수익 기준을 통과하면 경영 자율권을 일부 행사하도록 해주는 정책도 함께 폈다. 스태퍼드 병원은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다가 이와 같은 대형 사고를 친 셈이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의료 분야에 만연한 돈과 인센티브, 성과에 집착하는 불건전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바꾸어 말하면, 이번 사건의 원인은 영국 국가보건서비스나 무상의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가 의료 분야에 민간의 경쟁 원리를 어설프게 도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 맞다. 보수언론의 진단은 실제 증상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보수신문들이 진단하듯이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는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의 대기 기간이 긴 것으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그나마 공신력 있는 몇개 자료를 찾아보면,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평가한 보건의료제도 평가 순위에서 영국은 전체 191개국 가운데서 18위를 차지했다. 다른 주요 나라들의 순위를 보면 프랑스(1위), 이탈리아(2위), 일본(10위), 덴마크(34위), 미국(37위)이었다. 우리나라는 파라과이와 세네갈 사이에서 58위를 차지했다. 미국 워싱턴에 자리잡은 민간 연구기관인 코먼웰스가 2011년 내놓은 11개 서구 국가간 비교 자료를 보면, 영국은 스위스와 함께 가장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두 자료의 신뢰성을 두고 학술적인 논란은 적지 않다. 따라서 자료는 참고용으로만 쓰는 것이 맞겠다. 얼마간의 오차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영국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보수신문의 평가에는 적지 않은 비약이나 과장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보수신문들이 국민 건강을 그토록 걱정한다면, 애꿎은 영국 보건의료 시스템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1인당 보건의료 지출액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265달러)이나 영국(3433달러)의 3배(8233달러) 가까이 쏟아붓고도 평균수명은 정작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한 미국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봐 달라고 진심으로 권유하고 싶다.
한가지 더. 보건의료 정책의 실패를 얘기한다면 빼놓기 힘든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우리나라다. 스태퍼드 병원처럼 위치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시장의 실패로, 정부의 실패로 목숨을 잃는 생명은 부지기수다. 한 예만 보자.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가 2010년에 낸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중증외상으로 사망하는 환자 가운데 9245명은 의료 체계가 적절하게 작동했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정작 중증외상 분야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버림받았고, 정부의 관련 정책도 거북이걸음이다. 한국에는 스태퍼드 병원의 참사가 전국적으로 해마다 10배 규모로 벌어지는 셈이다. 물론 시장은 책임지지 않는다. 대통령도, 장관도 사과하는 사람은 없다. 영국에서는 스태퍼드 참사에 대해서 적어도 총리가 두 차례나 사과했다.
김기태 영국 버밍엄대학교 사회정책학 박사과정 limpid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