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유전자 데이터베이스화의 위험 한겨레21 [2009.12.04 제788호]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225.html |
[초점] 검경 ‘DNA법’ 추진에 무죄추정 위반·이중 채취·예산 낭비 등 비판 잇따라 ▣ 전종휘 요즘 유행하는 과학수사는 현대 범죄수사에서 하나의 ‘신앙’이다. 그 정확성과 신속함 덕이다. 동시에 과학수사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이 가진 유전자 정보를 국가기관을 비롯한 타인에게 숨기고 싶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을 논의 중인 ‘유전자(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이하 DNA법)을 둘러싼 논란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대법원 “대상 범죄 범위 지나치게 넓다”
검찰과 경찰이 적극 추진 중인 DNA법은 중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에 담아놓은 뒤 유사한 범죄가 일어나면 이를 활용해 범인을 신속하게 검거하겠다는 내용이다. 법안은 우선 살인, 성폭행, 마약 등 중요한 12가지 범죄에만 이 법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봤을 때, 그 범위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은 “미국의 일부 주는 처음에 살인 범죄에서 시작해 지금은 교통사고 가해자의 유전자 정보까지 채취하는 등 일단 법이 만들어지면 데이터베이스 안에 담기는 범죄 항목이 계속 확장되게 마련”이라며 “영국도 이런 식으로 이미 410만∼4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결국에는 일부 흉악 범죄자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의 유전자 정보가 이 데이터베이스에 담기게 돼 프라이버시 침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안에 담긴 대상 범죄 자체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법원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12개 대상 범죄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규정했다고 비판하면서 ‘체포와 감금의 죄’나 ‘야간주거침입절도죄’ 등은 빼라고 권고했다. 이 법안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DNA를 이중으로 채취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권침해와 예산낭비 논란이다. 경찰은 단순히 수사 단계에 있는 구속 피의자에게서, 검찰은 형이 확정된 수형자에게서 DNA를 채취해 따로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의 DNA 채취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데다, 구속 단계와 수감 단계에 걸쳐 두 차례나 채취를 당하는 건 과하다는 비판이다. 대법원도 이 법안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이런 비판적 견해와 함께 예산낭비를 우려했다. 대법원은 “검찰과 경찰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경쟁적으로 DNA 감식 시료를 채취하는 것은… 운영 및 관리에 이중으로 비용이 소용되는 등 막대한 예산낭비가 우려”된다며 이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년범에게까지 DNA 시료를 채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년의 교화 및 재사회화를 방해하고 소년에 대한 낙인 효과를 초래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밖에 대법원 의견서는 DNA 시료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것인지를 명확히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이 법안이 규정하지 않아 DNA 비교를 통한 수사가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DNA 검사가 사람 잡은 ‘더햄 사건’
이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가 미국에서 일어난 티머시 더햄 사건이다. 더햄은 1993년 11살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힌 뒤 징역 3천년형을 선고받았다. 범죄가 일어난 시각에 그가 범행 현장에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7가지나 나왔지만 배심원은 그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에게서 채취한 DNA가 피해자의 몸에서 나온 것과 일치한다는 검사 결과 때문이다. 하지만 유죄판결 뒤 새로 실시된 DNA 검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는 두 개가 일치하지 않았다. 결국 첫 DNA 검사 때 여러 가지가 뒤섞인 DNA 샘플을 분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해석이 잘못됐음이 밝혀졌다. 더햄은 풀려났지만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뒤였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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