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1년, ‘경제영토 확장’ 없었다
한겨레 등록 : 2013.03.13 20:21 수정 : 2013.03.13 22:55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77958.html
경제효과 살펴보니
수출 늘었지만 무역규모는 줄어
무역규모 1.8%↓…홍보 비해 초라
미와 FTA 안한 일본은 무역 늘어
자동차업종 수혜 커 ‘함박웃음’
공공정책, 미에 잇따라 발목잡혀
주권훼손 우려에 재협상 더 절실
15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주년을 맞는다. 협상 단계부터 한국 사회에 많은 논란을 남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발효 이후에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다.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인 효과는 물론이고,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협상, 공공정책 훼손 우려,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 흑자는 늘었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성적표로는 한국이 상대적인 이익을 누렸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미 수출 538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524억달러)에 견줘 2.7% 늘었다. 또 수입은 391억달러로 7.3% 줄며 무역수지는 45억달러 흑자(44.1% 증가)를 냈다.
하지만 애초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경제 영토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에 비해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지난해 3월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우리나라는 7218개 품목(85.6%), 미국은 6175개 품목(87.6%)의 관세가 사라졌는데도 오히려 전체 무역규모는 946억달러에서 929억달러로 1.8% 줄었다. 더욱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일본과 비교하면, 성적은 더욱 초라하다. 일본은 같은 기간 대미 수출 1274억달러를 기록하며, 무역수지 579억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무역규모 역시 1970억달러로, 5.6%의 증가율을 보였다.
자유무역협정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은 자동차다. 현대차는 지난해 3~12월 35만3405대를, 기아차는 31만2376대를 수출했다. 각각 11%, 11.4% 늘었다. 같은 기간 대미 수출 증가율의 다섯배에 가깝다. 자동차 부품 역시 큰 재미를 봤다.
■ 계속되는 주권 훼손 우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8월 ‘자동차안전기준 시행세칙’ 일부 개정안을 공고했다. 미국·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뒤 두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 차량에는 우리의 안전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시행세칙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안전기준을 준수하면 국내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왔다. 여기에 세계무역기구(WTO)의 차별금지 원칙에 따라 다른 나라의 수입차도 같은 대우를 받았다. 국토부는 “자유무역협정 발효로 별도 안전기준이 마련됐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간소한 안전기준만을 충족한 제3국 차량이 수입돼, 우리나라 자동차 안전기준 관리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쪽 반발 때문에 이 개정안은 아직도 처리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자동차 업체들이 시행세칙 개정에 반발했다. 미국 업체들이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자동차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우리 쪽에서 ‘주권 침해’라며 반발도 있지만, 두 나라의 공동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공정책이 미국의 반발로 발목이 잡힌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환경부가 2008년부터 추진하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도 미국 정부와 자동차 업체의 반발로 시행 시기를 2013년에서 2015년으로 미뤘다. 우체국보험의 한도 확대, 굴착기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정책 등은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전에 제동이 걸렸다. 모두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무소속 박주선 의원실에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령 목록’을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탓에 23건의 법률을 비롯해 시행령(16건), 시행규칙(18건), 고시·예규(9건) 등이 개정됐다. 향후 개방 범위가 늘어나면서 법률 개정은 더 늘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제 역시 사법주권의 위기를 보여준다는 우려를 키운다.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1년간 우리나라 제도가 미국 회사의 이익에 맞게 변경되거나 우리 사회에 맞는 공공정책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필요성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최원묵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북핵 등 다른 정치적 이유로 미국과 갈등을 꺼리는 등 제도를 잘 만들어놓고 활용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이 문제이지 자유무역협정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공공정책 역시 문제가 있으면 두 나라간 협상을 통해 보완해 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쇠고기시장 추가개방 등
미 통상압력 더 커질듯
오바마 “2014년까지 수출 2배”
무역적자 등 협상요구 움직임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거세질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목표로 제시한 ‘2014년까지 수출 2배, 200만개 일자리 창출’ 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통상 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는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콜롬비아·파나마 등에 양자 협의나 다른 수단을 동원해 농산물 시장 개방과 위생수준, 지적재산권 등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전망은 이미 현실화돼 나타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중소기업 무역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5월1일까지 제출하도록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지시했다. 무역대표부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두 나라가 설립한 실무그룹 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 개선과 중소기업 불이익에 대한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 조성대 연구위원은 “미국이 상당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어 한국 수출품의 원산지 증명 검증 등의 압력과 함께 개방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쇠고기 시장도 압력에 시달릴 전망이다. 최경림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교섭대표는 지난 2월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를 만나 대화하는 중 쇠고기 추가 개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고 밝혔다.
만약 미국이 쇠고기 협상을 요청하면 우리 나라는 의무적으로 이에 응해야만 한다. 2008년 미국과 맺은 한-미 수입위생조건 협의 조항(제25조)은 ‘두 나라 가운데 한쪽이 협의를 요청하면 7일 안에 상대방이 응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미 일본은 쇠고기 수입 조건을 완화했다. 지난 2월1일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20개월 미만에서 30개월 미만으로 수입 폭을 늘렸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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