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핵전쟁 나면 국민의 0.02%만 ‘안전지대’
한겨레 등록 : 2013.04.12 20:30 수정 : 2013.04.13 10:40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82617.html
[토요판] 뉴스분석 왜? 최악의 시나리오-전쟁과 나
▷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말입니다. 전쟁이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이 됐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유사시 7000만 겨레의 안전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전쟁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떠올리기 싫은 우울한 시나리오 ‘전쟁과 나’를 떠올려봤습니다.장사정포·단거리 미사일
북한이 쏟아부으면
수도권 2500만명 절반이 위험
을지연습, 민방공훈련에
참여해본 사람 몇이나 될까
가장 먼저 대피하는 사람은
주한미군 가족과 외교관들
1~4등급 대피시설 여럿 있지만
핵 피할 수 있는 건 1등급
전국에 15개, 서울엔 1개뿐
3~4등급은 우리 집 지하실 수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한은 연일 위협의 수위를 높여가며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해당사국의 움직임은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또다시 보유하고 있는 모든 군 자산을 펼쳐놓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이는 미국도 물 밑에서 각종 정보자산을 총동원하여 북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설마 전쟁이 나기야 하겠냐’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다들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있다.
전면전은 남북한 모두가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데다 이를 가라앉히고 서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화마저 단절된 상태가 현재 남북관계의 현주소이다. 북한은 “전쟁은 시간문제”라거나 “단추만 누르면 발사… 원수들의 아성이 온통 불바다가 될 판”이라는 등 끔찍한 발언을 계속 하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우리 군 수뇌부가 독기를 단단히 머금고 있다는 전언도 들려 온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음에도 작은 불씨 하나가 대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이제 남북 갈등,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따라 우리 국민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점검해보자.
제2롯데월드와 항공기의 충돌 대비해야
언제나 시작은 작은 불씨에서 비롯한다. 지난 3월말 일반 전초(GOP)에서 이상 물체가 발견되어,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수류탄 투척과 함께 크레모아(대인 지뢰의 한 종류)를 터뜨리는 사건이 있었다.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며 북한군 침투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소동 직후 군 당국은 북한군의 침투 흔적을 찾지 못해 ‘이상 물체의 정체는 야생동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때 만약 남북간 소규모 접전이라도 펼쳐졌다면 당연히 인명 살상이 발생할 수 있다.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해올 가능성도 있다. 이상의 상황에서 남쪽이 되었든 북쪽이 되었든 상대에게 좀더 강한 대응으로 응수할 경우 확전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북한이 최근 단기속결전, 이른바 ‘3일 전쟁’ 동영상을 공개한 일이 있었다. 해당 동영상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나리오는 우선 대량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쏟아부어 국군과 주한미군의 초기 대응 능력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은 북한이 ‘서울 불바다’를 호언할 수 있게 한 주요 전력이자, 확전이 일어날 경우 가장 먼저 사용할 전력이다. 발사 지점이 어딘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둘 가운데 어느 것이든 대체로 서울 남부나 경기도 안양 지역까지도 닿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약 2500만 명 중 절반 가량이 장사정포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리 경보를 받고 지하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하철역이나 건물의 지하주차장은 장사정포에 의한 공격을 충분히 방호할 수 있다. 북한이 최전방에 배치한 자주포와 방사포를 통틀어 장사정포라고 이르는데 갱도에 숨어있는 240mm 방사포의 경우, 이동에서 발사까지 8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8분 내에 안전하게 대피처에 숨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장사정포의 위협은 무기 자체의 성능보다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전선과 가까운 곳에 수도가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 전장 환경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적절한 정보자산의 운용으로 공격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상당 부분 인명 피해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정작 문제는 장사정포의 공격 이후에 있다.
장사정포 발사로 확전이 기정사실화 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지난 10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의 96%가 전쟁에 대비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서울 불바다’ 파문이 일자 사재기로 상점들이 초토화되었던 1994년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만큼 공황도 클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대피를 하게 되는 사람들은 주한미군 가족과 외교관 등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 징후가 명백해질 경우, 군인 가족 등을 보호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과 오산 기지 등으로 이들을 모은 뒤 군용기로 수송하는 계획을 세우놓고 있다. 매년 훈련도 이뤄지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훈련은 작년 5월에 실시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전시나 각종 재난·재해 상황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전시와 관련된 훈련만 해도 전시대비훈련, 통합방위 및 향토예비군훈련·민방위훈련·화랑훈련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너무 다양한 것이 오히려 문제다. 각 훈련별로 주무기관도 안전행정부부터 국방부·소방방재청까지 다양하고, 전시에 대비한 자원관리를 담당하는 주체도 분산되어 있다. 실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연 을지연습이나 충무훈련, 하다못해 민방공훈련 때 제대로 참여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을지연습과 충무훈련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두 훈련 모두 전시, 사변 등을 대비한 비상대비훈련의 일환이다. 을지연습은 서류 조치 위주의 정부 내부적인 훈련인 반면, 충무훈련은 지역별로 실제로 물적·인적 자원을 동원한다. 어쩌면 우리 국민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 미군 가족들이 서울공항 등지에서 군용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아, 변수는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공항 인근에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가한 탓에 서울의 미군 가족도 대피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항로 근처에 이런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 전례가 없다. 전시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항공기가 건물과 충돌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자동으로 참전하게끔 하는 ‘인계철선’ 개념을 보다 강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장사정포에 장착할 수 있는 화학물질
각종 포격과 단거리 미사일 등이 쏟아지면 물론 공격을 받은 곳에서 1차 피해가 발생한다. 만일 유류고나 가스저장소 또는 각종 위험물질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공격을 받으면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근래에 누출사고가 많았던 불산이나 염소가 보관된 곳의 경우이다. 불산은 반도체 공정 등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이며, 염소는 산화제와 표백, 살균용으로 널리 사용된다.
