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보다 흔한 스마트폰 판매-대리점, 끝내…
동아일보 기사입력 2013-06-03 03:00:00 기사수정 2013-06-03 09:27:23
http://news.donga.com/3/all/20130602/55588776/1
■ 보조금 줄어 번호이동도 급감… 판매점 폐업 잇달아
전국에 2만 곳이 넘는 이동통신 판매점이 통신시장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통신업계의 보조금을 강하게 단속하면서 보조금 등 판매장려금을 주 수익원으로 하는 판매점의 수익구조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가입자가 포화상태에 이른 통신시장에 보조금 규제까지 겹치며 판매점이 줄줄이 문을 닫는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급증한 판매점이 골칫거리
이동통신 유통매장은 대리점과 판매점으로 나뉜다. 대리점은 주로 특정 통신회사와 계약을 하고 한 통신사 상품만 다룬다. 반면 판매점은 각 통신사 대리점과 계약을 하고 여러 통신사의 가입자를 동시에 모집한다.
대리점은 몇 년째 8000여 곳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반면 판매점은 2007년 8770여 곳에서 올해 초 2만3000여 곳으로 6년 만에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대리점과 판매점을 합치면 3만1000여 곳으로 편의점(2만4000곳), PC방(1만5000곳)보다 많다. 자영업종 가운데 가장 많다는 ‘치킨집’(약 3만 곳)과 비슷하다.
보조금 급감으로 문제가 생긴 곳은 판매점이다. 대리점은 통신사의 고객관리 업무를 대신하거나 가입자를 유치해 얻는 수수료를 주요 수익원으로 하지만 판매점은 보조금에 딸려 나오는 판매이익금 외엔 수익원이 없기 때문이다.
1억∼2억 원을 투자한 자영업자들이 주로 운영하는 판매점은 지난해만 해도 연간 6조 원에 이르는 보조금으로 돈을 벌었지만 올해 초 보조금이 줄어들자 폐업하는 판매점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는 불황을 타개하려고 불법 마케팅에 나서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된다.
○ 통신 유통시장 구조조정 본격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30m² 규모의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33)는 4년 전 1억 원을 투자해 창업했지만 얼마 전 가게를 내놨다. 권리금도 포기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한 달에 40건 이상 신규 가입이나 번호이동 손님이 있었지만 올해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이익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출고가 100만 원짜리 휴대전화를 팔면 이통사(30만∼60만 원)와 휴대전화 제조사(10만∼30만 원)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 이 중 일부를 고객에게 줘도 30만 원 이상을 수익으로 챙겼다. 그런데 판매점이 줄 수 있는 보조금이 27만 원 이내로 제한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4월과 5월 번호이동 건수가 월 평균 40만 건에 그친 것에서 시장의 침체를 확인할 수 있다. 보조금 경쟁으로 번호이동이 급증했던 2010∼2012년 최대 월 150만 건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업계의 정보공유 사이트 ‘모비고’(www.mobigo.co.kr)에는 김 씨처럼 휴대전화 판매사업을 포기하는 내용의 글이 일주일에 100건 이상 올라온다. 과거엔 창업과 폐업 수가 엇비슷했지만 올해는 폐업이 대부분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41)는 “지난해 말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트폰 시장이 올해 초 이통 3사의 영업정지 여파로 얼어붙었다”면서 “보조금 제한으로 휴대전화 가격이 오르자 소비자들도 선뜻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호갱님’ 만드는 일부 판매점
판매점들이 악화된 실적을 만회하려고 각종 꼼수로 고객을 속이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 ‘호갱님(호구+고객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이 혼탁해진 근본 원인은 판매점의 실적 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서울에 사는 김현철 씨(34)는 최근 “번호이동하면 위약금도 물어주고 최신 스마트폰을 싸게 드린다”는 권유 전화를 받았다. 김 씨는 할부금이 저렴한 것을 확인한 뒤 번호이동에 동의했다. 그런데 할부기간이 24개월이 아닌 36개월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김 씨가 전화로 항의하자 판매점은 “24개월 뒤 매장을 방문하면 남은 할부금을 내주겠다”고 밝혔다. 알고 보니 판매점은 서울이 아닌 강원지역에 있었다.
이처럼 할부기간을 늘려 할부원금을 낮추는 눈속임을 하거나 위약금 또는 잔여 할부금을 대납해 준다며 고객을 꾀는 판매점이 최근 부쩍 늘었다. 그동안 이통사들은 “판매점의 탈법적 영업행태는 대리점의 책임”이라며 책임을 피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매점의 일탈행위에 대한 책임을 이통사에도 물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해진 의원(새누리당)은 이통사들의 차별적 보조금 지급 금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책임 소재가 모호했던 판매점은 앞으로 이통사의 승인을 받아야 개업할 수 있게 된다. 판매점의 행위도 이통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판매점의 경영 악화에 따라 시장의 혼탁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