불산과 염소는 그 성질이 상반되기 때문에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상당 부분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불산은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하로 대피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에 염소는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하로 대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떠한 위험물질이 보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개인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서울 시내에만 염소가 ○개소(정확한 개수는 보안사항)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근 주민들은 그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으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상식대로 지하에 대피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의 북핵 이슈에 가려져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생화학 무기도 핵무기 못지않은 위협이다. 미국의 저명한 안보 관련 씽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북한의 생화학 무기 능력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맑은 밤 서울 30㎢ 지역에 탄저균 10kg 살포했을 경우 최고 90만 명이, 사린가스 1톤을 7.8㎢ 지역에 뿌릴 경우 2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다. 북한은 5000톤에 달하는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시에는 1만2000톤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생물학 무기는 고열 등에 약한 특성이 있어 다연장로켓이나 스커드 미사일에 장착할 수가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북한의 경우 야간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투발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반면 화학 무기는 장사정포나 스커드 미사일에 장착하여 투발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생화학 무기가 지상에 투발될 경우 가장 안전한 대피소는 지하 2층 이하의 지하철역이다. 넓은 공간과 안전한 구조, 도시 지역 곳곳에 위치해 있다는 접근 용이성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화학 무기 대피소로서 지하철역이 가지는 문제점은 많다.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밀폐가 가능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승객들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막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문제는 지하철 선로를 밀폐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또한 장기간 대피소로 사용할 경우 송풍 및 공기 여과 시설이 필수적이다. 화장실이나 급수 시설도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화장실 및 급수 시설은 역의 지하 1층에 위치하는데 제대로 된 방호를 위해서는 지하 2층에서 밀폐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 전쟁 뒤 서울에는 공무원만 생존 가능?
이제 가장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직까지 북한이 온전하게 핵무기를 운용할 수 있으려면 많은 기술적 과제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이르면 5년 내에 북한이 그런 기술을 획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모든 ‘설마’를 무시하고 북한이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의 대피시설은 화생방 방호도에 따라 1등급에서부터 4등급까지 나누어진다. 3~4등급은 실상 ‘우리집 지하실’ 수준에 지나지 않고, 핵전쟁 상황에서 유효한 것은 1등급 뿐이다. 그런데 1등급 대피시설은 전국에 총 15개소에 불과하다. 총 수용가능 인원은 1만2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 1등급 대피시설이 있다면 그는 ‘5천분의 1의 행운아’인 셈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군사 시설을 제외하면 서울에는 1등급 대피시설이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유일한 1등급 대피시설인 서울시 신청사도 비상 상황시 행정업무 및 지휘통제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실제 상황에서 민간인이 사용할 수는 없다.
이를 단순화 해서 말하면, 핵전쟁 이후의 서울에는 청와대 공무원과 서울시 공무원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나를 비롯한 평범한 시민은 다음 생에서는 핵 위협 없는 나라나 적어도 대피시설은 잘 마련해 둔 나라에서 태어날 수 있길 바라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첫 번째 책무입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국민안전관련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롭지만, 발생하게 되면 국가로서는 최대한 국민을 지켜내야 한다. 국가안보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다. 평화를 지향하되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대책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국방비에 한 해 국가 예산의 14% 이상을 쏟아붓는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이다. 국방비 규모가 세계 12위에 달하는 대한민국이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국가안보를 너무나 협소하게 생각하여 왔기 때문이다. 정치인부터 군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안보 담당자들은 국가안보를 군사력과 동일시해왔다. 그러나 실상 국가안보에 있어서 군사력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하더라도 위기에서 제 국민을 지키지 못하면 그 국가는 존립의 근거를 상실한다.
국가위기관리 측면에서 무엇보다도 분야마다 각기 다른 주무부서들과 수십 개가 넘는 관련 법령을 통합하고 일원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다행스럽게도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보실을 신설하여 참여정부 이후로 맥이 끊겼던 일원화 추세를 다시 이어나갔다. ‘군대’가 아닌 ‘국민’의 안보를 위해,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김수빈 <디펜스21플러스> 기자 subin.kim@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